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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샤인 Sep 12. 2023

#83 멍 때리기

: 넋을 빼놓으면 뇌가 쉰다네



저는 멍 때리기를 정말 잘해요. 고등학교 3학년 2학기 때 취업을 나간 자동차 부품 만드는 회사에서 소위 잘려버렸는데요. 그 회사에서 잘린 사람은 제가 처음이었대요. 그 이유 중 하나가 제가 자꾸 관리자들이 볼 때마다 멍을 때리고 있었다는 거였죠. 일은 안 하고 멍 때리고 있던 어린 아가씨는 아무런 통보 없이 잘려버렸고, 출근했더니 언니들이 왜 왔냐고 너 잘렸다고 해서, 울며 집으로 돌아왔던 생각이 나네요.







멍 때리기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있다.



아마도 그 회사에서의 일은 제가 원하지 않는 것이었고, 그래서 다른 공상을 하며 자주 넋을 잃었던 것 같아요. 지금의 제 인생을 찾아가라고 다소 불친절한 방식(통보 없이)으로 잘라 버렸나 봅니다. 회사에 감사해요. 그 후에도 자주 멍을 때려서 누군가 툭, 치며 무슨 생각하느냐고 해 흠칫 놀라는 상황을 많이 만났는데요. 내가 멍을 좀 잘 때리나 보다, 했죠. 어떤 순간들에 그러고 있을까 생각을 해보니 즐거울 때보다 정신적으로 지치고 힘들 때 몸을 쉬며 함께 멍을 때리는 걸 알게 됐어요. 뇌도 쉬고 싶었나 봅니다. 하지만, 꼭 지쳐야만 멍을 때리기보다 조금 의식적으로 해주면 좋은 과학적인 증거가 많이 나와 있어요.



멍 때릴 때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는 것은 과학적 근거가 있다

멍 때리기처럼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을 때 오히려 문제의 해답을 찾는 경우가 많은 것은 과연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는 일일까. 미국의 뇌과학자 마커스 라이클 박사는 지난 2001년 뇌영상 장비를 통해 사람이 아무런 인지 활동을 하지 않을 때 활성화되는 뇌의 특정 부위를 알아낸 후 논문으로 발표했다. 그 특정 부위는 생각에 골몰할 경우 오히려 활동이 줄어들기까지 했다. 뇌의 안쪽 전전두엽과 바깥쪽 측두엽, 그리고 두정엽이 바로 그 특정 부위에 해당한다.


라이클 박사는 뇌가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을 때 작동하는 이 특정 부위를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 ; DMN)라고 명명했다. 마치 컴퓨터를 리셋하게 되면 초기 설정(default)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고 휴식을 취할 때 바로 뇌의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활성화된다는 의미다.


DMN은 하루 일과 중에서 몽상을 즐길 때나 잠을 자는 동안에 활발한 활동을 한다. 즉, 외부 자극이 없을 때다. 이 부위의 발견으로 우리가 눈을 감고 가만히 누워 있기만 해도 뇌가 여전히 몸 전체 산소 소비량의 20%를 차지하는 이유가 설명되기도 했다. 그 후 여러 연구를 통해 뇌가 정상적으로 활동하는 데 있어서도 DMN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자기의식이 분명치 않은 사람들의 경우 DMN이 정상적인 활동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뜻한다. 스위스 연구진은 알츠하이머병을 앓는 환자들에게서는 DMN 활동이 거의 없으며, 사춘기의 청소년들도 DMN이 활발하지 못하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또한 DMN이 활성화되면 창의성이 생겨나며 특정 수행 능력이 향상된다는 연구 결과들도 잇달아 발표됐다. 일본 도호쿠 대학 연구팀은 기능성 자기 공명영상(fMRI)을 이용해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을 때의 뇌 혈류 상태를 측정했다. 그 결과 백색질의 활동이 증가되면서 혈류의 흐름이 활발해진 실험 참가자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신속하게 내는 과제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나타난 것. 이는 뇌가 쉬게 될 때 백색질의 활동이 증가되면서 창의력 발휘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코넬 대학 연구팀은 유명인과 일반인의 얼굴 사진의 차례대로 보여준 후 현재 보고 있는 사진이 바로 전 단계에서 보았던 사진의 인물과 동일한지를 맞추는 ‘n-back’ 테스트를 실시했다. 그 결과 대부분의 실험 참가자들은 DMN이 활성화될 때 유명인의 얼굴을 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일치시킨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즉, 멍하게 아무런 생각 없이 있을 때 집중력이 필요한 작업의 수행 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한 기존의 인식을 뒤엎은 연구 결과였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잠깐의 먼산바라기를 할 시간조차 차츰 잃어가고 있는 형편이다. 지하철을 탈 때에는 가만히 있기보다는 스마트폰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하며, 잠깐 쉬는 시간에도 휴식이라는 이름 아래 게임을 주로 즐긴다. 하루 종일 끊임없이 뇌를 통해 무언가를 하기 바쁜 현대인들에게 잠깐씩의 멍 때리기가 절실한 셈이다. 멍해 있는 것은 뇌에 휴식을 줄 뿐 아니라 자기의식을 다듬는 활동을 하는 기회가 되며 평소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영감이나 문제 해결 능력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멍한 상태 자체가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만들어준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문제에 대한 배경 지식과 그를 해결하려는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만 그 같은 달콤한 결실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아르키메데스의 경우에도 평소의 배경 지식과 문제를 해결하려는 절박함이 있었기에 목욕탕의 물이 넘치는 것을 보고 유레카를 외칠 수 있었으며, 사과나무 아래서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 역시 그런 경우이다. 다시 말하면, 뇌는 준비된 자에게만 멍 때리기를 통해서 베푼다고나 할까.


출처 - 과학향기 홈페이지 

글 : 이성규 과학칼럼니스트



명사인 명상처럼, 동사인 멍 때리기가 그저 시간을 낚는 강태공처럼 보인대도 외려 일에 몰두하고 있을 때보다도 더 강력한 활성화를 보인다고 하니 안 할 수가 없는 거겠죠? 그나저나 '멍 때리기' 대회는 왜 매년 시간 때가 안 맞아 놓치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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