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글에도 쓴 적 있지만 나는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의 '인생은 B와 D사이에 C이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탄생(Birth)과 죽음(Death) 사이의 선택(Choice)라니, 짧은 문장으로 이보다 삶을 잘 설명하는 말이 있을까?
운명의 신은 가끔 우리에게 어려운 선택을 강요하곤 한다. 정말 중요한 날에는 어김없이 난감한 선택을 던져주는 식이다. 오늘이 딱 그랬다. 내가 애정하는 독서동호회 불편한밥상 송년회와, 몇 달간 치열하게 달려온 행정안전부 데이터분석 전문가 양성과정의 수료식이 정확히 같은 날에 열리는 것이다. 마치 달력 위에서 두 마리의 강아지가 서로 으르렁거리며 자리다툼을 벌이는 꼴이라니!
독서동호회 송년회는 내가 1년 동안 열심히 읽은 책들, 한 장 한 장을 넘기며 느꼈던 기쁨과 공감들을 함께 나눈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이다. 가장 중요한 이벤트인 송년회에 나는 지난 9년 간 빠진 적이 없다. 심지어 아들이 코로나에 걸려 전염 위험으로 참석이 어려웠을 때도 현장 가서 선물만을 전한 해도 있다. 우리는 서로 준비한 책을 나누고 한해 활동을 되돌아보며 시상을 한다. 책 이야기를 하며 웃고 때로는 삶의 한 부분을 나누며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이런 자리에서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은 무엇인가요?" 같은 질문을 던지고 답하는 순간은, 마치 내 삶에 한 줄기 따뜻한 빛이 스며드는 것 같다. 이걸 포기한다고? 절대 쉽지 않다.
그러나 데이터분석 전문가 양성과정 수료식 또한 결코 놓치고 싶지 않다. 올해 시도한 가장 유의미한 도전으로 이건 단순한 수료식 이상의 의미가 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데이터라는 언어를 깊이 있게 배우며 새로운 세상과 마주했다. 진짜 데이터 전문가가 되기 위해 우리가 노력했던 시간들은 소중하다. 엑셀의 차트를 들여다 보고 모델링의 실패를 씁쓸히 곱씹던 날도 있었다. 함께 한 여러분의 교수님과 운영진 닥분에 성장의 기쁨도 느꼈다. 같이 하는 프로젝트를 위해 하얗게 불태운 밤도 있었다. 마침내 그 끝에 서서 함께하는 사람들이 이뤄낸 '수료'라는 두 글자는 작지만 빛나는 성취였다. 화성시에 수여되는 '데이터 인재양성 선도기관' 인증패도 놓칠 수 없다.
결국 나는 어떻게 했느냐고? 독서동호회의 온기를 택할까, 수료식의 희열을 택할까? 하지만 그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서 나는 두 가지 선택지를 떠올렸다. 첫째, 복제 기술을 긴급히 개발한다. 나의 분신말이다. 둘째, 시간여행 기술을 긴급히 개발한다. 당연하게도 둘 다 실패했지만 말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송년회에 너무나 가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인해 수료식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라는 카톡 메시지를 독서동호회 임원진에게 보내니 그들도 나의 불참을 아쉬워한다. 특히 김ㅇㅇ회원님 못 가서 죄송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