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날들, 특별한 순간
아들의 선택이 가져온 따뜻한 설렘
나는 늘 평균이었다. 평균은 위로도 아래로도 흔들리지 않는 안정감의 다른 이름이지만, 어쩌면 무관심의 다른 얼굴일지도 모른다. 내가 공부를 잘하지도, 아주 못하지도 않았던 건 그런 이유였다. 부모님은 자식이 잘 자라길 바랐지만, 공부하란 말씀은 한 번도 하지 않으셨다. 가게를 돌보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두 분의 삶 속에서 나의 공부는 그저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할 일’로 남겨져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부모님 탓을 한 적은 없다. 사실 공부를 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그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뚜렷한 목표도 없이 시간에 순응하며 살았을 뿐이다. 중학교 때는 게임이 너무 재밌었다. 초3 때 애플컴퓨터로 시작한 나의 컴퓨터 사랑은 수업이 끝나면 바로 집으로 달려갔고 신작게임 중 모르는 게 없는 아이였다. 시험은 교과서의 기적에 기대어 적당히 중간쯤의 성적을 유지했다. 고등학교에 가서는 조금 달라질 줄 알았지만 큰 차이는 없었다. 평균만큼 노력해서 적당한 성적이 나왔고, 다행히도 '인서울' 대학의 문턱은 넘었다. 대학에서는 그저 그런 나날들이 이어졌다. 디아블로라는 게임에 빠져 PC방에서 많은 나날을 보냈다. 내가 대학생활을 회상하면 늘 떠오르는 단어는 ‘부끄러움’이다. 그렇게 소중했던 시간을, 그렇게 치열해야 했던 청춘을 나는 너무 쉽게 흘려보냈다.
그런 나도 한 번은 공부를 목숨처럼 했던 때가 있었다. 군대 훈련소에서였다. 성적에 따라 자대 배치를 한다는 소문이 돌아 열심히 공부했고 결국 2천 명 중 1등을 했다. 그때 나는 내가 원하는 부대에 배치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내가 꿈꾸던 자대는 쓰리스타의 자제가 차지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비로소 사회란 것이 어떤 곳인지 알게 되었다. 공정한 세상은 없었다.
제대 후 회사에 들어가면서 나는 업무에 대한 공부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을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직장 내에서 적극적인 태도로 자릴 잡고 생활하던 중에 어떤 심사위원으로 간 적이 있었다. 심사위원은 총 다섯이었는데 나 빼고 넷은 박사였다. 아 나는 정말 노력하지 않았구나. 공부를 더 하고 싶다 마음먹었다. 그래서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다. 면접장에서 내가 내놓은 각오는 다소 엉뚱했다. “대학 때는 공부를 열심히 안 해서, 머리가 신선합니다!” 교수님은 내 성적표를 보며 웃었다. “정말이네요.” 그 웃음이 참 다정해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대학원에서는 온 마음을 다했다. 4.3 만점에 4.3을 받았고, 성적우수상까지 받으며 졸업했다. 스스로를 조금은 칭찬해도 좋을, 꾸준한 노력의 결과였다.
이 부끄러운 기억을 끄집어낸 이유는 오늘 있었던 작은 기쁨 때문이다. SNS 친구 중 한 분이 자녀의 서울대학교 합격 소식을 전했다. 내 자랑은 그보다는 작다. 큰아들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원하는 고등학교에 합격했다. 누군가는 “그게 무슨 자랑이냐”라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내가 해준 것도 없이, 혼자 힘으로 이루어낸 아들의 성취가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물론 그곳에서 뛰어난 친구들과 경쟁하며 힘든 날도 많겠지만, 나는 아들이 새로운 세계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할지 기대된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더 단단하고 더 너그러운 사람이 되어갈 거라 믿는다. 어쩌면 이 선택이 시간이 흘러 입시라는 관점에서 보면 나쁜 선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들이 스스로 삶의 태도를 익히고, 좋은 친구들을 만나며, 행복한 어른으로 성장해 가는 모습을 그리며 나는 오늘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우리 아이가, 그리고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자기만의 길을 걸으며 행복한 어른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꿈을 꿀 줄 아는 사람으로 무심한 듯 따뜻한 세상을 열어가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