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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미 Mar 10. 2023

30대 마지막 변신을 위한 도전

“이놈의 코로나 때문인가 봐요. 갑자기 새치가 많이 늘었어요.”

“이 정도는 아직까지 괜찮아요. 헤어라인만 그래요. 보이는 데라 얼마나 다행이에요. 저는 고객님 나이쯤에 뒤통수 쪽으로 흰머리가 너무 많았어요. 머리 뒤쪽이라 보이지 않아서 그냥 다녔다니깐요. 나중에 미용실 가서 알고 얼마나 놀랬던지.”      


작년 이맘때쯤 처음으로 새치염색을 했다. 나도 모르게 미용실원장님께 주저리주저리 변명을 늘어놓았다. 원장님은 더 심한 사람 많다며 나를 위로해 주었지만, 헤어라인에 있던 까맣고 풍성한 머리카락은 온 데 간데 사라지고 흰머리로 가득 찬 것이 꼭 파뿌리 같아 너무 우울했다. 그래도 안 보이는 뒤쪽은 아직 까맣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인 건가. 보이는 곳은 바로바로 염색해 줄 수 있으니 말이다. 잠깐의 대화와 따뜻한 커피 한잔이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미루고 미뤄 3개월에 한 번 하던 뿌리염색을 2개월에 한 번 새치염색으로 하게 됐다.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흰머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당장 미용실로 달려가고 싶지만 돈이 아깝다는 생각에 2개월을 버틴다. 흰머리가 보이기 시작하면 되도록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지 않는다. 또 머리를 절대로 묶지 않는다. 흰머리가 보이기 전에 머리카락을 단발로 자른 게 얼마나 다행인지.

     

고등학생 때부터 최근까지 머리카락을 계속 길렀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생각해 보니 중학생 때 귀밑 3센티로 잘라야 했던 게 너무 싫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짧은 단발머리는 나를 더욱 못생기게 만들었다. 시력도 안 좋아서 안경까지 쓰고 있으니 누가 봐도 촌스러워 보였다. 고등학생 때 두발자유화가 되면서 못 길렀던 머리카락을 실컷 길러보리라, 긴 생머리를 늘어뜨리며 다니리라. 아마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땐 긴 생머리의 여자가 인기 있던 시절이기도 했으니, 그래서 괜히 더 자르지 않고 긴 머리를 선호했는지도 모르겠다.

 

 

‘나 혼자 산다’에서 기안 84는 40대가 되면 못할 것 같다며 탈색을 시도했다. 그걸 보며 동질감을 느꼈다. 30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나도 안 해본 걸 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20년 넘게 고수해 온 긴 머리카락을 단발로 잘랐다. 하지만 기안 84에 비하면 이건 너무 평범하고 소심한 변화였다. 그래도 등허리까지 오던 긴 머리카락을 어깨선까지 자르기에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여자는 심경의 변화가 있을 경우 파격적인 변신을 시도한다. 20년 넘게 길러온 머리를 단발로 자른다는 건 정말 특별한 경우다. 지금껏 나는 긴 머리가 어울린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머리숱이 많아 단발로 자르면 머리가 붕 떠서 안 예쁠 거라고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20센티 정도 되는 길이의 머리카락을 자르게 된 이유는 단순한 마음과 호기심 때문이었다. 여태껏 해보지 못한 단발머리스타일이 나에게 어울릴까 하는. 40대가 되기 전에 새로운 변신이 그냥 하고 싶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니, 사실은 나도 모르게 40대를 앞두고 심경의 변화가 찾아온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단발로 자르고 s컬 파마를 했다. 하지만 조금 지나자 헤어가 제멋대로 움직였다. 결국 3개월 만에 다시 볼륨매직을 했다. 과감히 자르지 못하고 어깨선으로 맞췄더니 마구 뻗치기 시작한다. 일자 단발머리는 너무나 볼품없어 보였다. 참지 못하고 다시 레이어드컷을 했다. 이 또한 완전히 맘에 들지는 않았다. 아직 40대가 되려면 시간이 좀 있으니 그동안 좀 더 길러서 어울리는 헤어스타일을 해보리라. 맘에 들지 않는 헤어스타일 때문에 속상한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도 우려와는 달리 단발스타일도 나쁘지 않았다. 생각보다 관리가 쉬워 편했다. 머리도 빨리 감고, 빨리 말릴 수 있어 시간이 절약돼서 좋았다. 이렇게 편할 줄 알았더라면 좀 더 일찍 단발로 자를걸 하는 아쉬움까지 생겼다. 어릴 적 엄마가 왜 단발머리 스타일을 선호했었는지 이제야 이해가 간다. 이렇게 나도 40대 아줌마가 되어가고 있다.     


결혼 후 아이를 임신함과 동시에 전업주부로 아이들만 케어하며 지금껏 살았다. 경단녀가 되어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40대가 되어 버렸다. 이제 아이들도 스스로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내 인생을 위해 도전하고 변화를 꿈꾸자. 긴 머리카락을 단발로 싹둑 자른 것처럼 용기를 내보자.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또다시 도전하면 된다.  처음에는 어려울지 몰라도 두 번째는 좀 더 쉽다. 막상 해보면 생각보다 별거 아닐 거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 하지 않던가. 지금부터 시작해도 늦지 않았다.  

   

‘마흔은 완성되는 나이가 아니라 뭐든지 되다 마는 나이다.
결과가 아닌, 과정을 살아가는 나이가 마흔이다.’
<김미경의 마흔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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