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여행 3] 산다칸 문화유산 트레일
추워서 잠이 깼다. 에어컨을 꺼놓고 다시 잠들었는데도, 냉기가 남아 아침까지 잠자리가 쾌적했다. 오늘 다시 저 찜통 속으로 나갈 생각을 하니 한숨이 나왔다. 1층 카페에서 여유롭게 아침식사를 하면서 바깥을 쳐다보니 탁 트인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산책 겸해서 해변길을 따라 멀지 않은 버스터미널까지 걸었다. 이른 시간인데도 벌써 후덥지근한 날씨가 훅하고 엄습해오기 시작했다. 하루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기진맥진해진 느낌이다.
첫날이라는 핑계로 느지막하게 호텔을 나섰다. 숙소에서 간단한 지도 한 장을 얻어서 산다칸 헤리티지 트레일(Sandakan Heritage Trail)이라 불리는 코스를 따라 걷기로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많이 파괴되었지만, 산다칸에는 다채로운 역사의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 있다. 이 트레일은 오래전 중국인과 인도인이 오가면서 무역에 종사하던 시절부터, 19세기에 영국 보호령으로 북보르네오 회사가 통치하던 시절, 2차대전 때 일본 점령기, 그리고 종전 후 영국 식민지 시절까지 이 지역의 역사적 흔적을 엮은 가상의 순례길인 셈이다.
막상 방문한 유적은 소박하다 못해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호텔을 나와 상가와 식당이 즐비한 거리를 건너니 처음 만난 곳이 마스지드 자멕이라는 모스크였다. 다른 이슬람 도시에서 보던 웅장하고 정교하게 장식된 건축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곳을 왕래하던 무슬림들이 세운 지역 최초의 모스크라는 역사적 상징성이 있을 뿐 저렴한 현대적 건축 자재로 얼기설기 지은 소박한 건물이었다. 나지막한 언덕 위의 푸른 색을 칠한 건물로 멀리서도 눈에 잘 띄지만, 가까이 가보니 종교적 엄숙함 보다는 동네 노인들의 사랑방 분위기를 풍겼다.
완만한 비탈길을 따라 옛 식민지 시절 행정 관서이던 Wisma Warisan 구역으로 올라가니 광장 주변에 몇몇 기념비가 모여 있었다. 1881년 영국의 식민지 기구인 북보르네오 회사의 직원으로 사실상 최초의 산다칸 시민이 된 윌리엄 프라이어를 기념하는 비석, 제2차 세계대전 때 산다칸 해방을 기념하는 비석 등이 땡볕 아래 소박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사실 지도가 없었으면 그냥 지나칠 법도 한 자그마한 비석들이었다.
광장 옆으로는 언덕길을 올라가는 100계단이 시작되는 지점이 있었다. 지붕으로 덮은 조잡한 시멘트 계단이지만 자연을 테마로 한 벽화로 장식해 제법 멋을 부렸다. 땀을 뻘뻘 흘리며 계단을 다 오르자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고지대 도로가 나왔다. 이 길을 따라 가면 야네스 케이스 하우스라는 옛 건물이 있다. 길가 나지막한 계단 위로 유럽풍의 목조건물이 서 있고 그 옆에는 잔디밭 사이로 영국식 티 하우스가 있는 제법 운치있는 곳이다. 식민지 시절의 유럽인들은 주로 이 고지대에서 살았다고 한다. 100계단은 말하자면 이 지역과 항구를 잇는 통로였다.
이 집 주인은 영국인으로 산림보호 전문가로 파견된 사람이었는데, 사실은 미국인 부인인 야네스가 이곳에서 살던 다양한 경험을 소설로 남겨 더 널리 알려졌다. 야네스는 당시 보르네오의 문화와 삶을 문학으로 표현했을 뿐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때 겪은 전쟁 포로 수용소 생활도 책에 담았다. 에어컨이 시원하게 돌아가는 잘 보존된 집 안에는 당시의 사진과 가구, 비품, 야네스 케이스의 소설 따위가 전시되어 있었다.
답사 코스는 생각보다 훨씬 길었다. 실제로 그랬는지, 아니면 점점 더 강해지는 열대의 뜨거운 햇살과 습기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이 땅에는 유럽인 뿐 아니라 중국인과 다양한 민족이 살았기에 이들의 흔적도 남았다. 불교 사원 관음사, 도교 사원 삼성궁, 옛 중국 영사관 계단 역시 산다칸에 뿌리내린 화교의 전통을 보여주는 소박한 유적들이었다.
인내심이 고갈될 무렵 거의 마지막으로 들른 곳이 성 마이클 앤드 올 앤절스 교회라는 성공회 성당이었다. 언덕 위의 이 건물은 당시로는 획기적으로 사바 주 최초로 지은 석조 교회로 유명했다. 성당 이웃 고등학교에서는 공연 연습 중인지, 경쾌하고 요란한 음악 소리가 흘러나왔고, 하교길의 학생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입구가 잠겨 있어 돌아 나오려다 사무실에 들러 이야기했더니 문을 열어준다. 내부는 너무 더워 잠시 둘러본 후 곧 자리를 떴다.
살인적인 더위에 놀라 폰으로 날씨 정보를 확인했더니, 정작 기온은 한국 여름과 별 차이가 없었다. 아마 이 한증막 같은 더위의 원인은 높은 습도 탓인 듯했다. 그런데도 정작 이곳 주민들은 에어컨도 없는 식당과 카페, 가게에서 별 불편 없이 지내는 듯했다. 하루 종일 다니는 동안 관광객은 흔적도 찾지 못했다. 관광객을 끌어들이기에는 유적들이 소박하다 못해 초라할 정도였으니 무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산다칸 여기저기에 어린 역사는 구경거리보다는 이야기로 남아 있어, 마음의 귀와 눈을 여는 사람에게는 전해지는 듯했다. 산다칸은 주로 파란만장하고 어두운 역사가 얽힌 곳으로 알고 왔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는 사람들이 밝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엿보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