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의 해방일지 #13
나이가 많다고 다 어른이 되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나이를 먹고, 나를 이루는 환경이 조금씩 변하다 보니, 나 스스로 ‘어른’이라는 단어와 조금씩 가까워짐을 느끼는 순간들을 마주해오고 있었다.
1. 아무튼 내 삶에서 첫 번째 선택
갓 일병이 되었을 무렵, 부대에 작은 소문이 났다. “우리 부대가 아이티 파병 모태 부대가 될 수 있다던데?” 해외 파병은 여러 부대의 군인들이 모여 또 하나의 새로운 부대를 만들게 되는데, 이때 모태 부대를 중심으로 전국의 군인들이 지원하게 된다. 따라서, 모태 부대의 지원자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합격할 확률이 매우 높다. 소문은 현실이 되었고, 나는 잠깐 생각했다. 정말 잠깐 ‘어차피 여기나 저기나 힘들긴 마찬가지일텐데, 돈이나 더 벌자’ 눈 앞의 이익이 너무나 확실했기 때문에 생각은 쉽게 마무리 되었다. 나는 아이티 파병을 가기로 선택했다. 생각을 정리한 저녁, 문득 스스로 선택해서 무언가 실행하는 일이 처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 중, 고는 뺑뺑이였고, 대학은 성적에 맞춰서 갈 수 있는 곳, 갈 수 있는 과에 들어갔다. 군대도 가야 된다 길래 적당한 훈련소와 적당한 보직으로 지원했다. 이제까지는 별 생각 없이 흘러가는 삶을 살았는데, 아이티 파병은 누구 하나 시킨 사람 없이, 혼자서 고민하고, 생각하고, 선택했다. 그 이후로 삶에서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일은 너무 많았다. 내 선택의 순간들이 모여 내가 되는 건지, 나로 살기 위해서 수 많은 선택들을 해야 하는 건지, 아직도 헷갈리지만. 아무튼 내 삶에서 첫 번째 선택은 아이티 파병이었다.
2. 내년 가을쯤 하겠습니다.
식사에 초대 받았다. 희진이와는 1년 6개월 정도를 만났고, 추석을 앞둔 어느 주말 점심이었다. 많이 긴장되었고 조금 설렜다. 오며 가며 인사를 드린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본격적?으로 찾아 뵙는 건 처음이었다. 예쁜 꽃을 한 다발 샀다. 첫 인사를 드리고, 첫 대화를 나누고, 첫 선물을 드리고, 또 첫 선물을 받았다. 희진의 어머니께서는 센스 있는 회색 셔츠를 선물로 주셨다. 안부처럼 오고 가던 대화 속에 살면서 받았던 어떤 질문과도 감히 비교할 수 없는 큰 질문을 받았다. “결혼은 생각하고 있는 거야?” 사실 초대를 받았을 때부터 조금은 예상했던 질문이었다. 어떻게 답을 할지 고민했었다. ‘내년 가을쯤 해도 괜찮을까요?’는 결정을 떠넘기는 듯해 어른 답지 못했고, “내년 가을쯤 하고 싶습니다”는 확신이 없어 보였다. “내년 가을쯤 하겠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내년 가을쯤, 결혼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