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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샤인 May 29. 2024

이웃님, 담배 좀.

아기 태어나기 D-day 5


나는 아파트 9층에 살고 있다. 바로 아랫집인 8층에는 중년부부가 살고 계신데 집에서 흡연을 한다. 아이들이 없는 집이다. 그래서 자주 손님들이 찾아와 저녁에 술자리를 갖고 그렇게 자유롭게 사시는 듯 했다. 어떻게 일상을 사는지까지 내가 알 수 있었던 것은 담배 연기가 너무 지독하게 우리 집으로 유입됐기 때문이다. 대체 담배를 얼마나 피워대는 건지 시도때도 없이 올라와서 반대편 아파트에 가서 8층의 집 베란다를 봤다. 환하게 불을 밝힌 집은 거실까지 다 보였다. 문을 활짝 열어놓고 많은 사람들이 둘러 앉아 화투를 맞추고 있었다. 


일단, 이렇게 파악을 한 뒤 나는 며칠을 참았다.


그런데 베란다로 올라오는 공기는 베란다 문을 닫으면 되는 것이었지만, 화장실 환풍구를 통해 들어오는 공기는 우리집 화장실을 순식간에 공중화장실처럼 만들어버렸고 퀘퀘한 담배냄새가 화장실을 가득 채우지 못하게 늘 화장실 불을 켜놓고 생활해야 했다. 한편 그런 마음이 들었다. 왜 이웃집이 흡연을 하는데 내가 내 돈을 써가며 전기를 틀고, 환풍구를 쉼 없이 돌려야 하나?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그래도, 참으라면 참겠다. 속으로 욕을 하며 참으며 '어서 이사를 나가야지' 하며 결론을 냈겠지만,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은 곧 태어날 우리 아기 때문이었다. 신생아가 있는 집에 담배 냄새가 퍼지는 것이 참을 수 없도록 미안하고 속상했다. 그래서 나는 쪽지를 썼다. 



안녕하세요, 이웃님.

저는 곧 출산을 앞둔 산모입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화장실에서 담배를 태우시나요? 환풍구를 통해서 참기 힘든 냄새가 저희 집으로 퍼집니다. 곧 태어날 신생아의 약한 호흡기를 위해서라도 배려 부탁드립니다. 괴롭습니다. 양해 부탁드려요.


하며, 사탕을 달아놨다.



그날, 저녁. 누군가 집문을 노트했다. 짧고 앙칼진 노크소리였다. 나는 직감적으로 아래집에서 온 걸 알았다. 맹탕처럼 보여선 안된다는 생각에 목소리에 앙칼지게 힘을 주었다. "누구세요?" 그러자, 밖에서 대답했다. "아랫집이에요." 드디어 올 게 왔구나. 나는 옷을 대충 걸쳐 입으며 생각했다. 몽둥이를 들고 서 있는 것은 아닐까, 갑자기 머리채를 잡고 흔드는 것은 아닐까... 에라, 모르겠다, 문을 열었다. 열린 문 밖에는 한 인상 좋은 아주머니가 서 있었다. 아주머니의 한 손에는 수박 한통이 들려 있었다. 27,000원 짜리 가격표가 붙어 있는 수박 한통. 만삭인 내 배만한 크기였다. 풍경이 좀 재밌었다. 아주머니는 사과를 했다. 그리곤 앞으로 조심하겠다며, 순산하시라는 말로 인사를 전했다. 나또한 양해해주셔서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그 이후론 담배 냄새가 나지 않는다. 변비가 있어서 담배를 태우며 일을 보는 습관이 있어 그랬다는 말이 생각난다. 변비는 어떻게 되셨는지 궁금해진다. 나도 임신 중에 어쩔 수 없이 생긴 변비로 '푸룬주스'를 먹어 꽤 효과를 봤는데... 언제 한번 푸룬주스를 사다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나마 싸우려고 들었던 내 자신을 조금 혼내고는, 아직 세상은 따뜻한 곳임을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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