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뚜기 Oct 19. 2024

새가 되어

내가 보는 것이 다가 아니다.

운전해서 출근할 때면 종종 라디오를 듣는다.

서울의 아침출근 시간은 평소보다 2배의 시간이 걸린다. 되도록이면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지만, 짐이 많은 날은 어쩔 수 없이 차를 몰고 간다.

그날따라 라디오에서 재미있는 사연들이 쏟아졌다.

디제이들도 진심으로 웃으면서 방송을 하고 있었다. 어딘가에 부딪혔던 사연들이었다.

너무 기분 좋게 친구와 식사를 하고 카페에서 수다를 떨고 헤어지면서 서로 빠빠이를 계속하다가 전봇대에 정면으로 부딪혔다는 사연 등

웃긴 사연들이 많아서 나도 운전하면 같이 키득키득 웃었다.


다음날이었다.

역삼동에 있는 조선팰리스 지하에 있는 센터필드에서 점심을 먹었다. 다른 곳에도 조선 팰리스가 있는데 이곳은 강남에 있다고 해서 남조선이라고 부른다고 누군가 우스개 소리를 했다. 내가 보기엔 그냥 대형 몰에 있는 푸드코트 같은 곳이었지만, 이름은 뭔가 거창한 거 같았다. 강남이라는 상권이 주는 효과일 수도 있다.

지하에서 밥을 먹고 1층에 있는 카페로 갔다. 사실 카페에 가기보다는 가야 할 곳을 빨리 가고 싶었다. 어른들이 커피 한잔하고 가라고 붙잡는데 매몰차게 거절할 수가 없었다.

평일 오후 늦은 시간에는 꽤나 한산했었던 그 카페는 직장인들로 가득 차 있었다. 두 번째로 와 보는 곳이었다. 커피와 한국 디저트, 한국 차를 다양하게 파는 곳이었다. 아이스크림 모나카와 단밤양갱, 백설기앙버터등 다양하게 디저트를 주문하고 나는 팥차를 시원하게 시켜 먹었다. 딱 한국적인 맛이었다. 자극적이지도 않고 은은한 맛이 순하게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잠시 앉아있다가 인사를 드리고 먼저 가보겠다고 하면서 나왔다.


지하에서 올라왔던 문의 반대쪽을 보니 1층바깥으로 바로 연결이 되어 있었다. 좋은 발견이라는 마음으로 반대쪽을 통과해서 밖으로 나가려 했다.

꽈광! 갑자기 큰 충격이 내 얼굴에 느껴졌다. 유리문이 있었는데 미처 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부딪혔다.

안경 낀 내 얼굴이 크게 부딪혔다. 순간, 안경을 벗어서 살폈다. 그리고 유리문의 정체를 파악했다. 그리고는 나의 일행들이 나를 보고 있는지 돌아보았다.

몇 초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돌아본 순간, 일행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고 나를 향해 웃고 있는 (솔직히 비웃고 있다는 생각이 좀 들었다.) 근처에 앉아있는 여자의 얼굴이 보였다.

창피해서 얼른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나 지금 아픈 거 맞지? 윗입술이 순식간에 부어올랐다.

앞니가 유달리 튀어나온 나는 부딪힐 때 안경보다 이가 먼저 부딪혔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생각하니 조금 웃기기도 하다.

‘나 아픈데 이대로 집에 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양재에 가면, 내 얼굴을 자기 얼굴처럼 걱정하며 들여다 봐주고 신경 써줄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에

그 길로 향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휴대폰으로 내 얼굴을 대충 살폈다. 입술이 부었다. 오른쪽 앞니가 마취된 것 같이 뭔가 이상한 느낌이다.  암튼 불편하다. 정상은 아닌 거 같다.

입술은 안쪽으로 피멍이 들었다.


양재에 도착해서 거울을 보니 오른쪽 앞니 끝이 금가 있었다. 갑자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제발 무사해야 할 것인데… 고칠 수 있어야 하는데…

다음날 치과에 갔다.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다행히 신경에는 이상이 없어 보였다.

치과의사는 최선을 다해 겁을 주었다. 4주간 절대 다시 부딪히면 안 된다. 지금은 신경이 괜찮아 보이지만, 충격을 크게 받았기 때문에 서서히 신경이 죽을 수도 있고, 색깔이 변할 수도 있다. 갑자기 아플 수도 있다고 했다. ”금 간 치아는 건드리지 않는다. 우리의 치아는 모두 미세하게 금이 가있는데 잘 보이지 않을 뿐이다. “라는 말을 했다.

이것은 위로인 것일까? 약간 위로가 되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왜 그랬을까를 생각하기보다, 앞으로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를 생각하는 것이 낫다고 우리 목사님이 말씀하신 것이 기억이 났다.

자꾸 그 순간으로 돌아가서 ‘내가 좀 더 주위 깊게 살폈더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건데’라는 생각이 들려고 했다.

이런 생각을 애써 물리치고 강한 나의 앞니가 끝까지 잘 살아서 자기의 역할을 충실히 해 주기를 기도하고 있다.

나의 사건을 이야기하니 주변에서 앞니 커밍아웃을 몇 명이 했다. 한 명은 앞니가 죽었지만, 색깔이 변하지 않고 아프지도 않다고 하고, 또 다른 한 명은 사실 이 앞니는 새로 한 것이라고도 했다. 또 다른 이는 이가 깨졌는데 치과에서 어떻게 할 수 없다고 해서 그냥 있다고 까지 이야기하며 미세하게 깨진 자신의 앞니를 설명해 주었다.

큰 일이 날 뻔 했지만, 이 정도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앞니의 역할이 생각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이제껏 멀쩡한 앞니를 가지고 살았다는 것도 감사했다.

무엇보다도 내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모든 영역에서 내가 보는 것은 언제가 한계가 있다.

그 한계를 인정하고 주위 깊게 살피는 것이 인생을 안전하게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운전을 할 때도, 길을 걸을 때에도 이제 약간은 겁이 난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고 나면 활기차게 돌아다닐 것이다.

인간은 언제나 한계가 있음을 배우게 된다. 내가 보는 것이 다가 아닌 것을 깨달았으니 좀 더 겸손해질 것 같다.


p.s: 이 에피소드를 이야기했더니 누군가가 비유를 하다가 새가 유리창에 부딪히는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한참 웃었다.

나는 새 대가리인가? 제발 카페 유리문에 독수리를 붙여 주세요~    


작가의 이전글 가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