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여간의 겨울방학이 끝났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 두 달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 방학이 시작할 때는 뭔가 하나는 끝내야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시작했다. 그러나 늘 그렇듯 이번에도 계획은 계획에서 끝이 났다. 후회만 남긴 채 방학은 결국 끝이 났고 새 학년이 되었다. 아이가 1학년이면 엄마도 1학년이고, 아이가 6학년이 되면 엄마도 6학년이 된다. 어느 학년이든 새 학년의 설렘과 두려움은 똑같이 시작된다.
3월 1일은 삼일절이다. 1919년에 일어난 삼일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한 국경일인데 언제부턴가 3월 1일은 개학전날이 되었다. 이미 일주일 전부터 책가방 정리를 하긴 했지만 다시 한번 빠진 것은 없는지 챙겨본다. 개학전날은 맘 편히 놀 수 있는 날이다.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공부가 될 리 없다. 쉬는 날이라고 해서 당일여행을 하는 것도 부담이다. 그렇게 개학을 하루 앞두고 특별히 하는 것도 없이 하루를 그냥 보낸다.
방학 동안 늦잠을 자던 아이들이 개학날이 되니 깨우지 않아도 일어난다. 아무래도 밤잠을 설친 모양이다. 내가 어릴 적 느꼈던 기분을 내 아이들도 느꼈겠지. 학교에 가지 않는 나도 이렇게 뒤숭숭한데 아이들은 오죽할까. 빨리 일어나 준비한 덕택에 아이들은 일찍 학교에 등교했다.
드디어 해방이구나. 순간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미묘한 감정이 다가온다. 해방된 마음은 어떤 걸까. 시원하고 뻥 뚫린 기분인 건가. 해방된 거라고 하기엔 시원한 감정은 느껴지지 않는다. 해방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본다. 구속이나 억압, 부담 따위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뜻인데 왜 해방되었다는 생각이 뇌리에 스쳤을까.
엄마로서 아이들을 잘 케어해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건 아닐까. 특히 겨울방학은 새 학년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이므로 좀 더 부담이 컸을지도 모르겠다. 첫째 아이는 중학교를 앞두고 있는 6학년이다. 마지막 초등시기를 어떻게 잘 보내야 할지,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머릿속은 온통 거미줄처럼 얽혀있다.
아이들은 학교에 갔고, 나는 덩그러니 책상 앞에 앉아 있다. 내가 원했던 분위기다. 조용하고 차분하다. 오전 햇살이 비치는 책상 위 노트북을 펼치고 잔잔한 피아노곡을 튼다. 향긋한 커피도 한잔 내려 본다. 모든 게 완벽하다. 하지만 내 기분은 해방된 느낌이 아니다. 여전히 속 시원한 게 하나도 없다. 그저 고요할 뿐이다. 노트북에서 흘러나오는 피아노곡과 어항에서 졸졸 흐르는 물 정화기 소리만 들린다.
뇌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아무 생각이 없는데 복잡한 이 느낌은 뭐지. 머리가 복잡하니 뇌가 힘들고 그러다 보니 몸이 지친다. 가만히 있는데도 몸이 힘들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다. 작은 일 하나도 감당할 힘이 없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도 귀찮아서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누워버렸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할 수 없는 상태. 이것이야말로 무기력한 상태가 아닐까. 해방일 줄 알았던 개학이 무기력함으로 왔다. 한참을 그렇게 누워있었다. 생각을 해본다. 뭐부터 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 진짜로 하는 건 어때요? 해방클럽. 전 해방이 하고 싶어요. 해방되고 싶어요. 어디에 갇혔는지는 모르겠는데, 꼭 갇힌 것 같아요. 속 시원한 게 하나도 없어요. 갑갑하고, 답답하고, 뚫고 나갔으면 좋겠어요.”
‘나의 해방일지’의 염미정과 같은 마음이다. 갇힌 것도 아닌데 갑갑하고 답답한 마음. 몸은 해방되었지만 두뇌는 해방되지 않았나 보다. 머릿속에 아이들의 앞날에 대한 걱정과 공부에 대한 답답함으로 꽉 차 있는 것 같다. 걱정해 봤자 달라질 건 없고, 애태우며 아이들을 케어한들 바뀌지도 않을 텐데 왜 아직까지도 내려놓지 못하고 이리저리 헤매고 있는 걸까.
여전히 나와 아이들을 동일시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학창 시절 아무것도 모르고, 욕심도 없이 그냥 그렇게 지내왔던 시간들. 그때가 너무 후회스러워 내 아이들은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한가 보다. 내려놓기를 백번 천 번 한다고 다짐하지만 이렇게 또 새 학년이 시작되니 스멀스멀 욕심이 올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