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라&와디럼 - 베두인의 위스키

요르단 여행 2

by 힐링가객

티에세이 요르단 여행기 후편입니다. 베두인의 천막이 생각날 때- 전편의 이야기는 여기로 -> https://brunch.co.kr/@healingsiinger/62



페트라 - 고대 나바테안 왕국

한국어 경연대회의 마지막 프로젝트는 요르단 대표관광지인 페트라를 거쳐 와디-럼 사막을 여행하는 거였다. 한국어 활용을 위해 대회에 참여한 아랍어권의 한국학과 학생들이 한국인 강사진을 가이드 했다. 적극적인 학생들의 태도를 보면서 약간은 긴장이 되었다. 한국에 관한 질문이 쏟아질 것 같은데, 특히 K-POP 아이돌과 연예인에 관해서 나는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한국학과 대학원에서 그토록 열심히 연구했던 것들이 무용지물이 되는 시간이였다. 인터넷이 느린 암만의 호텔에서 여행을 떠나기 전날 밤 아이돌 그룹의 이름을 찾아 숙지하려고 노트북을 붙잡고 애쓰던 기억이 난다.


출발 당일에 잊을 수 없는 풍경을 목격했다. 학생의 부모님들이 생수나 음료, 음식 등을 가져와 손수 관광버스에 실어주는 거였다. 대학생 학부모의 여행 찬조와 배웅이라니! 그 중에서도 여학생들의 고무된 행동이 관심을 끌었다. 요르단에서 여학생들의 외박여행은 매우 드물고 특별해서 부모의 허락과 협조가 있어야 진행이 된다고 했다.


초등학생이 되기 전에도 보호자 없이 국내여행을 할 수 있도록 항공사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국에서는, 초등학생이 되면 여러 특별활동 참여로 다양한 외박체험을 한다. 우리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 학교에서 자매결연 한 섬 학교의 학생을 초청해서 홈스테이를 진행하고, 우리 아이들도 섬 학교에 초청을 받아서 섬 생활을 체험하고 바지락을 잡아왔던 기억도 난다.


부모의 품에서 벗어난 여학생들은 해방감을 만끽하려는 듯 밝고 거침없었다.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학생들의 요청으로 음악이 흘러나왔다. K-POP 곡들이었다. 마치 공연장을 방불케하는 떼창과 춤이 물결을 이루었다. 한국의 묻지마 관광버스 안에서나 벌어질 듯한 춤사위였다. 한국에서만 떼창을 경험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나는 K-POP이 떼창까지 수출한 현장을 보고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 와중에 앞좌석에서 커다란 도시락 통이 차례로 넘어왔다. 고기와 야채를 넣고 만든 작은 피자들과 waffaa 라고 부르는 만두전병을 닮은 간식들이 담겨있었다. 짭짤하고 고소한 핑거 푸드는 친숙하고 맛있었다. 학생의 부모들이 준비한 요리는 아직 식기 전이었다. 민선배와 나는 의아한 눈짓으로 대화했다.


‘세상에 놀라워라! 새벽 내내 요리만 했나 봐.’


‘성인이 된 자녀가 단체여행 떠나는데 이렇게 성의 있게 준비해서 보낸다고?’


차는 매우 느리게 달렸다. 간혹 흙덩이들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양떼라고 했다. 붉은 사막에서 붉은 흙먼지를 뒤집어 쓴 양떼들을 노인과 중년과 아이들이 함께 돌보고 있었다. 남자들은 쉬막을 두른 머리와 긴 옷 때문에 눈에 띄었다. 아무리 봐도 푸른 풀 한 포기 없는 곳에서 양들이 무엇을 먹는지 궁금했다. 내 궁금증을 박선배가 풀어주었다. 흙먼지 색깔인 가시나무 풀을 먹는다는 거였다. 내가 목동이라고 생각했던 목자들은 실로 노인과 아들과 손자로 구성된 3대의 목축업자들이었고, 목동들은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는 거였다.


갑자기 앞자리가 연기로 자욱해졌다. 달리는 차 안에서 물 담배를 피우는 남학생이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역한 담배 냄새가 아닌 허브향기가 났다. 연기도 연보랏빛이었다. 내 기억 속의 담배 연기를 좁은 차 안에서 마셨다면 멀미로 이어질 수도 있었지만 다행히도 그런 후유증은 없었고 연기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통로 건너편 학생이 통로에 다리를 두고 나를 향해 앉아 있다가 내 표정을 보고 웃었다. 그 학생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풍경을 놓쳤다. 한국의 아이돌 그룹에 대해 열정적인 애정을 가지고 이야기했다. 나는 그가 누구인지 들어본 적도 없어서 그러냐고, 대단하다고 칭찬해 주었다. 기대한 대답을 해줄 수 없어서 미안할 뿐이었다.


창밖을 내다보았을 때 느닷없이 낙타 농장들과 낙타에 탄 사람들이 나타났고, 드물게 나무도 보였다. 에돔 왕국의 수도가 있던 곳, 바위를 깎아만든 고대 나바테아왕국의 수도 페트라에 도착한 거였다. 페트라는 요르단대학에서 네 시간이 넘게 걸렸다. 대중교통을 이용했다면 와디 무사와 시내를 구경했을 텐데, 대절버스라 그런 기회는 없었다. 바로 페트라 입구에서부터 말과 낙타가 지나다니는 좁은 바위틈의 계곡 길을 두어 시간 동안 걸어 들어가면서 베두인의 상형문자들을 보았다. 바위의 밑둥엔 홈이 깊게 파져 있는데, 수로의 흔적이라고 했다. 중간중간에 규모가 큰 무덤을 볼 수 있었다. 또 바위에 구멍들이 보였는데, 사람과 가축이 함께 살았던 집과 마구간으로 사용되었다고 했다.



나바테안이 세운 고대 왕국의 도시 페트라 입구에서


바위 돌을 네모나게 깎아 놓은 곳도 많이 보였다. 물을 보관하던 저장소 앞에 물을 지키는 신을 위한 장소였단다. 걸어가다 보면 마치 1층 2층으로 나누어 진 것처럼 바위에 문양과 함께 구멍이 있었는데, 오벨리스크 무덤이라고 했다. 나바티안 양식의 굴로 된 무덤은 아래쪽 구멍에선 제사를, 위쪽 구멍엔 시체를 안치했다고 한다. 너무 엄청난 바위와 무덤, 동굴집들이 늘어서 있어서 처음엔 신비로움에 감탄하고 놀랐는데, 가다보니 몇 시간을 걸어도 끝날 줄 모르는 규모에 위압감마저 들었다.

페트라에는 구약성경의 중요한 인물인 모세의 형 아론의 무덤도 있다. 민수기20장과 신명기 10장에 모세와 아론과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제사장직임을 잇는 의식을 행한 뒤에 아론이 죽음을 맞이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성지로 기념되고 있는 제벨 하룬까지 순례하려면 왕복 25km의 거리를 걸어야하고, 한 낮의 뜨거운 기온과 건조함을 견디려면 많은 양의 물이 필요할 것이다. 가는 동안 식당이나 카페가 없기 때문에 음식도 준비를 해야겠지만, 단체 여행 중이라 개별 행동은 금지되어 있었다. 내가 밟고 선 땅을 모세와 아론이 지나다녔다고 생각하니 오래된 약속인 구약이 그리 멀지 않게 느껴졌다. 아쉬움을 접고 언젠가 다시 페트라를 밟게 되기를 기원할 수밖에 없었다.


알카즈네 신전과 무덤과 수로



좁은 길이 조금 넓어진 곳에서는 어김없이 베두인의 노점이 펼쳐져있었다. 나무를 깎아서 만든 낙타와 카라반 조각물을 파는 곳이었다. 차와 길거리 음식도 팔았는데, 컨디션이 어떨지 몰라서 시도하지 않았다. 너무 좁아서 말과 낙타는 어떻게 지나갈까 싶은 바위협곡 정면에 고층의 정교한 건축물이 나타났다. 협곡을 완전히 빠져나가자 광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찾아온 사람들과 낙타들이 들어차 있었다. 광장은 협곡에서부터 보이던 알카즈네 신전으로 이어졌다. 내가 포털 사이트에 페트라를 검색했을 때 보았던 건축물이었다. 영화 인디애나존스 3편의 ‘최후의 성전’ 촬영장소로 널리 알려진 곳이었다.


영화의 내용은 기억도 안 나는데, 어쩐지 눈에 익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낙타를 타라고, 당나귀를 타라고, 물건을 사라고 판촉을 하는 베두인들이 너무 얍삽한 느낌이었다. 첫 제안과 두 번째 제안과 거절하고 돌아섰을 때의 가격 제시가 달랐다. 선하게 웃으며 다가온 그들의 모습이 변화무쌍하게 변해가는 것이 좀 무서웠다. 중국 상해에서 골동품 거리에 갔을 때 생각이 났다. 한 자리에 있는 다관을 할아버지와 손자가 다르게 값을 불렀다. 왜 너는 더 비싸게 부르냐고 손자에게 따지자 내 탓이 아니라 너의 운이라고, 얼마를 부르든 내 마음이라고 해서 어이가 없었다. 한 바퀴 돌고 와서 할아버지에게서 다관을 샀다. 손자가 와서 네가 운이 좋아서 좋은 물건을 좋은 값에 산거라고 추켜세웠다. 칭찬을 듣고도 기분이 찜찜했다. 말도 안되는 상술 과 억지 논리에는 분명 희롱이 담겨 있었다. 덕분에 나는 현란한 상술을 경계하는 감각을 아주 조금 얻었다.


가장 생동감 있게 느껴지는 건 낙타였다. 광장에 앉아있는 낙타는 순해보였다. 하지만 관광객들을 헤치고 지나갈 때는 느낌이 달랐다. 낙타를 모는 사람들의 다급하게 질러대는 커다란 말소리가 들리면 얼른 벽에 붙어서 그들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낙타가 풍기는 동물의 냄새는 낯설고 비위가 상했다. 좁은 길에서 곁을 스치고 지나갈 때 머리 위에서 쌕쌕거리던 낙타의 숨소리와 입김, 뚜벅뚜벅 걷는 거친 발걸음도 위압적이었다. 낙타가 지나간 자리에는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낙타 똥이 흩어져있었다. 나는 솔직히 낙타몰이 꾼들이 그냥 지나가는 것이 이해가 안됐다. 그렇게 많은 여행객들이 지나다니는 좁은 길에 낙타 똥은 사정없이 방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페트라 시크를 통과하면서 여러 장소에서 찍었다. 저 좁은 길로 낙타와 사람들이 함께 지나다닌다.







와디-럼, 붉은 사막의 밤


페트라에서 출발한 버스는 두 시간을 꼬박 달려 해가 지기 전에 와디-럼 사막에 도착했다. 사막으로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작은 지프로 갈아타고 베두인의 마을에 도착했다. 드디어 아랍의 유목민족인 베두인의 문화 속으로 들어간 거였다. 모래사이 금속이 산화되어 붉은 모래가 되었다는 이 사막의 이름은 ‘물이 마른 강’이란 뜻의 'Wadi'와 높음을 의미하는 ‘Rum'이 결합된 것이라고 한다. 또 다른 설명에서는 달을 의미하는 ’Wadi‘와 계곡을 의미하는 ’Rum‘이 결합되어 ’달의 계곡‘ 이라고 불렀다고도 전한다. 1천 미터 이상의 고지대에 자리 잡은 사막인 걸로 보아 전자가 맞고 후자가 상징적으로 붙인 이름은 아닐까 생각했다.


우리는 매우 큰 천막집으로 들어갔다. 비가 오는 겨울철이 되면 염소 털로 된 텐트는 자연스럽게 부풀어오르게 되면서 빗물의 침투를 자연적으로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고 학생이 설명해주었다. 그 곳엔 수십 명이 들어가도 충분한 넓은 응접실이 있었다. 카펫이 깔린 넓은 바닥과 화려한 무늬의 천들이 걸려있는 벽은 그곳이 천막이란 느낌을 잊게 했다. 응접실로 안내된 우리에게 베두인 가족이 벽난로를 지피고 따스한 차를 대접했다. 낡고 오래된 검은 주전자를 들고 다니며 따라주었다. 우리는 스테인리스 잔에 차를 받아서 마셨다. 차는 홍차 종류였는데, 다즐링처럼 약 발효한 느낌이었다. 베두인의 천막집에서 마시는 차였기에 내겐 기념할 만한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천막응접실에서 환영잔치를 열어주는 베두인 가족과 즉석 연주로 참여하는 요르단대학교 학생



차를 마시는 동안 그들은 시에 곡조를 넣어 환영의 노래를 불러주었다. 노래의 내용을 학생이 통역해주었다. 신께 감사를 올리고. 찾아준 손님은 신의 선물이니 함께 복된 시간을 보낼 것을 약속한다는 의미라고 했다. 베두인의 전통은 찾아온 손님을 후회 없게 대접하는 것이란다.


페트라에서 본 베두인의 모습이 생각났다. 서로 다른 민족인 것처럼 느낌이 달랐다. 세상 어딜 가나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 있게 마련인 모양이었다. 타악기와 레바브라는 현악기의 연주에 맞추어 베두인의 전통춤도 보여주었다. 노래하면서 악기의 반주에 맞춰 춤을 추는 베두인과 요르단 학생들은 서로를 향해 축복했다. 이민족의 텐트 안에서 세계 어디서나 통하는 소통과 개방성을 느낀 순간이었다.


그 날 저녁 요리가 독특했다. 베두인의 전통요리인 즈릅이었다. 우리가 본 것은 이미 조리된 것을 꺼내는 과정이었다. 두 사람이 삽을 들고 모래를 파기 시작했다. 모래를 걷자 가죽덮개가 나왔고 요리사가 그것을 조심스럽게 걷어내곤 커다란 깡통의 뚜껑을 열었다. 그리곤 그 안에서 철망을 꺼냈는데, 그 철망은 3층 구조로 기다랗게 짜여 있었다. 각 층의 쟁반에 양념한 양고기와 닭고기, 감자와 야채 요리들이 듬뿍 담겨 있었다. 막 꺼낸 요리에서는 허기를 자극하는 고소한 바비큐 냄새와 함께 김이 모락모락 났다. 3시간 만에 완성되는 전통요리라고 했다. 샐러드와 과일과 함께 모두가 먹기에 충분한 량의 저녁식사가 준비되었다. 즈릅 요리는 맛이 훌륭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했다. 마치 실내 주방에서 오븐으로 요리한 것처럼 완벽한데 맛이 더 담백했다.

우리는 2인 1실로 구성된 텐트를 배정받았다. 전기가 있는 방인데, 밖에서 나누는 소리가 다 들렸다. 창문이 엉성한 덮개 형식으로 붙어있어서 안에서 밀면 들렸다. 그 창문으로 밖을 내다볼 수 있었는데, 매우 추웠다. 우리는 공동화장실을 사용해야 했기 때문에 볼일을 볼 때마다 함께 움직여야 했다. 그런데 사실 사막의 밤을 체험하고 싶어서 잠들 수가 없었다. 민선배와 나는 학생들과 만나서 붉은 사막을 밤새 쏘다녔다. 숙소를 등지고 바위언덕 뒤로 나가자 불빛이 완전히 차단된 밤하늘에 별들이 선명했다. 어릴 적 여름밤에 보았던, 그 은하수였다.



와디럼 사막의 베두인 텐트숙소 - 두 개의 싱글 침대와 티테이블과 티포트가 있다.



‘별이 쏟아지는 사막으로 가요~“

노래가 리듬을 타고 마음속에서 흘러나왔다. 그토록 가깝게, 그토록 선명하게 많이 박혀있는 별들은 다시는 볼 수 없는 풍경이어서 터져 나오는 감탄을 멈출 수 없었다. 한가위 보름달과 비교할 수 없게 커다란 달도 보았다. 와디-럼을 달의 계곡이라 부르게 된 진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달은 매우 가까이 있었고 달빛도 점점 밝아지는 듯했다. 그냥 느낌이 아니라 진짜 그랬다. 멀리 바위산 꼭대기에서 움직이는 사람이 보일 정도로 시계가 확장되었다. 어둠에 눈이 적응해서 볼 수 있게 된 건지도 모르겠지만 밤중에 그렇게 멀리까지 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사막에서 지내면 눈이 좋아질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 안의 외딴 별이라는 와디 럼 사막에서 잠들기 위해 우리는 혹시라도 필요할지 모른다고 챙겨간 경량 패딩 외투를 껴입고 머플러를 미라처럼 감았다. 침대보가 씌워져 있긴 했지만 침대 위에도 모래가 저벅거렸다. 망망대해처럼 펼쳐진 사막의 바람소리와 끊임없이 틈입하는 모래들 때문에 낯선 추위 속에서도 입안이 서걱대는 느낌이었다.

낮에 그렇게 후덥지근했던 사막의 열기는 다 어디로 갔을까! 따스한 차가 간절히 그리워서 결국 짐 속에서 카페인이 없는 카모마일 티백을 찾았다. 추위도 달래고 잠도 부르기 위해. 머리맡을 서성이는 발자국 소리와 외박에 들뜬 소녀들의 웃음소리가 밤새 귓전에 소곤거렸다.


베두인은 가진 것에 만족한다고 한다. 아라비아사막의 삶을 택한 것도 방해받지 않는 평안을 누리고 보존하기 위해서란다. 다음날 우리는 쉬막을 두른 베두인의 안내로 나바테아인의 암각화가 있는 잡알카잘리 협곡으로 갔다. 건조한 사막에서 처음으로 물이 고여 있는 곳에 다다랐다. 협곡의 평평한 바위엔 사람과 그 곳을 찾은 동물들의 그림들이 암각 되어 있었다. 협곡의 맨 안쪽까지 걸어서 들어갔다가 나오면서 다시 한 번 생각했다. 물이 흔하다는 건 참으로 어마어마한 축복이란 걸. 그 곳에 뿌리를 박고 자란 커다란 나무는 토템이 될 만했다. 나무가 있다는 것이 그만큼이나 귀한 풍경이었다.


인상적인 곳들이 많았지만 그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와디-럼 사막의 유명한 관광지인 움 프루스( Um Fruth) 록 브리지다. 무시무시한 바위 위에 구멍이 있어 바위다리라고 부르는 곳이다. 잔뜩 긴장한 채 가까스로 다리 위에 올라갔지만 사진 찍을 생각은 나지 않았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까마득한 아래쪽이 무서웠다. 벌벌 떨면서 네 발로 기다시피 내려오면서도 위쪽에서 머물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내려와서 여유 있게 둘러보니 베두인 남성들이 눈에 들어왔다. 10살쯤으로 보이는 사내아이도 있었는데, 바위다리에 올라갔다가 눈 깜짝 할 사이에 내려왔다. 묘기를 부리는 것 같았다.


아슬아슬하게 높은 바위다리에 오르는 일은 와디럼 사막에 다시 간다해도 생애 두 번은 어려울것 같다.



흰색 전통의상을 입고 머리에 쉬막을 두른 베두인 두 사람이 슬리퍼를 신은 채 바위를 올라갔다. 뒷짐을 진 그들은 균형을 잡기 위해 몸을 숙이거나 비틀지도 않았다. 그냥 평지를 걷는 것처럼 올라가다가 중간에 비탈이 심한 곳에 나란히 서서 먼 하늘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거였다. 그들은 바위 다리에 올라서서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뒷짐을 진 상태로 터벅터벅 걸어서 내려왔다. 마치 발바닥에 흡반이 있어 발만 옮기면 바위에 척척 달라붙는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편안한 걸음이었다.


그 여행 중에 붉은 모래언덕에 올라갔다. 동산처럼 생긴 언덕 위에선 멀리까지 부감을 할 수 있었는데, 덕분에 사막의 광활함을 감상할 수 있었다. 나는 그 곳에서 식물을 보았다. 가시나무였다. 잎이 하나도 없는 가시나무는 흙먼지가 뽀얗게 앉아있어서 자세히 보아야 식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양들과 낙타가 먹는다는 가시나무를 실제로 본 거였다. 성경에 나오는 가시떨기나무의 모습도 상상이 되었다. 오를 땐 몰랐는데 내려다보니 바닥이 까마득했다. 그 곳에서 샌드보드를 대여하는 베두인을 보았다. 몇몇 학생들이 샌드보드를 타고 내려갔다. 나는 민선배에게 농담처럼 말했다.


“목도리도마뱀이 되어 한 달음에 낙하하고 싶은 풍경이야.”

“하고 싶으면 해야지.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오겠어?”


민선배가 잠깐 기다리라고 말하곤 촬영을 하겠다고 휴대폰을 꺼냈다. 학생들이 우리를 구경하는 것도 잊고 정말로 목도리도마뱀을 연상하며 뛰어내려왔다. 생각보다 너무 길고 가팔라서 한 순간 무섭기도 했지만, 덕분에 와디-럼 사막에 발자국을 찍으며 도마뱀이 되어보는 추억을 남겼다. 내가 뛰어 내려가는 걸 민선배가 촬영해 준 것처럼, 먼저 내려간 나는 민선배가 뛰어내려오는 걸 촬영해 주었다. 광활하고 아름다운 사막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영상을 교환하면서 많이 웃었다. 평소의 나와 선배에게선 나올 수 없는 기이한 행적이 담긴 영상은 낯설다. 그래선지 동영상을 보면 그 특별한 시간의 기억 속으로 순간이동을 한다. 볼 때마다 웃을 수 있는 추억거리가 있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붉은 사막에서 목도리도마뱀으로 변신한 순간


와디-럼 사막은 중국의 고비 사막을 거쳐 우루무치에 갔을 때 실크로드 사막을 본 이후로 내가 경험한 세 번째 사막이었다. 하지만 먼저 본 두 사막에선 사진을 남기지 못했다. 아무리 털고 빨고 해도 고운 모래가 나오던 신발이 사막을 보고 온 유일한 증거였다.





베두인의 위스키를 맛보다


다음 날 아침을 먹고 베두인 마을을 나와서 요르단을 여행했다. 어느 작은 노촌 마을의 회관처럼 생긴 건물에서 쉬어가기로 했다. 아마도 휴게소 같은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화장실을 다녀와서 보니 모두 방에 들어가 있었다. 방은 특이하게 천정이 높고 천정 가까운 곳에 창문이 있었다. 드나드는 문이 양쪽에 있는 넓은 방에는 가구가 거의 없어서 바닥에 앉았는데, 출입구를 통해서 주전자와 잔이 들어오고 이 곳에서 베두인의 위스키라고 불리는 음료를 마셨다.


술을 금지하는 아랍의 문화에서 베두인의 위스키라니, 빛깔만 보면 그렇게 불릴 만한데, 맛은 설탕을 넣어 끓인 홍차였다. 요르단에 오기 전에 찾아본 여행 유튜버의 영상에서 사막의 베두인이 여행자에게 허니 블랙티를 대접하는 걸 보았다. 그래서 내심 기다렸는데, 드디어 허니 블랙티를 대접받는 거였다.


베두인은 이 차를 하루 중 수시로 여러 차례 마셔서 에너지를 얻는다고 대표 학생이 통역을 해주었다. 홍차는 사막생활을 하는 베두인에게 매우 중요한 음료라고 했다. 손님을 대접하는 것은 물론이고, 덥고 건조한 사막에서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에너지 공급원으로 활용된다는 거였다.


사막생활을 하는 몽골인이 야채와 과일에서 섭취해야 하는 필수 영양분을 차에서 얻기 때문에 1인당 차 소비량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민족이 되었듯 사막 생활을 하는 베두인도 역시 차에서 영양을 공급받아 생활하고 있는다는 걸 확인했다. 내 자랑인것 같아서 민망하긴 하지만, 지천명을 맞이한지 다섯해가 지나도록 20년 전의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는 나는 아직 흰머리가 없고 충치가 없다. 그런 내 몸의 상태를 비교해 보면서 주변의 친구들이 차생활에 입문하는 것도 나름 간접적인 임상 검증이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차생활의 힐링효과까지 덤으로 풍성하게 누리고 있으니 공유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떫은 홍차의 맛은 단맛과도 잘 어울린다. 뿐만 아니라 고소하고 달콤한 우유와도 잘 어울린다. 맛이 뾰족하면 할수록 블랜디드 하기에 좋고 맛의 스펙트럼도 넓어진다. 차를 이용하는 인구의 70%가 홍차를 사랑하는 것도 다 그런 까닭이다. 나 역시 녹차의 맑은 맛과 향을 으뜸으로 치고 즐기지만, 실생활에서 가장 많이 활용하고 소모하는 차는 단연 홍차다. 내가 홍차를 소개하고 권할 때마다 '사계절 홍차사랑'이라고 고백하는 이유다.


사막에서 돌아와서 암만에 머무는 2일 동안, 민선배와 나는 박선배의 가족과 만나 인도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었다. 어른들보다 적응이 빠른 박선배의 두 아들의 추천으로 한국인의 입에 맞는 매운 커리와 콩 수프, 양고기 바비큐로 풍성한 저녁을 먹었다. 한국에 있는 인도레스토랑 음식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친숙한 느낌이었다. 출발 전까지 민선배와 나는 암만의 카페를 찾아다녔다. 그 곳에서 베두인의 위스키를 추억하며 블랙티를 주문해 설탕을 넣어 마셨고, 베리에이션 티를 찾아 마셨다. 경험을 박제시키면 추억이 되지만, 일상에 활용하면 힐링 코드가 늘어나 삶이 풍성해진다. 요르단 여행 덕분에 홍차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는 걸 부인할 수 없다.


요르단 여행은 다른 국가로의 여행과 달리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요단강 주변의 지형을 보고 싶었고, Jabal Amman 지역에 1997년 문을 연 중동의 첫 인터넷 카페 ‘Books@Cafe'도 방문하고 싶었고, 요르단의 예술가들의 작품 전시회장도 보고 싶었지만 일정이 여의치 않아 포기했다.


여행이란 정해진 시간동안 선택한 곳을 경험할 수 밖에 없는 한계를 지니게 마련이다. 아쉬움을 남겨놓아야 또 가게 된다는 말도 결국은 아쉬움을 달래기 위한 것일 테다. 가능성을 열어놓는 그런 말들은 대부분 미완으로 남겠지만, 소망이 담겨 있어서 그 자체로 아름답다.


돌아오는 길에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요르단은 잿빛이었다. 규모가 큰 수리시설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저수지에 물이 없었다. 푸른 나무들이 없는 바위산들은 무시무시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을만큼 척박해 보였다. 두바이에 도착할 때까지 화성을 여행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푸른 생물의 기운을 찾아볼 수 없었다. 푸른 산과 오곡백과로 그득한 들과 그 사이를 실핏줄처럼 빈틈없이 뻗어 흐르는, 이름을 기억하지 않을만큼 당연히 존재하는 한국의 강들을 생각했다.


대학원에서 한강을 탐구한 적이 있었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두물머리에서 만나는 것을 확인하고 두 개의 큰 지류 중 남한강 상류를 찾아 강원도 정선군 북면의 구절리 시원을 더듬어 올라갔다. 구절리에서 다시 물길의 흐름을 따라 중원에 이르러 충주댐으로 수몰된 지역을 돌아보고 팔당댐으로 합쳐지는 지류들을 찾아보는 물길탐방이었다. 10년도 더 지난 남한강 상류탐방의 의미를 요르단 여행의 끝에서 재해석하곤 혼자서 콧등이 시큰해질만큼의 감동을 받았다. 척박한 사막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말로 다 할 수 없는 연민과 존경심을 느꼈다. 전국토가 비옥한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의 눈에 끝없이 이어지는 잿빛 바위산들은 다른 차원의 세상이었다. 목격하지 않았다면 결코 상상도 하지 못했을 세상이 그 곳에 실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 풍경들을 잊을 수 없다. 요르단 여행 후에 가장 크게 바뀐 것이 있다면 물 한 모금을 먹을 때도 그 풍성함을 마음 깊이 새기고 누리게 된 것이다. 또 푸른 산과 강을 볼 때마다 저절로 감사의 마음이 우러나온다. 보도블록 틈이나 시멘트가 갈라진 실금에서조차 잡초가 비집고 올라오는 걸 볼 때마다 뭉클한 감동이 솟아오른다. 당연하게만 여겼던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과 그 터전 위에서 가꿔온 한국의 문화는 그보다 좋을 수 없는 풍요 자체라는 걸 알아버렸다. 잠시지만, 아랍인의 시선을 빌린 덕분이었다.

맑은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급한 바람과 함께 소나기를 퍼붓는다. 강우량이 풍부한 우리나라에서 잦은 가을비는 환영받지 못한다.

‘부디 이런 비가 요르단에 내리길!’

추석연휴를 보내는 동안 가을은 성큼 와서 자리를 잡았고, 나는 가벼운 스카프를 찾아 목에 두르고 있다. 이런 날엔 티 베리에이션이 도움이 된다. 뜨겁게 우려낸 홍차에 지난겨울에 만들어 놓은 생강 청을 넣어서 마셨다. 발효차에 면역력 향상에 탁월한 효능이 있는 생강을 넣어 먹으면 몸이 따스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활력과 수분을 동시에 공급받는 보약이 된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약도 체질과 건강 상태에 따라 점검은 필요하다. 위를 건강하게 해주는 생강이지만 이미 위궤양이 있거나 장복하는 약이 있는 분들은 복용에 주의가 필요하다. 또 열이 많은 체질이거나 고열이 날 때, 혈압이 높은 분도 주의가 필요하다.


홍차를 우릴 때는 재탕, 삼탕까지 사용하고 찻잎을 컵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 탈취재로 1주일간 사용한 후에 쓰레기통에 버린다. 첫잔을 생강홍차로 마셨더니 냉기로 불편했던 목이 금방 따스하게 풀렸다. 마음이 변덕스러운 걸까? 산뜻하고 맑은 맛이 생각났다. 재탕 삼탕은 레몬 한조각을 넣어 향기롭게 마셨다. 가을비가 쏟아지는 소리를 들으며 그윽한 홍차 향기 속에 베두인의 위스키를 추억하며 글을 쓰는 것도 꽤 멋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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