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로 말하는 사람들

AI 시대, 손과 머리의 협주

by Via Nova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김 주무관, 잠깐 들어와 봐요."


월요일 아침 9시 30분. 박진수 팀장의 호출을 받은 김민지 주무관은 노트북을 들고 팀장실 문을 두드렸다.


"앉아요. 커피 한잔 할래요?"


"아, 감사합니다."


박 팀장은 커피를 건네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의 표정은 평소보다 진중했다.


"지난주 시장님이 직접 물으시더군요. '우리 조직의 AI 역량, 솔직히 어느 수준이냐'고. 제가 뭐라고 답했는지 알아요?"


"...?"


"'노력하고 있습니다'라고 했어요. 그런데 퇴근길에 계속 생각이 나는 거예요. 그게 답인가? 우리는 정말 어떻게 노력하고 있나?"


박 팀장은 모니터를 돌려 김민지에게 보여주었다. 화면엔 최근 3년간의 AI 관련 교육 이력과 프로젝트 목록이 떠 있었다.


교육은 많았다. 하지만 실제 성과로 이어진 프로젝트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김 주무관, 부탁이 하나 있어요."


"말씀하세요."


"우리 조직의 AI 역량을 진짜로 끌어올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표면적인 교육 이수율이 아니라, 실무자와 관리자가 실제로 데이터와 AI로 일하는 조직을 만들려면 말이에요. 이번 주까지 고민해서 정리 좀 해줄래요?"


김민지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노트북을 열며 말했다.


"팀장님, 사실 저도 이 문제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관련 자료들을 읽어보고 정리를 해봤는데요..."


"오, 벌써 준비했어요?"


"네. 간단하게라도 지금 말씀드려도 될까요?"


박 팀장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럼요. 좋아요. 얘기해 봐요."




1장. 진단: 우리는 왜 실패했나


김민지는 노트북 화면을 공유했다. 첫 슬라이드에는 단 한 문장만 떠 있었다.


"손과 머리가 따로 놀고 있습니다."


"무슨 뜻이죠?"


"팀장님, 우리 조직 교육 이력 보세요. 파이썬 기초, 머신러닝 입문, 챗GPT 활용... 다 들었어요. 근데 프로젝트는 왜 안 됐을까요?"


박 팀장이 팔짱을 끼며 생각에 잠겼다.


"음... 실무자들이 배운 걸 적용할 기회가 없어서?"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합니다."


민지 씨가 다음 슬라이드를 넘겼다. 조직도가 나타났다. 실무자와 관리자로 나뉜.


"저희는 실무자와 관리자에게 같은 교육을 시켰어요. 근데 두 집단이 해야 할 일은 완전히 다릅니다. 실무자는 데이터를 만지고 해석하는 손, 관리자는 데이터로 방향과 문화를 만드는 머리예요."


"아..."


"손은 손대로 기술을 배웠지만 쓸 곳이 없었고, 머리는 머리대로 방향을 정하지 못했으니... 당연히 따로 놀 수밖에요."


박 팀장이 무릎을 쳤다.


"맞아요. 우리가 바로 그랬어요. 제가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하자'고 외쳤는데, 정작 어떤 데이터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명확한 기준이 없었죠."


"네. 그래서 저는 역량을 역할별로 나눠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장. 설계: 손과 머리, 각자의 언어


김민지는 새로운 문서를 열었다. 'AI 시대 공공 역량 체계(안)'이라는 제목의 보고서 초안이었다.


"팀장님, 제가 행안부 지표랑 최근 논문들을 분석해서 8개 역량 영역을 뽑아봤어요. 그리고 각 영역을 실무자 관점과 관리자 관점으로 나눴습니다."


"8개요? 어떤 건데요?"


"먼저, 가장 기본이 되는 것부터 볼까요?"



역량 1: 데이터 이해 및 활용


민지 씨가 첫 번째 항목을 펼쳤다.


"실무자 입장에서 제일 답답한 게 뭔지 아세요?"


"뭔데요?"


"다들 'AI로 민원 예측하자!'고 하시는데, 정작 데이터가 어디에, 어떤 모양으로 있는지 아는 분이 없다는 거예요."


박 팀장이 씁쓸하게 웃었다.


"공감합니다. 계속하세요."


"그래서 실무자 역량 1순위는 '데이터 구조·메타데이터 이해'예요. 이게 정형 데이터인지, 민원 텍스트 같은 비정형인지, 스키마가 뭔지 알아야 수집부터 제대로 할 수 있어요."


"GIGO 원칙. Garbage In, Garbage Out."


"정확합니다! 그래서 두 번째가 '목적기반 수집·정제'. 결측치, 중복, 오류를 걸러내는 데이터 품질관리가 AI 신뢰도를 만들죠."


"세 번째는?"


"'해석·표현, 즉 시각화'. 실무자는 데이터로 말하는 보고서를 만들어야 해요. 논문에서도 이 '데이터 커뮤니케이션'이 직무 성과에 직결된다고 했거든요."


박 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화면을 가리켰다.



"그럼 관리자인 저는요?"


"팀장님은 '데이터 전략 수립'이 핵심입니다. 기관 목표와 연계한 중장기 로드맵을 짜고, 데이터 거버넌스를 세워서 중복 투자를 막아야죠."


"부서 간 칸막이 문제도요?"


"네, '데이터 중심 조직관리'로 해결해야 합니다. 그리고 '데이터 성과관리'. KPI를 정해서 우리가 잘하고 있는지 '측정'하는 거죠. 이게 다 행안부 지표에 명시된 관리자 역할이에요."


박 팀장은 메모를 하며 물었다.


"좋아요. 그럼 두 번째 역량은?"




역량 2: AI 리터러시


"AI 리터러시입니다. 이것도 손과 머리가 달라요."

민지 씨가 설명을 이었다.


"실무자는 'AI 기본 이해'가 필요해요. 최소한 ML/DL이 뭔지, NLP가 만능이 아니라는 한계는 알아야죠. 그래야 단순 반복은 RPA 쓰고, 복잡한 예측에만 AI 쓰는 구분을 할 수 있어요."


"적합 도구 선택이군요."


"맞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가 '문제정의–접근설계'. 어떤 업무 문제를 데이터 기반으로 재정의하고, 규칙으로 풀지 ML로 풀지 설계하는 능력이에요. 논문에서는 이걸 '의사결정 역량'이라고 하더라고요."


"세 번째는?"


"'도구활용·재현성'. 프롬프트든 파이썬이든, 반복 가능한 산출물을 만들어야 지식이 이전되니까요."

박 팀장이 끄덕이며 관리자 파트를 보았다.



"그럼 관리자는 어떤 AI 리터러시가 필요한가요?"


"'AI 정책·사업 기획'이 첫 번째예요. 우선순위, 성과지표, 위험, 예산까지 포함된 기획이죠. 행안부 필수 항목인 '분석과제 기획'이기도 하고요."



"두 번째는?"

"'기술 구분·선택'. AI가 좋은지 기존 RPA가 나은지 판단해서 투자 대비 효과를 극대화하는 거예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직 학습 리더십'. 교육과 문화가 병행되어야 한다고 논문에서도 강조했잖아요. 관리자가 판을 깔아야 합니다."



3장. 신뢰: 공공의 생명줄


민지 씨의 목소리가 조금 무거워졌다.


"팀장님, 사실 이 부분이 공공 영역에선 가장 중요합니다. AI 윤리 및 위험관리."


"동의해요. 신뢰는 쌓기 어렵지만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죠."


"실무자는 당장 '개인정보·가명정보 처리' 법규를 모르면 큰일 나요. 행안부 지표에도 명시되어 있고요. 그리고 '출력 검증·편향 점검'. AI가 뱉어낸 결과를 비판 없이 복사-붙여넣기 하면 안 됩니다."


"세 번째는?"


"'투명한 인용·출처'. 어떤 데이터, 어떤 모델을 썼는지 명확히 밝혀야 근거 기반 행정의 투명성이 확보되죠."

박 팀장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관리자는 더 큰 책임이 있겠네요."


"네. '윤리 거버넌스' 구축이 첫 번째예요. 원칙, 가이드라인, 심의 체계를 조직에 심어야 하고요. '위험관리 프로세스'로 오류나 편향을 사전에 막아야죠. 특히 '이해관계자 커뮤니케이션'. 시민이나 의회에 설명 가능한 AI를 제시하는 게 공공 신뢰의 핵심이에요."




4장. 실행과 문화: 나머지 역량들


"나머지 역량들도 빠르게 볼까요?" 민지 씨가 스크롤을 내렸다.


"역량 4: AI 전략 기획, 역량 5: AI 서비스 운영·관리는 사실 1, 2번의 심화 과정이에요.


실무자는 분석과제 기획서를 구체적으로 쓰고, 서비스 오픈 후엔 품질관리와 모니터링을 하죠. 관리자는 AI 서비스 조달을 결정하고, 예산·포트폴리오를 관리하며, 운영정책과 SLA를 수립하는 거고요."


"이건 프로세스 역량이네요."


"맞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제일 중요한 게 나와요."


민지 씨는 6번 항목을 가리켰다.



역량 6: AI 활용 태도 및 문화


"팀장님, 지금까지 말한 모든 역량이 있어도 이게 없으면 실패합니다."


"조직 문화겠죠..."


"네. 특히 실무자의 '데이터 커뮤니케이션' 능력! 논문에서 이게 직무 성과와 가장 강하게 연결된다고 했어요. 데이터로 스토리텔링하고 토론하는 문화요. '협업·공유 태도'와 '개선지향 마인드'는 기본이고요."



박 팀장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조직은 '성실성'은 높은데 '개방성'이 낮아요."


"바로 그겁니다! 그래서 관리자의 '변화관리 리더십'이 핵심이에요. 저항을 낮추고 참여를 유도해야죠.


'학습조직'을 만들고, 무엇보다 회의 때 '데이터 근거'를 질문하는 '데이터 대화 문화'를 정착시켜야 해요."


"그래야 성과 평가도 가능하겠군요."


"정확합니다.



역량 7: AI 활용 성과 평가.


실무자는 업무 효율 지표를 측정하고 리포팅하며 개선 제안을 하고, 관리자는 그걸 기관 KPI와 연계해 ROI를 분석하고 정책에 환류하는 선순환이죠."



5장. 우선순위: 무엇부터 시작할까


박 팀장은 화면을 멈추게 하고 물었다.


"김 주무관, 이론적으로는 완벽해요. 근데 현실적으로 다 할 순 없잖아요. 우선순위를 정한다면요?"


민지 씨는 기다렸다는 듯 새 슬라이드를 꺼냈다.



"개인 수준에서 가장 중요한 역량 3가지를 뽑았습니다."


1. 데이터 이해·커뮤니케이션 - 데이터를 읽고 말하는 능력
2. 문제정의–접근설계 - 진짜 문제를 찾아내는 능력
3. 윤리·법제 준수 - 공공 신뢰의 기본


"그리고 역할별 중요도 순위도 정리했어요."



실무자(손)
1순위: 데이터 이해 및 활용 (기초)
2순위: AI 리터러시 (활용)
3순위: 서비스 운영 (유지)


관리자(머리)
1순위: AI 리터러시 (판단)
2순위: 데이터 이해 및 활용 (전략)
3순위: AI 윤리 (책임)


박 팀장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실무자는 데이터 기초부터, 관리자는 AI 판단력부터..."


"네. 손은 데이터를 먼저 만질 수 있어야 하고, 머리는 AI로 무엇을 할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해요."



6장. 실행 원칙: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좋아요." 박 팀장이 의자를 돌려 김민지를 마주 봤다. "이론은 완성됐어요. 그럼 우리 조직에선 구체적으로 어떻게 시작하죠?"


민지 씨는 마지막 슬라이드를 열었다. '실행 원칙'이라는 제목.


1. 교육+문화 투 트랙
"교육만으론 안 됩니다. 동시에 문화를 만들어야 해요. 예를 들어 데이터 리터러시 교육을 하면서, 동시에 주간 회의에서 '이 결정의 데이터 근거는?'이라는 질문을 문화로 만드는 거죠."


2. 작게, 빨리, 지속
"큰 프로젝트 하나보다, 작은 성공 사례를 빠르게 만들고 지속적으로 반복해야 합니다. 퀵윈(Quick Win)이 중요해요."


3. 측정 가능한 성과
"모든 역량 개발은 측정 가능해야 해요. '우리가 나아지고 있다'는 걸 데이터로 보여줘야 하죠."

박 팀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물었다.


"김 주무관, 솔직히 말해 봐요. 우리 기관에서 가장 먼저 데이터 커뮤니케이션을 적용해서 성과를 낼 수 있는 과제가 뭘까요? 파일럿으로요."


"도로 파손 민원 예측이요."

대답이 즉각적이었다.



에필로그: 데이터가 말을 시작할 때


"도로 파손?"


"네. 팀장님, 마침 준비해 온 게 있어요."


김민지는 태블릿을 꺼내 3D 그래프를 띄웠다.


X축엔 월별 시간, Y축엔 민원 건수, Z축엔 강우량 데이터. 세 개의 변수가 만나는 지점에서 선명한 패턴이 떠올랐다.


"최근 3년 치 민원 데이터와 기상청 강우량을 매핑해 봤어요. 5월과 9월, 집중호우 직후 2주 간격으로 민원이 3배 폭증합니다. 정확도 87.3%."


박 팀장의 눈이 커졌다.


"이건... 예측 가능하다는 얘기잖아요?"


"네. 그리고 예방도 가능해요."


다음 슬라이드. 'AI 기반 도로 순찰 최적화'. 지도 위에 빨간 점들. 위험 예측 구역.

"호우 직후 이 구역들을 집중 점검하면, 민원 발생 전에 보수할 수 있어요. 예산 절감 효과는 연 2억 3천."

박 팀장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김 주무관..."


"네?"


"이거, 당신이 말한 8개 역량 중 몇 개를 쓴 거예요?"

민지 씨는 손가락을 꼽았다.


"1번 데이터 이해 및 활용으로 민원과 기상 데이터를 연결했고요. 2번 AI 리터러시로 예측 모델을 설계했어요. 3번 윤리 관리로 개인정보는 전부 제거했고. 6번 데이터 커뮤니케이션으로 이렇게 시각화했죠. 그리고..."


"그리고?"


"팀장님의 5번 AI 서비스 운영 역량이 필요해요. 이걸 실제 현장에 어떻게 적용할지, 예산은 어떻게 확보할지, SLA는 어떻게 짤지... 그건 관리자의 몫이니까요."

박 팀장은 천천히 웃었다.


"손과 머리가 만났군요."


"네, 팀장님."


"좋아요. 다음 주 월요일, 시장님 앞에서 발표합시다. 제목은... '데이터로 말하는 도로관리, 그리고 AI 시대 조직 역량 체계'. 어때요?"


"좋습니다. 단, 조건이 하나 있어요."


"뭔데요?"


"발표 후에 우리 팀 전체 교육 예산 확보해 주세요. 데이터 커뮤니케이션 워크숍. 분기별로요."

박 팀장이 손을 내밀었다.


"약속합니다. 그리고 김 주무관."


"네?"


"이 보고서, 전 부서에 공유할게요. 제목은 'AI 시대 공공 역량 체계: 손과 머리의 협주곡'으로."


두 사람의 악수.


사무실 창밖으론 석양이 지고 있었지만, 그들의 화면은 여전히 밝게 빛나고 있었다.

AI 역량을 묻던 조직이, 데이터로 답하기 시작한 월요일이었다.




[부록] AI 시대 공공 역량 체계 요약


8대 역량 영역

1. 데이터 이해 및 활용

실무자: 구조 파악 → 정제 → 시각화

관리자: 전략 수립 → 거버넌스 → 성과관리


2. AI 리터러시

실무자: 기본 이해 → 문제정의 → 도구활용

관리자: 정책 기획 → 기술 선택 → 조직 학습


3. AI 윤리 및 위험관리

실무자: 법규 준수 → 출력 검증 → 투명한 인용

관리자: 윤리 거버넌스 → 위험관리 → 이해관계자 소통


4. AI 전략 기획

실무자: 기획서 작성 → 조달 지원

관리자: 서비스 조달 → 예산·포트폴리오 관리


5. AI 서비스 운영·관리

실무자: 품질관리 → 모니터링 → 로그 분석

관리자: 운영정책 → 성과관리 → 보안통제


6. AI 활용 태도 및 문화

실무자: 스토리텔링 → 협업 → 개선 마인드

관리자: 변화관리 → 학습조직 → 데이터 대화 문화


7. AI 활용 성과 평가

실무자: 효율 측정 → 리포팅 → 개선 제안

관리자: KPI 연계 → ROI 분석 → 정책 환류


8. 기타 고려 역량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협업 도구 활용

지속적 학습 태도


우선순위

개인 핵심 역량 TOP 3

데이터 이해·커뮤니케이션

문제정의–접근설계

윤리·법제 준수


실무자 중요도

데이터 이해 및 활용 (기초)

AI 리터러시 (활용)

서비스 운영 (유지)


관리자 중요도

AI 리터러시 (판단)

데이터 이해 및 활용 (전략)

AI 윤리 (책임)


실행 3원칙

교육+문화 투 트랙 - 동시 진행

작게, 빨리, 지속 - 퀵윈 중심

측정 가능한 성과 - 데이터 기반 검증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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