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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지 않아도 나였던 날들

맵시는 몰라도, 나답게 입는 중입니다

by 이혜원

( 바닥에 뒹구는 노란 은행잎, 그것이 바로 나다. 정말 무덥던 여름 아래에서 잎사귀조차 제대로 펴지 못한 채 작고 여린 잎들 속으로, 나는 떨어져 있다. 갑자기 휘몰아친 장맛비처럼 가을비가 훌쩍 나를 데리고 갈 듯 내린다. 흘러나오는 재즈 음악은 감성에 젖은 나를 충분히 적신다. 고개를 돌리면, 검은 아스팔트 위로 타닥타닥 떨어지는 비. 그중 마지막 한 방울은 왕관처럼 반짝이며 잠시 반항하다 이내 조용히 스며든다.)


이 비가 그치면, 나는 어떤 외투를 꺼내 입어야 할까 가늠해 본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늘 같은 고민, 내게는 매번 '입을 옷이 없다.' 철마다 느끼는 이 낯익은 절망. 옷이 없는 게 아니라, 내 몸에 맞는 옷이 없다는 말이 더 맞다.


내 몸은 예쁜 옷을 거부한다. 어깨에 맞추면 가슴이 꽉 끼고, 가슴에 맞추면 어깨와 옷 사이에 어색한 공간이 생긴다. 결국 맵시가 나지 않는 옷차림이 될 뿐이다. 그래서 나는 최소한의 사회적 예의만 지킬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며 대충 옷을 입는다. 없는 것은 세련미일 뿐, 거울 속 내 모습도 봐줄 만하다. 촌스럽지만 않으면, 그 자체로 충분하다. 내가 나의 맵시니까.


옷장 앞에 서면 마치 나와 맞지 않는 퍼즐 조각들을 바라보는 기분이다. 이상하게도 옷가게에서 예뻐 보이던 옷들이 내 몸에 걸치면 전혀 다른 옷이 된다. 거울 속 나는 늘 어색하고, 익숙해지지 않는다.


엄마가 “네 몸에 맞는 옷을 찾으려면 시간이 걸린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나는 아직도 내 몸과 타협하는 중이다. 어깨 라인이 예쁘게 떨어지는 블라우스, 허리가 잘록해 보이는 원피스를 입고 싶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나는 그저 ‘나’ 일뿐이라는 걸.


남들이 보기엔 완벽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편안한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것 아닐까. 옷은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지, 나를 규정하는 기준이 아니다.


그래서 요즘은 옷을 고를 때 조금 다른 기준을 세운다. “이 옷을 입고 걸을 때 나는 당당할 수 있는가?”
“이 옷을 입고 웃을 때 나다움이 자연스러운가?”
이제 나는 타인의 시선보다 내 마음의 편안함을 우선한다. 그렇게 고른 옷들은 비록 유행을 좇진 않아도, 나만의 멋이 담겨 있다.


오늘처럼 가을비가 내리는 날, 나는 다시 생각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아름다움의 기준이 존재하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건 나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완벽하지 않은 몸, 완벽하지 않은 옷차림. 그러나 그것은 온전히 ‘나’이고, 그 나를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멋' 아닐까.


창밖으로 은행잎 하나가 더 떨어진다. 바람에 흔들리다 조용히 제 자리를 찾아가는 그 잎사귀처럼, 나도 나의 자리에서 나의 방식으로 살아가면 된다. 그것이 내가 찾은, 나만의 맵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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