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혜안 Jul 13. 2023

뜨거운 안녕

여전히 노는 게 제일 좋아

'당근의 계절'

한여름과 한겨울을 이렇게 부른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너무 추워서 집 안에 있기 딱 좋은 날들. 나가서 놀지 않는 날, 아이들과 집을 지키는 날, 미뤄뒀던 정리를 한다. 몰아서 당근 마켓하는 계절. 연신 비가 오는 오늘 같은 장마 때도 그렇다.


오늘의 정리는 '뽀로로와 친구들 유치원' 되시겠다. 상자는 낡았지만 구성은 다 있고 피규어들은 나름 갖고 놀만하다. 아직 유아 친구들에게 인기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눔 해보려고 한다. 아이들이 뽀로로와 친구들에게 열광했던 기억이 나기에 떠나보내기 내심 아쉬움이 남는다.


 TV가 없는 집이라 아이들이 어렸을 때 캐릭터를 많이 접해보진 못했는데도 뽀로로는 잘 알았다. 워낙 인기라 테마파크도 가고 뽀로로 키즈카페도 가고 뽀로로 주스도 먹고 그래서일 테지. 대부분의 엄마들이 그렇듯 나 또한 캐릭터 용품으로 집안을 꾸미는 걸 꺼려했다. 하지만 내 의지와는 다르게 우리 집엔 뽀로로 매트가 깔렸고 아이들은 뽀로로 텐트를 아지트 삼았다. 애증의 뽀로로. 이놈의 뽀로로 언제 벗어나나 했던 시절이 있었더랬다.






우리 딸은 루피를 닮았다. 분홍분홍 하면서 통통한 볼, 얼굴에 비해 조금 큰 앞니가 딱 비버 루피이다. 그런 첫째 딸아이가 제일 좋아하던 캐릭터는 '에디'. 척척박사 에디가 본인이란다. 책을 좋아하고 뭐든 만들기 좋아하고 키우기 좋아하는 에디. 에디를 삼킨 루피가 우리 집에 있다.


그런가 하면 우리 남편은 이리보고 저리 봐도 포비다. 산만한 덩치에 묵묵히 친구들을 지지해 주는 포비. 포비는 말이 느리고 친구들은 조용히 도와주는데 우리 집 포비는 말이 빠르고 많으며 생색을 생색을~ 그렇게 내며 도와준다. 그래도 포비가 좋다. 존재만으로 든든하고 포근하다. 본인은 자기가 뽀로로인 줄 아는 거 같다. 리더십 있고 대표성을 띈 뽀로로. 뽀로로도 맞다. 우리 집 가장이자 실질적인 리더니까. 안경도 썼으니까. 그래도 당신은 영원한 우리 집 포비야.  


아들은 아마도 크롱 아닐까 싶다. 말문이 트이지 않은 건지 말대신 '크롱크롱' 거리는 크롱처럼 표현이 서툴지만 아주 순수하고 여린 크롱. 마음을 숨길 줄 몰라 손해를 보고 장난이 심해 친구들에게 볼멘소리를 들어도 친구가 제일 좋은 크롱. 딱 너다 막내야.


나는 뭘까. 친구들 중에 가장 목소리가 큰 패티가 나인 것 같다. (남은 거 껴맞춘거 아님ㅋㅋ) 친구들 일이라면 항상 적극적이고 서툴러도 노력하는 패티 모습이 그냥 나 같다. 요리도 못하고 청소도 못하지만 열심히 하는 패티. 패티는 이 집에서 만큼은 아주 인기만점이다. 서로 패티 옆에서 밥 먹겠다고, 잠자겠다고 졸라서 순서를 정해놓고 패티 옆을 내준다. 패티는 때론 지치지만 칭찬은 패티를 춤추게 한다. 우리 집 패티를 칭찬하라. 칭찬받으면 더 잘할 거 같다 ㅎㅎ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집콕하는 오후, 뽀로로 유치원을 당근마켓에 나눔으로 업로드하기 전 뽀로로와 친구들을 떠올리며 글을 쓴다.  감정이입이 과해져 식구들 캐릭터를 대입해보면서 실실 웃으며ㅎㅎ 뽀로로 유치원을 꺼내놓고 사진 찍고 옆에 둬도 아이들은 더 이상 뽀로로를 갖고 놀지 않는다. 인형극 보러 가서 루피 품에 안겨 그렇게 좋아했던 날도 있었는데 이렇게 무심하다니.


아이들 대신 뽀로로와 친구들과 '뜨거운 안녕'을 하고 있다. 


안녕, 뽀로로와 친구들. 나도 여전히 '노는 게 제일 좋아.'






작가의 이전글 어느 날 탈모가 내게로 왔다.-(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