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두인의 천막이 생각날 때 - 청량한 티 베리에이션

요르단 여행 1

by 힐링가객

입추와 처서가 지나면 깊고 푸른 가을하늘을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초가을이 온통 비요일로 채워지고 있다. 구름은 연속 2~3일씩 비를 뿌린 후 슬며시 꼬리를 감추는 듯 물러갔다가 보란 듯이 다시 찾아와서 창틀에 물방울을 튀기며 요란한 비를 퍼붓는다. 새벽에 쨍쨍하게 떠오른 햇살이 한나절도 가기 전에 구름코팅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비가 온다. 지난 주 화요일부터 맑은 날이 거의 없었다. 이렇게 많은 비가 물 부족 국가, 건조한 사막에 거주하는 베두인의 마을에 내려준다면 좋을 텐데! 기도인지 소망인지 모를 생각이 기억 한줌을 동반하고 쓱 지나간다. 이렇게 눅눅한 날이 이어질 때면 상대적으로 바삭하고 청량한 맛이 그리워진다. 생활차인의 내면에서 균형의 추는 이렇게 작동한다.


덖음 도기에 홍차를 볶아서 우리면 향과 맛이 더 깊어진다.



다연기 소품인 덖음 도기에 홍차를 덜어내 살짝 볶는다. 차향이 가을 곡식을 구울 때처럼 구수하고 바삭해지면 불에서 내려 찻잎을 다관에 넣는다. 신선한 생수를 팔팔 끓여 붓고 티코지를 씌워 4~5분 우린다. 충분히 우러난 홍차를 잔에 따르고 스트레이트로 마셔본다. 홍차를 그냥 마셨을 때보다 가열한 차가 향과 맛이 깊고 진하다. 레몬이나 설탕을 취향대로 가미해서 먹는다. 나는 코코넛플라워슈거가 있어서 가미해 보았다. 레몬이 들어가면 홍차는 레몬산화 작용으로 황색으로 변하고 레몬 향과 산도가 상큼하게 가미되어 맛이 화려해진다. 게다가 설탕까지 첨가했더니 오미가 채워진 완벽한 풍미가 행복감을 준다. 코코넛슈거를 첨가한 홍차는 본연의 차맛이 묵직해져서 점잖고 후미가 들큰하여 어른의 맛이 난다. 이처럼 티 베리에이션은 자신의 기호에 맞게 다양한 레시피로 차 맛에 변화를 주어 보다 풍성하게 차를 즐기는 방법이다. 따로 정답은 없으니 마음껏 시도해 보시길!



다양하게 즐기는 티 베리에이션



지난여름 화개에서 열린 세계차엑스포에 갔을 때 터키 관에서 마신 홍차가 생각난다. 개인의 취향과 기호를 존중하기 때문에 기본 홍차만 제공하고 가미하는 방식은 자율적 선택에 맡긴다는 것이 터키 차 문화의 매력이었다. 옆에는 각설탕과 레몬이 준비되어 있었다. 잘게 썬 인절미를 굳힌 듯한 터키식 티푸드 로쿰을 곁들여 먹은 홍차는 향미가 매우 좋았다. 찻잎을 금속 찻주전자에 넣고 가열하여 순간적으로 향과 맛을 깊게 만드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집에 와서 간혹 녹차 향을 극대화시킬 때 사용하는 다연기에 홍차를 가열해서 우려 마신다. 그 때마다 기억 한줄기가 눈앞에 펼쳐진다. 생각해보면 기억에도 조건반사적 장치가 있는 것인지, 재생되는 조건에 공통점이 있다. 주전자에 설탕과 홍차를 넣고 끓여서 대접해주던 베두인의 응접실, 그 흥겨운 분위기가 오늘따라 그리워진다. 어떤 허브를 가미했는지 가는 곳마다 차의 맛이 달라서 인상적이었다.


경험과 사고의 폭을 넓힐 수 있기 때문에 여행을 좋아하지만, 모든 여행이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매우 고생스럽고, 어떤 여행은 부담스럽다. 하지만 여행을 통해서만 얻어지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 특히 낯설고도 기묘한 자연이 주는 위엄은 찾아 나서야만 경험할 수 있는 세계다. 경직된 체제가 주는 긴장 또한 역사를 더듬어야 알 수 있을 만큼 오래전의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양한 풍경과 문화를 경험하기 위해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난다.


이민족의 둥지에서 보낸 시간들은 때로 강렬한 기억을 소환한다. 솜털이 일어설 만큼 특별했던 와디-럼 사막의 베두인의 천막에서 보낸 밤의 기억이 그렇다. 요르단의 붉은 사막 길에서 페트라를 관광하고 지프로 갈아타고 도착한 와디 럼 사막은 낯설고 두렵고 신비로웠다. 흰 옷으로 온 몸을 가리고 머리까지 쉬막으로 두른 사람들은 매우 친절해서 머무는 동안 반감이나 불편을 느낄 새가 없었다. 베두인의 천막 캠프 안에 그렇게 넓고 화려한 응접실이 있었다는 것이 지금 돌이켜 생각해도 신기할 뿐이다.






요르단 여행은 우연한 기회로 시작되었다. 코로나가 발생하기 이년 전, 모교인 인하대학원 민선배에게서 요르단 대학에 가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문학교실에서 만난 선배와 나는 20년 지기로 창작활동과 여행을 함께 해왔다. 인하대학교 대학원 한국학과의 만학도가 된 것도 민선배의 안내 덕분이었다. 선배는 박사학위를 마치고 모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다. 민선배에게 찾아온 요르단 대학의 특강 기회에 옆자리를 얻은 것을 두고두고 고맙게 생각한다.


프로젝트는 특강과 경연대회 및 한국문화 체험, 한국어 활용을 위한 여행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요르단 대학과 한국학중앙연구소가 연계하여 진행하는 아랍어 권역에 분포한 학생들의 한국어 토론경연이 중심행사였다. 요르단 대학 한국학과 교수진에는 우리학교 박선배를 비롯해 코이카에서 파견한 한국어 강사가 있었다. 세계 곳곳의 유수한 대학에 한국학과를 개설하여 운영하는 대한민국 정부와 교육부에 경의를 표한다. 한류현상이 대중문화의 전파를 타고 확장되기까지 한국의 정치와 외교도 역할을 했거니와, 한국의 기업들은 발 빠르게 해외의 상업적 교역의 문을 열어제쳤다. 때를 맞추어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학문적으로 연구하도록 지원하는 국가적 시스템이 동반되면서 문화수출도 가능케 된 것이다. 그 모든 결과가 오늘의 현상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하면 뭐든 공짜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민선배는 토론경연을 포함하여 행사 전 일주일 동안 한국어 특임강사를 맡았고, 나는 경연대회 심사 및 한국문화 체험수업의 협력강사로 참여하게 되었다. 행사의 대미를 장식할 페트라 관광과 와디-럼 사막여행이 심오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출발 한 달 전부터 요르단 지도와 역사 자료들을 구해 공부했는데, 알면 알수록 가고 싶은 곳이 늘어났다. 사막 여행과 함께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 사해와 요단강이었다.


두바이에서 4시간 정도 경유하는 코스로 17시간 만에 도착한 요르단 수도 암만은 아침이었다. 민선배와 나는 잠을 못 자서 몹시 피곤한 상태였다. 우리를 마중 나온 박선배를 만나 학교에서 잡아준 게라사 호텔에 짐을 풀었다. 잠깐 쉬고 나서 박선배의 안내로 아랍 방식으로 조리한 피자와 레몬향이 진한 샐러드를 먹었다. 첫 번째 식사가 입에 맞아서 안심이 되었다. 식사 후에 자마우드리아니 보아베라이쎼에 위치한 요르단 국립대학에 들어갔다. 학교 안의 아름드리나무들과 식물원을 방불하는 열대 식물과 꽃들의 정원을 지나 한국학과 건물로 들어가자 여기저기에서 안녕하세요? 인사하며 다가오는 학생들이 보였다. 무척 밝고 서로 말을 붙여보려고 나서는 모습이 특이했다.

나서기 꺼려하는 한국인과 다른 요르단 젊은이들의 특성은 학교 밖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길을 가다가도 한국어로 인사하며 다가와 반가움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거였다. 한국어학과 친구들은 한국어를 빠르게 정확하게 말했다. 다수의 학생들이 한국 여행이나 언어연수 경험이 있었고, 한국 기업에 취업할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대부분 한국 유학이나 한국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고 했고, 어떤 학생들은 한국 기업에 취직해서 반드시 다시 올 거라고 다짐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대한 이해 수준은 환상이 절반은 되는 것 같았다.


개인적인 질문을 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학생들에게 한국의 어떤 점이 좋으냐고 물어보았다. 푸른 산, 아름다운 강, 세련된 도시와 쇼핑몰 등을 열거했다. 특이하게도 요르단 학생들은 한국을 성형천국으로 알고 있었다. 차도르와 토우를 입은 여학생들은 자신의 배를 가리키며 한국에 가서 배를 날씬하게 성형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 이들은 k -pop 열혈 팬들이었다.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도 좋아했고 한국의 푸름과 한강의 아름다움에 반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실상을 모르고 있었다. 당시 나의 의문은 그러므로 무지에서 비롯된 거였다.


‘왜 하필 흔해빠진 산과 강에 반할까. 이렇게 아름다운 식물원이 캠퍼스 가득 펼쳐져 있는데!’


가족이 모두 요르단에서 생활하고 있는 박선배는 사춘기 아이들이 요르단 학교생활에 적응하고 있다며 교민 사회의 소식들을 전해주었다. 요르단에 머무는 동안 박선배의 남편이 가이드 역할을 해주어 다운타운과 시타델 원형극장을 보았다. 신전 안에 초기 기독교 교회의 터가 있는 베다니아는 예수님이 세례를 받은 역사적인 곳이라고 했다. 5세기부터 6세기에 건설된 여러 교회와 수도원이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시타델에서 본 헤라클레스 신전은 몇 시간을 돌아도 다 볼 수 없을 만큼 드넓은 규모였다. 건물은 부서지고 기둥들만 푸른 하늘을 떠받들고 있는 신전의 뜰에는 수천 년 동안 방치된 대리석의 조각 형상들이 무수히 흩어진 채 보존되고 있었다. 서둘러 정리하고 복원하는 것보다 역사 그대로를 보존하는 요르단의 하심왕국의 정책과 성격을 엿볼 수 있었다.


박선배가 소개시켜 준 한국학과 졸업생 할라의 안내로 국립박물관과 모스크를 관람했다. 이슬람인들의 집회 장소이면서 예배 장소인 모스크는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건물로 안내해서 들어갔더니 좁은 계단이 나왔다. 끝까지 올라가 커다란 방에 들어갔는데 실내가 어두침침했다. 환기를 위해 터놓은 듯한 좁은 창으로 모스크 전체가 보였다. 모스크 안에는 대낮인데도 생각보다 많은 남성이 기도를 하거나 책을 읽고 있었다. 모스크는 ㅁ자 구조로 되어 있었다. 2층 높이의 건물로 둘러쌓인 건물들의 가운데에 네모난 야외공간이 있었는데, 타일이 깔린 그곳엔 나무 한 그루가 있었고 그 아래 남자들이 앉아있었다. 특이한 것은 여성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는 거였다. 할라의 설명을 들으니, 본래는 여성이 모스크에 들어갈 수 없는데, 그 곳이 여성을 위한 기도방을 허락한 특별한 모스크라서 들어갈 수 있다는 거였다.

아랍어권의 한국학과 학생들의 한국어토론 경연대회가 있던 날 한국학 교수들과 민선배와 함께 나도 심사를 맡아보았다. 학생들은 한국의 장례문화에 대한 토론을 했는데, 매우 심도 있고 날카로운 질문을 소화하고 표현하는 것으로 보아 사전자료조사와 공부가 충분히 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최종 경연대회 주제는 안락사에 관한 찬반 토론으로 진행되었다. 죽음을 다루는 것은 어렵다. 학생들도 찬성하는 쪽이나 반대하는 쪽이나 지극히 상식적인 이유들을 들어 토론을 진행했다. 나아가 한국의 장례문화에 대한 토론으로 넘어갔다.


한국의 장례문화와 묘지문화, 조상에 대한 명절의 차례의식과 성묘풍습에 대해 가족중심주의와 사회질서의 저변에 역사존중이 있다는 내용으로 토론이 진행되었다. 아랍어권 학생들의 토론을 통해 우리의 전통문화에 대해 객관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다시없는 기회가 되었다. 이슬람교에서는 망자를 기념하는 방식이 기도와 망자의 이름으로 행하는 자선과 망자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행위로 이루어진다. 망자 개인을 기리는 한국의 기일 제사와 달리 망자의 정신과 행위를 기린다는 것이 달라 보였다. 분명 한국의 기일도 망자를 기억하면서 남은 가족이 만나 화합을 도모하지만 2대 3대 째가 되면 망자의 기억은 없고 형식과 겉치례만 남는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제사와 망자의 유가족을 보고 조문하는 장례식 과정은 개선될 점이 많다고 느꼈다.


시상식에서 상을 탄 학생은 심사자 전원에게 최고의 점수를 받았다. 수준 높은 한국어 사용 및 문화적 이해를 가지고 있었고, 한국인이 크게 생각하지 못한 문제까지 제기하면서 진지하게 접근해서 놀랐다. 인기상을 받은 학생은 끼가 많아서 한국 노래와 춤, 농담 등 한국정서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 발표를 할 때도 유머스럽게 표현을 하더니 상을 받을 때는 자신의 끼를 유감없이 드러내면서 기쁨을 표현해서 웃음을 자아냈다. 특히 케이팝을 부르며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면서 모두 박장대소를 했다.



한국어토론경연에서 인기상 수상자에게 상장을 수여하고 기념촬영을 했다. k-pop과 춤으로 수상에 화답하더니, 유창한 한국어 실력으로 여행 중 가이드 역할까지 맡아주었다.

한국문화체험수업에선 한국의 잔치음식에 대해 알아보고 잡채 만들기를 했다. 내가 맡은 순서여서 잡채라는 이름의 의미와 한국 잔치에서 빠질 수 없는 한국인의 잡채 사랑에 대해 강의했다. 세 팀으로 나누어 분담해서 조리를 했는데, 다양한 색감이 어우러진 잡채는 보기에도 아름다웠다. 30명의 학생들이 함께한 수업이었기에 커다란 함지박에 한가득 버무렸다. 체형이 큰 아랍의 처녀들이 손을 걷어붙이고 함께 잡채를 버무리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개인접시를 받고 한국식으로 나무젓가락을 나눠주었다. 잡채는 순식간에 동이 났다. 학생들은 색감에 놀라고 맛에 놀랐다. 접시를 들고 다니며 잡채를 먹어봤던 경험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기상을 받은 여학생은 너무 맛있다며 함지박에 붙어서 파 양념과 깨소금 가루까지 젓가락으로 집어 먹었다. 학생들은 한국식 젓가락 사용을 재미있게 체험했다.






요르단 대학이 자리한 수도 암만의 시내에서는 특히 한국의 승용차들을 자주 만날 수 있어서 반가웠다. 그런데 자동차의 색이 모두 똑같았다. 물이 귀한 그곳에선 세차란 사치스럽고 무용한 일이라고 했다. 차들은 하나같이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현대나 쌍용이라는 로고는 알아볼 수 있었다. 연간 100mm내외의 강우량으로 그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나무들은 어떻게 자라나는지 궁금해서 김선배에게 물어보았다. 집집마다 옥상에 물탱크가 있어 물차로 주 1~2회 공급받는다고 했다. 그나마도 지하수를 뽑아 쓰기 때문에 지반이 매년 가라앉고 있단다.


그 말을 듣고 나서부턴 호텔에서 샤워를 할 때도 물을 아껴 쓰게 되었다. 요르단 여행을 끝내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욕조에 물을 받을 때면 물 부족 국가의 충격적인 실상을 의식한다. 최근 지하수 하강에 의한 침하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국가들이 늘고 있다는 뉴스를 접하고 있다. 전 지구적으로 확산될 물 부족에 대한 인식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될수록 적은 물로 청결함을 유지하기 위해 내가 실천하는 방식은 세제를 적게 쓰는 것이다. 과다한 세제 사용은 물낭비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하루 두 번 샤워하고 매일 속옷과 운동복과 겉옷을 갈아입는다. 때문에 세탁기가 바쁘다. 한식은 많은 그릇 사용으로 설거지에도 많은 물을 쓴다. 위생관념이 과도해서 청소에도 아낌없이 물을 쓴다. 문화적으로도 온천, 수영장, 개인 욕조 등 많은 물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면서도 문제의식은 갖지 않는다. 연간 강우량이 풍부하고 산과 강과 계곡과 여울, 도랑물들을 사방에서 볼 수 있기 때문에 물 사용에 관해선 그다지 경각심을 갖지 않게 된 것이다. 오죽하면 낭비벽이 심한 사람을 평가할 때, ‘돈을 물 쓰듯 한다.’ 고 말하겠는가! 하찮고 흔해서 거저 쓸 수 있는 것이 물이기 때문에 생긴 말이지만, 물은 생명의 원천이다. 이 순간에도 물을 공급받지 못해 탈수로 죽어가는 생명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한다.


가장 눈에 많이 띄는 올리브나무가 알량한 강우량에도 타거나 마르지 않고 천연 오일을 듬뿍 함유한 열매를 맺어내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비 내리는 날에 상상을 초월하는 진풍경을 볼 수 있었다. 일단 비는 오는데 우산을 쓴 사람이 없었다. 하늘을 바라보며 비를 맞는 모습도 신기한데, 비를 맞으면서 휴대폰 카메라로 셀프촬영을 하는 건 기이해보였다. 비가 내리는 것, 그 비를 맞는 것은 그들에겐 너무도 귀중한 축복이라고 했다. 김선배는 우리에게 짧은 2주일간의 요르단 여행에서 비를 볼 수 있었다는 것 또한 대단한 행운이라고 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작은 트렁크 안에 우산을 우겨넣고 간 우리의 허술한 여행준비에 웃었다. 민선배도 나와 같았기 때문이었다.


현대자동차에 이어 또 반가웠던 것은 우리가 묵은 호텔의 로비와 룸에 설치되어있는 삼성전자 텔레비전이었다. 국산 TV 덕분에 알아듣지도 못하는 아랍어로 뉴스와 음악을 감상했다.


이슬람교를 국교로 삼고 있는 요르단 시대 암만에서는 곳곳에서 종교적 전통을 만날 수 있었다. 거대한 모스크에서 기도시간마다 음악이 흘러나왔고,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술은 금지된 식품인 반면, 담배는 너무도 흔해서 어린아이처럼 보이는 청소년들이 카페나 길거리에서 휴대용 물담배를 물고 연기를 뿜어댔다. 특이한 것은 뽀얗게 내뿜는 연기에서 담배 냄새가 아닌 허브 향기가 난다는 거였다.


음식점과 카페는 규모가 컸다. 인도음식점과 중국음식점들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하심 식당에서 기본 메뉴인 샤월마를 시키고 기대했다. 소스를 첨가해 조리한 고기와 볶은 야채를 구운 밀전병 안에 말아놓은 거였다. 후식으로 하비바를 먹었는데, 달디단 인절미 튀김 안에 치즈가 들어있었다. 또 하루는 인도음식점에서 달수프에 양고기로 만든 커리를 먹었다. 한 쪽은 바삭하고 한 쪽은 부드럽게 구운 난에 커리를 올려서 먹으면서 한국식 카레덮밥을 떠올렸다. 어디를 가던지 그 나라 향토음식과 어우러지는 음식의 퓨전현상이 재밌었다.






암만에 머무는 동안 숙소와 학교 사이에 인디아 카페가 있어서 자주 이용하였다. 카페를 이용하는 주 고객들이 대학생들이어서 그런지, 카페의 분위기는 한국과 유사했다. 단지 음악이 달랐다. 아라비아풍의 노래들은 우리의 정서와 매우 달라서 있는 동안 내내 들으면서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강하지 않은 비트에 메아리처럼 울리며 이어지던 노래들은 어릴 때 소를 몰면서 부르시던 아버지의 노동요와 닮은 듯 달랐다. 그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마셨고, 홍차를 마셨다. 익숙한 메뉴들을 보면서 아무리 멀어도 지구촌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세 번째 날엔 마라미아라는 특이한 허브차에 도전했다. 그런데 그것은 쑥차 맛이었다. 세상에나, 친숙한 경험 속에서 슬쩍 솟았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양가감정을 느꼈다. 안도감과 함께 기대를 배반당한 느낌이랄까.


어느 나라를 가던지 전통시장은 꼭 챙겨보는 코스이다. 우리는 시타델 다운타운을 방문했다. 암만의 전통시장을 보자 남대문 시장과 모란시장이 떠올랐다. 작은 점포들이 빼곡한 그곳에서 알라딘과 요술램프에서 보았음직한 양탄자와 머플러와 자수러그 등의 수제품들을 원 없이 보았다. 향신료와 에센스 오일도 후각을 자극했다. 상점에서는 알라딘의 요술램프처럼 생긴 담배통에 긴 줄을 연결해 시샤(물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다운타운 시장에서 특이했던 점은 시장의 주역이 남성이라는 거였다. 시장을 보러 나온 이들도 남성이 주를 이루고 있어서 우리는 여성을 구경하기 힘들었다.


제일 재미있었던 것은 거리의 이동천막에서 파는 음반이었다. 천막 안에 들어서자 미로가 있었는데, 스피커를 쌓아올려 확보한 작은 공간들 안에 장인의 포스가 느껴지는 CD진열장들이 있었다. 영어를 섞어 쓰는 점주아저씨의 커다란 눈과 수염을 움쩍거리는 풍부한 표정을 통역으로 해석하면서 최신 인기 가수들의 음반을 추천받아 들어보고 기념으로 한 점씩 구입했다. 그런데 집에 와서 보니 불량이었다. 이런! 민선배와 내가 요르단에 머물면서 일부러 찾아서 들었던 곡은 그래서 드뷔시의 피아노 연주곡 아라베스크였다. 지금도 그 곡을 들으면 요르단의 암만 시내와 나바테아왕국의 페트라 신전과 와디 럼 사막과 바위협곡이 떠오른다.


여행 준비를 하면서 녹차와 발효차와 허브차를 챙겨서 가지고 갔다. 숙소에서 우리는 항상 차를 마셨다. 민선배는 오래 전에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고 관리하고 있었고, 체형이 길고 엉성한 나 또한 늘 허리의 건강을 위해 관리를 하고 있었다. 숙소의 침대컨디션이 그다지 좋지 않았던지라 자고 나면 우리는 스트레칭이 필요했다. 싱글침대 두 개의 사이를 최대한 벌려 놓고 바닥에 양탄자를 깔고 허리의 유연성을 회복시키는 스트레칭을 하면서 따스한 물로 차가 우러나길 기다렸다.


조식이 포함되어 있어서 아침은 호텔에서 먹었는데, 조촐한 샐러드 바에 닭고기 찜 요리가 추가된 정도였다. 빵과 버터 요거트와 샐러드가 있어서 거부감이 없었고, 무화과와 대추야자를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밀전병에 야채볶음을 싸먹는 후무스도 있었다. 아침의 차도 좋았지만 저녁마다 드뷔시의 아라베스크를 들으며 카모마일과 페퍼민트 차를 마셨다. 카페인이 없는 허브티 종류는 여행할 때 여러모로 큰 도움을 받는 최애 필수품목이다. 차를 마시면서 학생들의 수업과 경연대회 참석을 위해 들어온 터키 학생의 이야기를 나누고, 남은 일정에 대해서도 점검했다.


학교에서 세 시간의 특강을 마치면 강의 전후에 우리는 암만 시내를 쏘다녔다. 가이드 없이 다운타운에도 가고 기념품을 구입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돌아왔다. 요르단 대학교는 정문을 통해서만 입장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학교 정문이 매우 특이했다. 중국 공항에서 입국 수속을 밟을 때나 경험할 법한 신분증 검사를 하는데, 학생들은 프리패스와 같은 디지털 증명서가 있었다. 우리에게도 출입증을 주었지만, 안타깝게도 입구에 지키는 사람이 없으면 문이 자동으로 열리지는 않았다. 호출을 하고, 제복을 입은 무장한 사람이 나타나 문을 열어주면 격리시설에 들어갈 때처럼 한사람씩 좁은 통로를 통과해야 교문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거대한 성에 입성하는 절차로 느껴졌다. 그러나 일단 학교에 들어가면 분위기는 사뭇 자유로웠다. 학생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장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가장 기대했던 사해도 다녀왔다. 학교에서 근무한다는 나달이라는 남자를 박선배가 연결해줘서 그의 차를 렌트해서 민선배와 둘이 출발했다. 그다지 먼 거리는 아닌데다, 아침 일찍 출발했기 때문에 한 시간이 조금 더 걸려 도착했을 땐 아직 오전이었다. 우리는 체험의 편리성을 제공하는 호텔에 패키지 예약을 해서 사해에 내려가서 머드팩을 하고 염도가 세계최고라는 바닷물에 들어갔다. 가족단위로 놀러온 유럽인으로 보이는 관광객들은 수영복 차림으로 들어가서 바닷물에 둥둥 떠 있었다. 우리가 간 곳은 맞은 편 이스라엘이 보이는 곳이었고, 좁아지는 상류가 요단강이라고 해서 거슬러 올라가면서 유심히 보았다. ‘요단’이라는 지명은 ‘단에서 흘러내린’의 의미라고 한다. 헬몬산에서 흘러내린 요단강의 위쪽은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 중 단 지파에게 분배된 땅이라는 걸 성경 기록과 지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바다 건너 이스라엘이 희미하게 보이는 사해, 머드팩을 하고 해변을 걸어 요단강쪽으로 가다가 호텔 경계에 가로막혀 호텔로 들어가 뷔페로 식사를 했다.


요단강에서 가장 특이한 것은 그 곳에 푸른 풍경이 펼쳐져 있다는 거였다. 학교와 시내를 벗어난 뒤에 줄곧 돌과 바위가 있는 사막을 지나왔기 때문에 나무나 풀을 보지 못했다. 상류의 요단강 쪽은 수풀이 더욱 우거져 있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보는 흔하디흔한 강의 풍경과 다르지 않았다. 바로 그 곳이 그토록 유명한 지명으로 기록되고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사해 해변에서 요단강 방향으로 걷다가 호텔의 경계에 가로막혔다. 호텔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뷔페의 규모가 어마어마해서 디저트 종류만 수십가지였다. 나보다 더 소식좌인 민선배는 잘못된 선택이라며 후회했다. 산해진미가 가득한데, 우리의 배가 너무도 작다는 것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대식가인 지인들이 줄줄이 생각나는 화려한 점심식사였다. 시간이 충분하다면 두어 시간 수다를 떨면서 천천히 먹을텐데, 우리에겐 정해진 일정이 있었고, 돌아갈 차를 예약대기한 상태라 겨우 30분 정도의 여유밖에 없었다. 우리는 스시접시처럼 한 점씩 분배된 연어와 샐러드 후무스를 홍차와 함께 즐기고 아쉬움을 접었다. 기회가 있다면 사랑하는 이들과 한 번만 더 오고 싶다는 소망을 남기고.




모스크와 박물관 가이드를 맡아준 할라와의 점심 식사, 박선배가 선물해준 아랍어로 쓴 내 이름







* 요르단 여행 이야기는 2편에서 와디-럼 사막 베두인의 마을로 이어집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