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의 해방일지 #14
나이가 많다고 다 어른이 되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나이를 먹고, 나를 이루는 환경이 조금씩 변하다 보니, 나 스스로 ‘어른’이라는 단어와 조금씩 가까워짐을 느끼는 순간들을 마주해오고 있었다.
3. 보호자분 되시죠?
희진이는 잘 안 아프다. 안 아프다기보다는 잘 참는 성격이다. 간호사가 직업임에도 제 몸은 잘 돌보지 못한다.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다고 했던가.. 우리가 함께 산 지 1년이 조금 지난날, 그날은 대한민국의 축구 경기가 있었다. 우리는 함께 치킨을 먹으며 축구를 보려 했다. 킥오프 시간이 다가올 시간 즈음, “병원 가야 할 것 같아” 밤 10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라 우린 택시를 타고 집 근처 백병원 응급실로 갔다. 응급실을 가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응급한 희진이와 대기실에 앉아 차례를 기다렸다. 우리 뒤로, 누워서 실려오는 교통사고 환자, 왜인지 모르겠지만 안색이 너무 창백한 환자,를 비롯해 희진이보다 좀 더 응급해 보이는 환자들이 차례 없이 들어왔다. “이희진님!”이라는 소리에 희진이는 안으로 들어갔다. “보호자분 되시죠?” 잠시 ‘응?’했다. 맞다. 나는 희진이의 보호자다. 희진이가 아프다고 해서, 아파서 이 밤에 응급실에 왔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알릴 필요가 없었다. 남편인 내가 알면 된다. 내가 희진이의 보호자니까. 정황상 그런 기분을 느껴도 되나 싶었지만, 뿌듯? 늠름?한 기분이 들었다. 응급실을 가본 것도, 누군가의 보호자가 되는 것도, 그날이 처음이었다.
4. 현관문 안전고리를 걸었다.
TV 프로그램을 잘 보지 않는 우리 부부가 매주 꼭 보는 프로그램이 있다. (사실 나는 TV 드라마를 자주 보지만, 희진이는 TV보다는 유튜브 쪽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다. 그날도 어김없이 아파트 꼭대기 층에서 12시가 넘은 시간까지 둘이 조용히 TV를 보고 있었다. (노원역 번화가에 위치한 상계주공 7단지는 유난히 시끄러운 놀이터와는 달리, 집 안은 층간/벽간 소음도 없이 조용하다. 시공이 잘 되었다기보다는 주변 사람들이 조용한 편인 듯) 그날의 주제 역시 어떤 살인에 대한 이야기였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어느 지역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고, 가해자는 아직 잡히지 않았다. 소위 말해 미제 사건이었다. 방송이 끝나고도 여운이 남았다. 여운을 뒤로하고 여느 잠들기 전 밤과 같이 화장실을 가는데… 싸늘하다. 적막하다. 문 앞으로 가는 한 걸음 한 걸음에 여름인데도 살짝살짝 씩 추위가 느껴졌다. 현관문 안전고리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