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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한긍정 Dec 14. 2022

삶의 응원이 되는 책 속 징검다리

행간을 넘어서



행간을 읽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책 읽기가 서투르던 시절, 마음속에 스윽 와닿는 한 문장의 글귀를 깊이 들여다보며 쉼표처럼 쉬어가던 때가 있었다. 때로는 ‘아!’라는 환호성과 함께, 때로는 ‘맞아!’ 라며 격한 호응으로 책과 함께했던 날들이었다.

 

십 대의 독서는 무얼 읽고 있는지도 모른 채 낯선 모험이었고, 이십 대의 독서는 짐짓 알고 있는 채 하기 바쁜 시간이었다. 삼십 대의 독서는 바삐 흘러가는 시간 따라 마음의 여유가 없어 급히 휘갈겨 쓴 낙서처럼 제멋대로의 독서였다. 그때그때 위기의 상황이 닥쳐올 때마다 나의 정신과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 버티기 위한 임시방편의 독서.  

 

같은 책 다른 느낌이라고 했던가?

 

초등학교 시절 단골 독후감 소재였던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와 「모모」, 그리고 「헬렌 켈러」가 그랬다. 잘 언급한 적은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무서운 느낌으로 다가왔던 「데미안」은 이십 대, 삼십 대 삶의 여정에서 불현듯 떠오르곤 했다.  

 

마냥 슬펐고 부러웠고 응원하고 싶었던 주인공들의 삶에서 이제 나는 그 상황의 막막함과 두려움과 애잔함 그리고 용기를 읽어낸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순간 언어는 의미를 잃는다.  

 

십 대 시절 「데미안」을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마치 어두컴컴한 길을 혼자서 걷고 있는 느낌이었다. 무엇인지 모를 눈동자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알 수 없는 불편한 두려움을 뒤로하고 짐짓 의연한 척 한 장 한 장 읽어나갔다.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누구든지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여야 한다.’

 

헤르만 헤세가 인도를 여행하고 40대 초반에 쓴 책이 「데미안」이라고 한다.  십 대 시절 데미안을 만났던 나는 어느덧 40대가 되어 데미안을 본다.


책의 마지막 장에 이르러 친구를 만나듯 나 자신을 만나듯, 낯설면서도 익숙한 느낌으로 내 심장은 멈춰 고동친다.



니체가 생각이 났다.


‘괴물과 싸우는 자들은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도 당신을 들여다본다.’

「선악의 저편」



프리드리히 니체가 마주했을 심연. 


싱클레어가 거울 속에서  발견했던 데미안의 얼굴.


이질적인 듯 닮은 듯 그 두 장면이 묘하게 오버랩되어 내 마음속을 떠 다닌다.



나는 지금 심연을 들여다볼 준비가 되어 있을까.


나는 그 심연 속에서 무엇을 알아차리게 될까.


나의 거울에는 무엇이 비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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