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놀란 모양이다.
새벽 5:20분. 사람을 마주치기엔 조금 이른 시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동시에
눈앞에 눈이, 코 앞엔 코가.
꼭 내 키만 한 여자가.. 나란하다.
무려 사람인 여자가 서 있다.
놀랐다. 귀신이 아니라 사람이라 더 놀랐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들르는 센터 건물의
7.8.9층은 오직 요양병원이 차지하고 있다.
보아하니, 병원에 머무는 간병인 이모님인 듯하다.
피곤에 잔뜩 절은 몰골로, 이 시간에 여기에. 내 맘대로 추측한 데에는 그녀에게서 진하게 뿜어 나오는 제법 익숙한 냄새 탓이다. 마스크를 가뿐히 뚫고 들어와 기어이 후각을 깨어나도록 한 그것.
지린내.
환자의 것이거나 그녀의 것인, 그런데 내게도
낯설지 않아 미간을 찌푸릴 이유가 없는.
어릴 적,
좁은 방과 조금 덜 좁은 방 사이엔 욕실이라기도
뭐 하고, 주방이라기도 뭣 한 데다가.
급기야 연탄을 갈 수 있는 난방 구멍까지 두루 갖춘 다섯 평 남짓한 멀티 공간이 있었다. 그곳에선 365일, 음식 냄새도 아니고 비누 냄새도 아닌,
지린내가 났다.
이유인즉슨
깊은 밤이라 무서워서.
훤한 대낮이라도 귀찮으니까.
둘 중 하나의 마음으로 작은 것쯤이야 거리낌 없이
멀티공간 하숫구멍을 향해 간단히 해결하던 철없는 우리들 탓이었을 테다.
큰 일을 보려면 멀리까지 나가는 것도 모자라 심지어 숨을 참고 견뎌야 하는 화장실이 있던 집.
변비의 원인을 새삼 톺아보게 된다.
비단 그 집뿐만이 아니었다.
학교를 코앞에 둔 편리성과 쾌적함을 두루 갖춘 집을 뒤로하고 꽤나 여러 차례 이삿짐을 쌌다 풀었다를 반복해야 했다.
또? 또? 를 외치며
피란길 짐가방을 둘러매는 이유란 언제나 집안 사정이었지만, 막상 집 안에 사는 어린이는 그게 어떤 사정인지 알 방도가 없었다.
그러는 동안
나와 함께 머무는 사람.
나만 두고 떠나는 사람.
이랬다 저랬다 멋대로 구는 사람을 비롯해
많은 이들의 모습을 가만 목도하고 있자니
무력해지기 일쑤였다.
가라.
가지 마라.
마음속으로 나 역시도 이랬다 저랬다 알 수 없는 감정에 널을 뛰며 기진맥진했던 걸로 나는 기억한다.
마음이 고되어서
지린내 나는 집쯤이야 일상의 큰 타격이 되긴 힘들었다. 자칫 무개념해 보이는 시절을 거쳐 왔다고 해서 상식 없는 어른으로 자란 건 아니지만, 덕분인지 신체도 정신도 비위가 좋은 편이다.
웬만큼 지저분하고 더러운 환경에도 잘 견디고
어느 정도 더럽고 몰상식한 인간을 보고도 그럭저럭 사는 걸 보면, 그늘진 인생도 나름 의미 지을 수 있겠다.
주로 '불운한 애'로 나는 불렸다.
그럼에도 거듭된 이벤트들 덕분에 몇 곱절 더 나이가 먹은 지금, 보통의 어른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남들에겐 불쾌할 수 있는 냄새가
내게 불쾌하기만 하진 않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