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스란 Oct 29. 2023

바람이 분다, 글을 써야겠다

그래, 이맘때 브런치를 알았지

아들내미 시험기간이라고 아무 데도 갈 일을 만들지 않고 집에서 보내는 일요일이다.

낮에는 그저 옆에 앉아 책을 읽고 가끔 아들이 건네는 말을 들어주는 걸로 족했다. 물론 자기 말을 잘 들었는지 그냥 하는 대답인지 알기 위해 퀴즈를 내듯 확인하는 버릇은 여전했다.

늦은 점심이자 저녁으로 텐동을 먹자더니 마음을 바꿔 치킨을 시켜 먹었다. 정해준 브랜드에서 시켰는데 두 마리 세트라고 하기엔 양이 적다며 투덜, 양념으로는 트러플 슈프림을 시켰어야 한다며 투덜. 불닭마요소스까지 만들어 놓고 얼마나 먹음직스럽게 먹는지. 이럴 거면서 왜 그렇게 불평하는 건지 모르겠다.

한두 시간 쉬고 이번엔 역사 공부를 한다고 한다. 중요표시 가득한 인쇄물을 꺼내놓더니 한자어 가득한 문장을 읽으며 도대체 뭐가 뭔지 잘 모른다며 가르쳐 달란다. 아이고, 시험이 열흘 앞인데 수업은 제대로 들었는지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아들의 담임선생님이 역사선생님이신데 이 정도니 약간의 한숨이 나왔다.




정말 다행인 건 나도 역사를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으나 나이가 들며 보아온 사극도 여러 편이고 각종 역사예능도 있었기에 주워 들어 들려줄 이야기가 많았다. 덕분에 단어만 달달 외우려던 아이가 이해가 잘 된다며 앞으로 며칠간 더 가르쳐 달라고 한다.


나이가 들어 좋은 건 조망하는 능력이 좀 더 생긴다는 것이다. 당장 내 앞에 닥친 일이 마냥 커 보이고 심각해 보이고 때로는 전부인 듯하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감정 또한 오르락내리락하며 희로애락이 매우 짙었다. 지금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그리 대단한 일도, 두려운 일도 아니란 것을 안다. 시간이 가면 곧 잊힐 것이고 지나가면 좋은 것만 기억되며 안 좋았던 것들은 모두 내 공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제는 아들이 아침축구를 하고 친구랑 아점을 먹는다길래 남산을 풍경으로 멘토 같은 친구와 에그 베네딕트를 먹고 왔다. 

이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직장을 벗어나면 여러 핑계이자 이유로 사람을 만나지 않다 보니 일대일로 대화를 나눌 일이 거의 없다. 하지만 다른 도시에 살아 아주 가끔 만나는 이 친구는 일부러 시간을 내서라도 만나는 편이다. 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더 깊이 알아보고 복기하며 생각이나 느낌을 생생히 전달하다. 나의 귀찮음은 시간을 휘발시키는데 친구의 부지런함은 시간을 누적시킨다.

올해엔 한 해에 책 100권 읽기를 목표로 했다며 열심히 읽은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준다.

그러다가 친구에게 글 좀 쓰라고 했다. 너의 이런 주옥같은 이야기를 나만 듣는 게 아깝다며 한 말이다.

그 친구도 이런 대화는 나눌 데가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나도 마찬가지지만 직장 동료들과는 개인 적인 꿈, 목표, 생각을 나눌 기회가 거의 없다.




글을 쓴다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작년 이맘때 글쓰기 공부를 한다고 프로젝트에 들어가 열심히 준비하여 정말 운 좋게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적어도 내 글이 다른 사람들에게 읽힐 수 있긴 한가보다 여겼지만 그 후로 다른 동기들과는 달리 꾸준하게 글을 쓰지 못했고 쓰지 않았다. 동기나 구독한 작가들의 글 발행 알림은 매일 받고 대문에 걸리는 글을 자랑스럽게 부럽게 읽으면서도 나를 드러내는 용기가 없는 건 여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글을 쓰고 싶었다. 

바람이 불어서인지, 이맘때가 되어서 인지, 친구랑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와서인지, 아들과 둘이서만 제대로 된 대화도 못하고 있어서인지는 모른다.


다이어리에 매일 적는 해야 할 일, 글쓰기

정말 오랜만에 체크를 할 수 있겠다.

 



작가의 이전글 다음엔 육지에서 만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