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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urel Mar 06. 2023

외대부고에 가고 싶어요


시작은 중1 5월이었다. 외대부고에 들어간 선배가 자기가 졸업한 중학교에 와서 학교설명회를 한다고 했다. 그래서 한번 보겠다 했고 다녀와서는 좋은 학교 같다고 했다. 가고 싶다고도 했었던 것 같다. 5년 전 일이라 자세히 기억은 안 난다. 다만 기억나는 건 당황스러웠던 기분이다. 


내 계획은 우리 상황에서 갈 수 있는 국제고를 보내서 외국대학으로 유학을 보내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치열한 경쟁도 싫었고 나는 못 갔지만 아이는 외국으로 보내서 이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보고 배우기를 바랐다. 다행히 영어도 잘했다. 아이도 초등학교 때 고양국제고에 가보고는 이런 학교에 다니고 싶다고 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외대부고를 가고 싶다니. 인생 정말 마음대로 안된다. 그 학교는 전국형 자사고이니 공부도 죽어라고 더 열심히 해야 할 거고 집에서도 너무 멀고 암튼 고민이 많았다. 들어가기 힘들다던데 겁도 났다 솔직히. 첫 아이고 매번 중요한 결정을 할 때마다 여기저기 찾아보고 책도 읽고 아이랑도 얘기해 보지만 내가 생각해도 집에서만 공부한 아이가 들어갈 수 있을까 싶었다.


그렇게 고등학교 입시를 시작하게 됐는데 그렇다고 한창 사춘기를 걷고 있는 아이가 갑자기  열심히 공부를 할리는 없었다. 다른 아이들처럼 학원을 빡시게 다녀 본 적도 없고 (중1 때 다른 아이들은 새벽 1시까지 공부한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우리 집 아이는 키가 작아서 맨날 일찍 자라고 하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할지 막막했다. 게다가 아이는 초등학생에서 중학생이 되자 뭔가 자기가 엄청 어른이 된 기분 같은 걸 느끼는지 이것저것 어른 흉내를 내는 일들을 하느라 바빴다. 화장은 이미 초등학생 때 시작을 했고 20대 아가씨나 입을 옷도 자꾸 사고 친구들이랑 홍대도 가고 싶어 하고. 학교를 다녀와서도 아무 의미 없는 옷구경을 하느라 시간을 보냈고, 저녁을 먹고 나서 좀 있다 대충 잤다. 게다가 자유 학년이었다. 옆에서 지켜보면 답답했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안 하던 잔소리를 할 수도 없고. 뭔가 다른 방법으로 아이가 현실을 느끼도록 하고 싶었다. 


어느 날, 매일 그랬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은 다 알고 나만 모르는 정보를 찾으러 sns를 보고 있는데 방학 때 갈 만한 캠프 광고가 있었다. 자기주도학습캠프.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내가 하루 종일 쓸데없이 핸드폰을 얼마나 많이 사용하고 있는지>를 알게 해주는 것인데 어쩌면 이리도 적당한 타이밍인지. 게다가 마침 외대부고 옆에 있는 외대 글로벌캠퍼스였다. 외대부고랑 상관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외대부고가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다행히 아이도 오래전부터 기숙사에 살아보고 싶어 했던 터라 아이와 상의 후 캠프를 신청했다. 그리고 짧은 여름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두 시간 동안 차를 타고 용인에 왔다. 엄마아빠가 걱정을 하든지 말든지 아이는 쿨하게 인사를 하고 웃으며 캠프로 들어갔다. 그래 너는 아직 14살이구나.


캠프에서 아이는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고 밤 12시에 자는 규칙적인 생활과 휴대폰 없이 공부나 독서를 하고 일주일에 한 번 부모님과 통화를 하는 시간을 3주 동안 견뎠다. 시작하던 날 울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도 봤기 때문에 조금 불안했지만 매일 아이가 어떻게 생활하는지 어떤 걸 먹는지 캠프 게시판에 사진을 올려주었기 때문에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 그래도 불안해서 만에 하나 그 안에서 이상한 일이 생기면 주말에 통화할 때 우리만 아는 암호로 이야기하는 것도 정해두었다.  아이가 싫어하는 생선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우리가 데리러 가기로.


첫 주말에 통화할 때는 그래도 예의상 엄마아빠가 보고 싶다고 눈물도 흘리고 그러더니 3주 동안 씩씩하게 잘 지내고 그 와중에도 아이는 플래너를 잘 썼다고 상을 타왔다. 그리고 우리가 다시 데리러 왔을 때 아이는 집으로 돌아가는 차를 타자마자 꼭 외대부고에 가겠다고 선언했다.


그렇게 우리의 외대부고 가기 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 집에 오자마자 최신 아이폰은 넣어두고 공신폰으로 바꾸고, 집에 와서 쓸데없이 낭비하는 시간도 줄여나갔다. 학교생활도 더 열심히 하고 겨울에는 용인으로 이사도 왔다. 


전학 후 처음 아이가 새로운 학교에 나갔던 3일은 누구보다 학교를 좋아하는 아이가 정말 학교에 가기 싫다고 했다. 너무너무 힘들어했다. 좀처럼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 아이라서 사춘기 아이들에게 전학이 얼마나 힘든 건지 그때 알았다. 아는 친구가 없어서 너무 어색하고 점심도 못 먹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4일째 되는 날부터 친구들을 사귀고 집에도 데려오더니 전학 오자마자 반장도 하고 다시 공부도 열심히 했다. 그리고 수학학원도 다니게 되었다. 태어나서 처음 가보는 수학학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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