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응원이 되는 책 속 징검다리
책 속에서 길 발견하기
'1만 시간의 법칙'이란 말이 있다.
1993년 미국 콜로라도 대학교의 심리학자 앤더스 에릭슨(K. Anders Ericsson)이 발표한 논문에서 처음 등장한 개념으로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최소한 1만 시간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법칙으로 알려져 있다. 매일 3시간씩이면 약 10년, 하루 10시간씩이면 약 3년이 걸리는 시간이라고 한다.
※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시사상식사전
(저자 pmg 지식엔진연구소, 제공처 박문각)
독서에도 적용이 가능한 말일까?
책은 우리에게 하나의 매개체지만, 책이 속한 범위는 이제껏 존재하고 상상해온 그 세계와 같이 넓고 깊으며 과거에서 현재로 또 현재에서 미래로 이어져 있기에 무한하게 확장이 가능하다.
어떤 분야, 어떤 방향성을 가지지 않는 독서가 1만 시간의 법칙과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특정한 기준을 가진 독서라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나의 책 읽기는 시간도 들쭉날쭉하고 분야도 갈팡질팡인 제멋대로의 독서였기에 몇 시간인지 알 수도 없고 그 시간이 몰입이었는지 그저 훑어보기 식이 었는지도 알 수 없어 그 효과는 미지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문득 깨달았다.
책 읽기는 나에게 잔잔한 위로였고 갈증을 해소해주는 샘물이었으며 다급할 때 찾게 되는 친구였다. 그 시간이 쌓이고 쌓이던 어느 날 문득 알게 되었다.
'책 속에 길이 있구나!'
너무 익숙해서 고리타분하고 진부해 보이기만 하던 그 문장이 나에게 와서 생명력을 갖게 되었다.
오랜 시간 고민하던 것을 예기치 못한 순간 책 속에서 마주할 때. 이미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던 책들이 일상생활 속에 불쑥 고개를 내밀며 나의 의식을 일깨울 때. 그냥 알게 되었다.
'그 말이 사실이구나.'라고.
1만 시간의 법칙이 대표하는 전문성과는 무관하게 오직 간절히 원하는 사람만이, 그 간절함을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만이 발견할 수 있는 그 길.
그 길을 발견하는 것도,
그 길을 믿는 것도,
그 길을 증명하는 것도,
오직 나의 책임이다.
사실 나는 책 속에만 길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반복되는 일상의 삶에서, 누군가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누군가는 말하지 못할 어려운 상황 속에서 그 길을 찾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힘든 과정 없이 자연스럽게 알게 될 수도 있다. 세상에 수많은 사람의 수만큼 수많은 길이 존재할 테니까.
어떤 경우이든 때때로 그 여정에서 한 권의 책이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길 소망한다. 포기하고 싶어 질 때 포기하지 않고 한 걸음만 더 내딛을 수 있도록 힘을 주는 작은 디딤돌이 되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을 절망과 좌절로 슬픔에 빠져있을 때 조금이나마 의지할 수 있고 위로받을 수 있는 작은 휴식과 같은 쉼터가 되길 바란다. 나에게 책이 그러했던 것처럼.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찰리 채플린의 이 말은 마음에 깊은 울림을 준다.
좌절과 성공, 슬픔과 기쁨, 엄숙한 무거움과 약간의 가벼움. 그 둘이 둘이 아닌 하나임을 느낀다.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깨달음은 마음을 겸허히 하게 한다. 물컵에 물이 반밖에 남지 않았다는 생각을 물컵에 물이 반이나 남았다는 생각으로 바꾸려면 관점을 전환해야 한다. 관점을 바꾸려면 믿음을 바꾸어야 하고 믿음을 바꾸려면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이 그릇된 것일 수도 있다는 자기반성과 수용의 과정을 거쳐 내려놓음을 통해 그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같은 듯 다른 제각각의 질문과 의문을 가지고 삶을, 책을 둘러본다. 그리고 나름의 해답을 발견한다. 그것의 진위와 무관하게 우리는 앎과 실천을 지렛대 삼아 그 과정에서 나선형의 성장을 이루어간다.
그 여정의 끝에
나에게 꼭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대답을 찾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