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비슷한 또래의 자식들이 부모와 여행을 가는 경우 ‘부모님 모시고 간다’고 한다. 나는 ‘엄마와 함께 여행 간다’고 얘기한다. ‘모시고’ 가는 경우와 ‘함께’ 가는 경우가 과연 다른 것일까? 나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엄마와 ‘함께’ 여행 다니는 우리 모녀의 여행엔 엄마도 나도 각자 여행의 주체자가 된다. 행선지를 결정하고 세부적인 루트와 일정을 짜는 사람은 엄마다. 나는 그에 맞추어 항공권과 숙소를 예약한다. 그리고 현지에 도착하면 타고난 명민함과 축적된 해박함과 열심히 준비해 온 정보력을 발휘하여 엄마가 가이드 역할을 맡고, 나는 휴대폰에 의존하여 맛집 가는 길을 찾고 그때그때 필요한 예약을 한다. 확실히 우리의 경우는 내가 엄마를 모시고 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내가 엄마를 따라가는 것이 맞을 듯하다. 아무튼 우리는 ‘함께’ 간다.
사람들은 70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자신의 체력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며 장거리 여행을 스스로 포기하는 듯 보인다. 70대의 부모를 둔 자식들도 부모님이 멀리 여행을 다닐 수 없다고 단정 짓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다르다. 처음 떠난 유럽 배낭여행에서 수많은 서구 노인들이 무거운 배낭을 지고 흔들리는 야간열차에 올라 비좁은 침대칸에 몸을 싣고 여행하는 모습을 인상 깊게 보았다.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는 대학생 이외에 배낭여행을 다니는 성인들이 별로 없을 때였고, 노인들이 배낭여행을 다닌다는 것은 아예 상상조차 못하던 시절이었다. 그때 나는 그분들을 보며 나이가 결코 여행에 큰 걸림돌은 아님을 확신할 수 있었다. 내가 살아가고 활동하고 있는 장소가 한시적으로 바뀐다고 해서 그다지 어려워질 것은 없다. 살던 대로 다른 곳에서 살아가면 되는 것뿐이다. 자신의 건강 상태와 체력에 맞게 적절히 조절해가며 살면 되는 것이다.
엄마가 자신의 체력 안배를 위해 참으로 잘하고 있는 것은 시시때때로 누울 곳을 찾아서 휴식하는 것이다. 미얀마 양곤 시청 맞은편 마하반둘라 공원 벤치에서 잠들었던 엄마를 재밌다는 듯이 카메라에 담은 것이 시작이었다. 가장 최근에 다녀온 그리스 여행에서는 하니아 스퀘어 1866 공원 벤치에서 낮잠을 즐기다가, 다시 돌아온 아테네 신타그마 광장 앞 공원에서 누워 있는 사람들을 발견하고는 시간이 없어서 여기서는 누워보지 못했다고 아쉬워하는 우리 엄마다. 엄마는 여행 중 기회가 날 때마다 사람들 없는 한적한 곳에 누워 휴식을 취하거나 한숨 자다가 일어나곤 한다. ‘그래! 이렇게 하면 되는 것이다.’ 자신에게 맞추어 자기만의 방식으로 여행하면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 엄마는 만 80세가 되셨다.
“엄마, 다음엔 어디 가 보고 싶어?”
“이젠 더 가 보고 싶은데 없어.”
“그럼 이제 더 이상 안 갈 거야?”
“.............”
엄마가 세상을 더 보고 싶은 의욕이 있는 한 우리의 여행은 계속될 것이다. 엄마의 발걸음에 맞춰 곁에서 나란히 걸으며 때로는 손도 잡아 드리고 이따금 주저앉아 쉬기도 하면서 함께 더 보고 더 느끼고 더 나눌 것이다. 엄마는 벌써 여러 권의 책을 또 읽어 두셨다. 우리의 다음 여행 목적지에 관련된 책들이다. 엄마와 함께 가는 다음 행선지는 어디가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