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의 헤엄일지 #2
수영은 생존을 위한 움직임이라 생각한다.
수영을 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목표지점까지 도달해 내는 것이 아닐까.
목표지점까지 쉽고 빠르게, 그리고 안정적으로 도달하기 위해서는 바른 영법으로 헤엄을 쳐야 한다. 영법이 잘못되면 팔, 다리, 몸에 힘이 들어간다. 힘이 들어가게 되면 쉽게 지친다. 지치면 오래 헤엄치지 못한다. 오래 헤엄치지 못하면 목표지점에 도달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진다. 그래서 우리는 바른 영법으로 헤엄을 쳐야 한다.
그리고 영법의 종류를 다양하게 배우는 이유 또한, 지치지 않고 오래 헤엄치기 위해서라 생각한다. 자유형, 배영, 평영, 접영. 네 가지 영법에 쓰이는 몸의 근육은 각기 다르다. 자유형으로 헤엄을 치다가 힘이 들면 배영으로 영법을 바꾼다. 배영으로 헤엄을 치다가 힘이 들면 평영으로, 그다음 접영으로 영법을 바꿔가며 헤엄을 친다. 한 가지 영법만 고집한다면 오래 헤엄치지 못한다. 오래 헤엄치지 못하면 목표지점에 도달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진다. 그래서 우리는 다양한 영법을 바른 자세로 연습해야 한다.
2024-02-17 <새로운 영법을 배우는 것보다 어려운 건, 잘못된 자세의 교정이다>
수영 강습 첫날, 선생님이 물었다. "수영은 처음 배우세요?" 고등학교 때 잠깐 배운 적이 있다는 내 대답에 자유형을 해 보라셨고, 딱히 피드백 없이 넘어갔다. 그리고 몇 주 뒤, 배영을 처음 배웠다. 선생님은 "배영 발차기는 자유형이랑 똑같이 무릎을 펴고 발등으로 차면 돼요."라고 하셨다. 놀랐다. 이제껏 나는 자유형 발차기를 할 때 무릎을 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때 알았다. 내 자유형 발차기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그렇게 몇 주가 지난 지금, 나는 자유형보다 배영을 더 잘한다. 잘못된 자세를 교정하는 게 새로운 무언갈 배우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사실을 몸소 깨달았다.
2024-02-18 <킥판 잡고 맨 뒤로 가세요>
배영이 조금 익숙해졌다. 자유형도 무릎을 펴고 차니 다리에 힘이 덜 들어가 더 오래 헤엄칠 수 있었다. 오늘도 어제와 같이, 킥판 들고 자유형 발차기 → 킥판 들고 자유형 → 자유형 → 킥판 들고 배영 발차기 → 배영 발차기 → 배영, 순으로 수업에 참여했다. 배영이 끝나면, 또 배영, 또 배영을 했다. 그때 선생님이 "킥판 잡고 맨 뒤로 가세요"라고 하셨다. 한 달 하고도 이 주 동안 수영을 배우며 가장 뿌듯한 순간이었다. '드디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구나'싶었다. '이렇게만 가면 평영, 접영도 금세 배우겠구나'싶었다. 그리고 내 기대는 1분 만에 물속으로 산산이 흩어졌다.
2024-02-24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게 있다>
나의 가장 오랜 운동은 태권도다. 우리 때 남자애들은 다 태권도를 했다. 딱히 이유는 없었고, 옆집 친구와 함께 학교 가듯 당연하게 태권도를 향했다. 초1부터 중3까지, 총 9년을 쉬지 않고 다녔다. 단 수로는 4단까지 땄다. 중3 마지막 해에는 겨루기를 특기로 하여 대회에 출전도 했고, 한 번의 예선탈락과 한 번의 금메달을 기록하고 태권도 인생을 마무리했다. 갑자기 태권도에 대한 이야기를 한 이유는 나의 뻣뻣함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겨루기를 할 때 발차기로 몸통을 맞히면 1점, 머리를 맞히면 3점이다. 무려 3배의 차이이지만 나는 이를 포기했다. 안 되는 것을 포기하고 남들이 한 번 찰 때 부지런히 세 번을 차기로 마음먹었다. 아무리 다리를 찢어봐도 도저히 머리 차기는 불가능했다.
그 시절의 시련이 다시 찾아왔다. 평영 발차기를 하는데, 도저히 옆으로 뻗어서 차는 게 안 되는 것이 아닌가. 나름 옆으로 벌린다고 벌렸는데, 선생님은 자꾸만 무릎을 몸 앞쪽으로 당기지 말고 양 옆으로 들어 올려야 한다고 하셨다. 두 레일을 그렇게 제자리에서 둥둥 떠 있기만 하자, 선생님은 혹시 발목이나 무릎 중 불편한 곳이 있냐고 하셨다. 그 정도다. 나의 뻣뻣함이. 그래서 나는 평영을 포기해야 하나라고 생각했다.
아무튼, 수업의 내용을 정리하자면..
두 발의 각도를 180도(일자)로 만들어 엉덩이에 닿을 정도로 모아 당겼다가, 45도 각도로 발을 차듯이 밀면서 다시 일자로 가지런히 모은다. 평영 발차기가 잘 안 돼서 몸이 가라앉을 때는 몸을 띄울 정도만 자유형을 조금 차 준다.
2024-02-25
킥판 들고 자유형 발차기 → 자유형 → 킥판 들고 배영 발차기 → 배영 발차기 → 배영 → 킥판 들고 평영 발차기 순으로 레일을 돌았다. 배영을 하며 팔을 돌리기 시작하면 코로 물이 들어온다. 그 느낌이 너무 불쾌해서, 팔을 돌리기 전부터 지레 겁을 먹는다. 이게 맞는 건지, 아니면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건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평영 발차기는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는데, 마지막 레일에서 선생님께서 "지금처럼 하는데, 발을 너무 쌔게 팍 차지 말고 지그시 눌러서 차 주세요"라고 하셨다. 사실, '지금처럼'이 뭔지도 잘 모르겠고, 발을 지그시 눌러서 차는 게 어떻게 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지난주보다 조금 나아졌음에 작은 안도를 했다.
새로운 영법을 배운다는 건, 새로운 무기가 하나 생기는 것과 같은 게 아닐까. 새롭게 부여받은 무기를 잘 갈고닦아 자신 있게 휘두를 날이 빨리 오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