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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뚜기 Jun 04. 2024

하얀 오얏꽃

심심해서 내가 잘랐어


주간보호센터, 일명 노치원이라고 한다. 어르신들이 시간을 보내는 새로운 형태의 경로당인 셈이다.

통영의 아파트 입구 쪽에 예전부터 어린이집이 있었다. 노란 원복을 입고 귀여운 어린이들이  산책을 가기도 하고 가끔씩은 명랑한 아이들의 소리가 담장밖으로 넘어오기도 했다.

이 어린이집은 세월이 지나서 이제는 어르신을 섬기는 주간보호센터가 되었다.


하루 3시간 요양보호사의 방문 외에 엄마는 하루종일 집에서 혼자 지냈다. 다리가 불편하니 어디 다니지도 못했. 혼자 지내니 휴대폰만 쳐다보며 누워있었다. 치매는 점점 진행이 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주간보호센터로 가는 게 혼자 하루종일 혼자 있는 것보다 훨씬 나을 것 같았다.


1년 8개월 동안 함께 했던 요양보호사는 엄마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요양보호사는 한 번씩 장문의 카톡을 내게 보냈다. 목욕하는 것이 힘들다. 시간이 모자란다. 이런 것이 요양보호사의 일이다. 등등

이제는 이별해야 할 시간이 온 것 같았다. 엄마는 얼마 전부터 노치원에 가고 싶어 하셨다. 알아보니 목욕도 해주고 삼시 세끼 식사와 간식, 그리고 간호사까지 센터에 있었다. 다른 어르신들과 같이 있고 매일매일 프로그램이 있어서 지루하지도 않을 것 같았다. 


드디어 주간보호센터에 체험하러 간 날이었다. 오전 10시쯤 가서 오후 1시에 모시러 갔었다. 엄마는 사람들이 친절하다. 너무 좋다. 재밌다. 등등으로 활짝 웃으며 다니고 싶어 하셨다. 

그날 밤에 사진이 한 장 왔다. 같은 노치원에 어머니를 보내고 있는 동생 친구로부터 온 것이었다.

엄마는 양손에 탬버린을 흔들고 활짝 웃으며 춤추고 있었다. 순간 완전 빵! 하고 웃음이 터졌다.


엄마를 노치원에 다니게 한 후 2~3달이 지났을 때였다. 혹시 어머니가 혼자 머리를 자르시냐고 묻는 전화였다. 한 번씩 그렇게 하신다고 말했다. 실제로 1~2년 전부터 혼자 아무렇게나 머리를 자르셨다. 너무 덥고 지저분하다고 혼자 머리를 잘랐다. 당연히 밤송이다. 아버지가 옆에 계실 때는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미장원에 가기도 귀찮고 머리가 너무 길어 덥다고 혼자 잘랐다고 한다. 교회사람들이 예쁘다고 했단다. 교회사람들이 정직하게 말하지 않은 것 같다.


엄마는 다리가 불편하니 걸어서 10분 거리 미장원에 가기가 힘들다. 그렇지만 택시를 타기도 번거롭고 돈이 아까운 것이다.

“엄마 왜 머리 혼자 잘랐어?”

“심심해서 내가 잘랐다”

1주일에 엿새를 노치원에 가고 주일에는 교회를 간다. 그래도, 아무도 없이 혼자 사는 집은 심심하다.

염색이 빠진 엄마의 머리는 하얀 오얏꽃같다. 젊은 날 고왔던 엄마는 할머니가 되었다.

옆에서 딱 붙어서 엄마를 돌봐주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든다. 그러다가, 잔소리가 폭발하는 내가 떠오르며 자제하기를 여러 차례 했다.  엄마가 혼자서 지내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노치원에 다니시고 두 달 만에 집에 내려갔었다. 

어린이집 활동사진 같은 것이 매일매일 카톡으로 온다. 메뉴가 차려진 식판과 활동사진들이다. 엄마의 안부를 거기서 확인한다. 집에 내려가니 엄마는 나를 환하게 맞아주었다. 밤늦게 도착했지만, 방안에 먼지들이 굴러다니는 것이 보이는데도 엄마는 집이 너무 깨끗하다고 한다. 노치원에 간 이후로 방청소를 한 번도 안 했다고 했다.  다음날, 청소를 했다. 엄마가 없을 때 청소를 하니 장점도 있다. 집에 있는 쓰레기들을 마음껏 버릴 수 있다. 너무 많이 버리면 엄마가 힘들어할 것이 뻔하다. 기억 못 할 정도로 조금만 버렸다. 그래도 한 박스는 내다 버린 것 같다. 하루종일 청소와 빨래를 했다. 이불빨래는 빨래방으로 가져갔다. 몸이 너무 피곤하다. 

파출부를 써야 할 것 같다고 언니에게 말했다. 

마음 같아서는 유튜브에 나오듯이 집안 인테리어를 확 바꾸어 주고 싶다. 이것도 마음 뿐이다.


엄마가 혼자 머리를 자르면 나는 마음이 아프다. 엄마는 다리가 불편해서 많이 아프다. 노치원에서 오는 한 달 소식지에는 늘 이런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다리가 아프다고 하심. 자식들에 말하지 말라고 하심"

나는 엄마를 제대로 돕지 못해서 한숨이 나온다. 


그래도 엄마가 살아계셔서 행복하다. 엄마는 언제나 나에게 엄마이다. 나를 언제나 받아주고, 언제나 사랑해 주는 엄마! 한 번도 그 사랑을 의심해 본 적도 없고, 의심할 필요도 없는 존재인 엄마!

엄마에게 기쁨이 되는 딸이 되고 싶다. 조만간, 다시 386km를 운전해서 내려가야 겠다. 돋보기 안경도 해주고, 정형외과도 가야지! 엄마, 우리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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