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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미 Mar 15. 2023

적기교육에 실패했지만
꾸준히 했어요.

엄마표 영어 공부 스토리

“엄마! 영어선생님이 영어 왜 이리 잘하냐고 칭찬해 주셨어. 수업 중에 다섯 번은 넘게 칭찬하시던데?

“하하, 그래? 집에서 꾸준히 공부했더니 칭찬받았네? 기분 좋겠다.”


아들은 3월부터 다니게 된 영어학원에서 있었던 일을 담담히 엄마에게 전한다. 선생님이 좀 오버해서 얘기한 것 같다고 무던한 말투로 얘기하지만 이미 입 꼬리는 반쯤 올라가 씰룩거린다.   

   

지금껏 엄마표로 집에서 영어공부를 하던 아이는 결국 6학년이 되고 영어학원에 등록했다. 아이가 못해서가 아니다. 나와 아이의 관계를 위해서다. 엄마가 사춘기 앞둔 아이를 가르친다는 것은 못할 짓이었다. 무엇보다 관계가 중요하다는 걸 알기에, 지금껏 억지로 끌고 오던 밧줄을 학원선생님께 넘겨주었다.    



  

영어울렁증이 있는 내가 아이들에게 제일 큰 바람이 있다면 영어를 잘했으면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가 갓난쟁이 때부터 영어책을 사기 시작했다. 영어 노래 CD와 DVD를 틈나는 대로 틀어주며 영어를 익숙하게 했다. 아이가 노래를 따라 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대견하고 기뻤다.     


7살 후반부터 영어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켜야겠다는 생각에 온라인 영어도서관에 가입했다. 매일 책을 읽고 문제를 풀며 주 1회 전화수업도 받게 했다. 그때 당시에 꽤 큰돈이었지만 아이가 체험수업을 해보더니 계속하고 싶다고 해서 시켜주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는 책을 읽는 것이 부담이었는지 힘들어했다. 어르고 달래서 3개월을 겨우 하고 그만두었다.      


전부터 하던 패드수업에 영어를 추가하였다. 확실히 영어도서관보다는 쉽고 재미있었다. 동생과 함께 노래를 따라 부르고 춤추면서 재미있게 했지만 머릿속에 들어가는 건 별로 없는듯했다. 이것도 결국 1년 정도하고 그만두게 되었다.      


그러다 한 카페의 공동구매로 영어책과 인터넷강의를 구입해서 보게 되었다. 강의를 듣고 나면 책 읽기를 연습시켰다. 수시로 CD를 듣게 해 주고 책을 읽게 하였다. 잘하다가도 한 번씩 같은 단어를 몇 번이고 틀렸다. 너무 많이 틀려서 화가 났다. 결국 아이는 하기 싫어했다. 그래도 이번엔 그만둘 순 없었다. 이미 사둔 책을 다 읽어야 했다.      


억지로 아이를 다그치고 혼내며 영어책 읽기를 하였다. 집중 못하고 산만한 아이를 혼내서, 눈물콧물 쏙 빠지게 한 뒤에야 아이는 단어를 제대로 읽었다. 그러고 나면 아이는 한 단계 성장했다. 계속해도 못하면 그만뒀을 텐데, 한 번씩 혼나고 공부하면 또 잘했다. 난 그저 아이가 집중을 안 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3학년 말 때쯤 단어공부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읽었던 책이니까 이번엔 단어를 외우게 할 심산이다. 그런데 분명 잘 읽는데 쓰지를 못한다. 쓰기 연습을 시켰는데도 테스트만 보면 다 틀린다. 또 화가 난다. 영어단어카드도 만들고 테스트지도 만들어가며 가르쳤지만 아이는 스펠링 한 두 개씩 계속 틀렸다. 너무 답답하고 화가 나서 더 이상은 안 될 것 같아 단어 외우기를 포기했다. 


1년쯤 지나고 나서 다시 단어 외우기를 시켰다. 그제야 아이는 좀 더 수월하게 외웠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작년에 비해 맞는 양이 현저히 늘었다. 그때 깨달았다. 지금이 내 아이의 적기라는 것을. 발달과정상 아직 외우는 게 쉽지 않은데 억지로 외우게 했다는 사실에 조금 미안했다. 걸음마가 안 되는 아이에게 걸음마를 하라고 다그친 것과 다를 게 없었다.   



   

내 아이가 영어를 잘했으면 하는 마음에 너무 서둘렀나 보다. 일찍부터 준비했던 계획을 실패하지 않기 위해 너무 앞만 보고 달린 것이다. 아이의 발달과정을 이해하고 적기에 가르쳤어야 하는데 그때는 왜 그걸 알지 못했을까. 조금만 더 천천히 갔다면 아이가 덜 힘들었을 텐데. 이제와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그래도 잘한 점을 하나 꼽는다면 지금까지 꾸준히 했다는 것이다. 시도해서 실패하고 포기했지만 그래도 꾸준히 영어책을 내려놓지 않았다. 온라인 영어도서관에 가입해서 다양한 영어책을 부담 없이 읽게 했다. 더불어 영어 리딩 문제집을 풀게 했다. 읽기, 쓰기를 동시에 하는 공부를 했다. 그 유명한 ‘잠수네영어’처럼 하루에 3시간 이상씩 영어에 투자하진 못했다. 하지만 조금씩 지금껏 꾸준히 했다. 엄청 잘하고 뛰어난 아이는 아니지만, 노력한 만큼 아이는 성장했다.


이제 6학년이고 수능까지 앞으로 6년이 남았다. 이제 딱 반을 달려온 셈이다. 지금까지의 과정보다 앞으로의 과정이 더 중요하다. 엄마표가 아니라 아이표 영어를 해야 할 시점이다. 아이는 그동안 엄마와 했던 공부습관을 밑바탕으로 스스로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부터 앞서지만 아이를 믿어보기로 한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꾸준히 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이 세상에서 중요한 것들 대부분은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을 때에도
꾸준히 노력한 사람들에 의해 성취되었다.
- 데일카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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