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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 다시

다음 생엔, 무대 위의 나

by 이혜원

무대에 선 가수들은 단지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만은 아니다.
그들의 목소리는 우리 마음속 가장 깊은 곳을 건드리고, 그들의 눈빛과 몸짓은 보이지 않는 메시지를 전한다.
정지된 시간 속에서 울려 퍼지는 한 소절의 멜로디는 나도 모르는 사이 심장을 세차게 뛰게 만들고, 눈가에 뜨거운 감정을 맺히게 한다.
가수는, 그 자체로 하나의 마법이다. 영혼을 울리는 존재다.


나는 노래를 사랑한다.
소박하지만 진심 어린 이 사랑은 언제나 나의 일상 한가운데 있었다.
내가 가장 아끼는 시간은 텔레비전 앞에 앉아 오디션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밤이다.
화려한 무대와 조명, 긴장과 설렘의 공기가 화면 바깥으로 뿜어져 나오는 듯한 그 순간, 나는 마치 관객이 아니라 무대 아래 꿈을 꾼 채 서 있는 또 다른 도전자가 된다.


각 방송사마다 조금씩 다른 규칙과 방식, 그 안에서 경쟁하는 가수들의 다양한 음색과 개성.
나는 그걸 단순한 흥밋거리로 소비하지 않는다. 하나하나 진심으로 듣고, 바라보고, 응원한다.
노래를 통해 삶을 표현하는 그들의 뜨거운 열정과 끈질긴 노력은, 어떤 드라마보다 깊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가끔은 내가 그 무대 위에 서 있다면 어땠을까—하는 상상 속에 빠지곤 한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빠르게 상상의 날개를 접게 했다.
어느 날 남편에게 나의 작은 취미이자 꿈같은 이야기를 툭 꺼내놓았을 때,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넌 안 돼. 목청부터 다르잖아.”
그 말은 의외로 날카로웠고, 내 마음은 꺾인 듯 푹 꺼졌다.
내 목소리는 무대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그저 '노래가 좋아'라는 감정조차 누군가에겐 헛된 욕심이라 여겨지나 보다 싶었다.
그날 이후, 나는 한동안 오디션 프로그램조차 평소처럼 바라보지 못했다. 마치 남들의 꿈만 놀이하듯 구경하는 기분이 들어 마음이 아려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정말 안 되는 걸까?’
비록 이 생에서는 반짝이는 무대 위에 설 수 없을지 몰라도, 노래를 사랑하는 내 마음, 누군가의 목소리에 울고 웃는 나의 영혼은 그 자체로 충분하지 않을까?
나는 결코 꿈을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다짐했다. 다음 생에는 꼭, 노래 잘하는 사람으로 태어나자.
마이크 하나로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누군가의 하루를 위로하는 그런 가수가 되자고.
그리고 이 생에서는, 그다음 생을 잘 준비하기 위해 착하게 살아가자고.
좋은 일을 하고, 진심을 다해 사람을 대하고, 마음을 아름답게 가꾸자고.
노래처럼 따뜻하고 깊은 사람이 되어, 언젠가 다시 돌아올 그날에 더욱 빛나는 무대를 꿈꾸며 살아가고 싶었다.


누군가의 노래를 듣고 울거나 웃을 때, 나는 내가 얼마나 음악을 사랑하는지를 다시금 느낀다.
무대 위에 서진 못하지만, 그 노래의 가치를 누구보다 아끼는 단 한 명의 관객이자, 팬으로서 살아간다.
삶 그 자체가 하나의 노래이듯, 지금 이 순간도 시간이라는 무대 위에서 울려 퍼지는 한 구절일 것이다.


나는 오늘도 조용히, 마음을 열고 노래를 듣는다.
누군가의 떨리는 고백 속 음정에 고개를 끄덕이며, 스스로에게 속삭인다.


“다음 생엔 꼭, 무대 위에 서자.
이생에서는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아름답게 노래하자.”


그리고 그 소망 하나로도, 오늘이 충분히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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