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이커 Mar 19. 2023

어른모먼트-3

수요일의 해방일지 #15

나이가 많다고 다 어른이 되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나이를 먹고 나를 이루는 환경이 조금씩 변하다 보니, 나 스스로 ‘어른’이라는 단어와 조금씩 가까워짐을 느끼는 순간들을 마주해오고 있었다.


5. 엄마가 해준 음식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은..


나의 장모님은 요리를 잘하신다. 특히 맛있게 잘하시는 메뉴가 있다. 소갈비찜이다. 처음으로 인사를 드리러 가던 날도, 매년 설, 추석, 내 생일 같은 특별한 날에는 언제나 소갈비찜을 만들어 주셨다. 어떤 때는 그다음 날 조금 남은 고기와 국물에 밥을 비벼 볶아 먹는 게 더 맛있는 날도 있었다. 설 바로 다음 날도, 추석 바로 다음 날도, 생일 바로 다음 날도 장모님 댁에 가야 하는 이유다. 그건 그렇고. 그렇게 장모님 소갈비찜을 맛있게 먹은 어느 날, 집에 가는 길에 희진이가 물었다. “엄마가 만든 음식 중에, 소갈비찜이 제일 맛있어. 너는?” “나도 소갈비찜” “아니, 어머니가 만든 음식 중에 뭐가 제일 맛있냐고오!”


우리 엄마도 요리를 잘한다. 그런데 엄마가 만든 음식 중에 뭐가 제일 맛있는지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요즘은 대구에 가면, 그날(아들이, 아들과 며느리가, 아들과 며느리와 손주가 대구에 온 날)은 특별한 날이니까 나가서 사 먹거나, 집에서 한우를 구워 먹었다. 한집에 살던 때는 엄마가 만든 음식을 맛있다고 생각해 본 적 없었다. 희진이의 질문에, 단 번에 생각난 건, 초등학교 때부터 지독하게 먹던 찜닭이다.


그 시기 엄마는 동네 닭집에서 일했다. 치킨집이 아니라 닭집이다. 엄마는 치킨집에 납품할 생닭을 부위별로 자르는 일을 했다. 생닭을 마음대로 주무르던 사람이라 우리 집 식탁에는 닭이 자주 등장했다. 아마 싼값에 생닭을 공수해 올 수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어떤 때는 간장에 조리고, 어떤 때는 기름에 튀기고, 또 어떤 때는 굽고, 자주 고추장 양념에 끓여 찜닭(우린 항상 그 음식을 찜닭이라고 불렀는데, 크고 보니 사람들은 닭볶음탕이라고 불렀다)을 해줬다. 그 시기에는 닭으로 만든 음식을 너무 자주 먹어서, 특별히 맛있다거나, 특별히 또 먹고 싶다거나, 아무튼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엄마 집을 떠나고, 엄마 밥을 일 년에 손꼽을 만큼만 먹게 된 지금, 엄마가 해준 음식 중 가장 기억에 남은 음식은 찜닭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른모먼트-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