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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스란 Nov 03. 2023

직진금지

나는 어디로 갈 것인가

오늘은 내분비내과로 가야 한다.

늘 익숙한 이비인후과만 가다 조금은 생소한 진료과를 가려니 이전과는 내가 달라진 것인가 싶다.


10월 27일에 이비인후과에서 협진의뢰서를 써주었음에도 가장 빠른 예약일이 11월 17일이었다. 너무 먼 날짜에 간호사도 난감한지 그냥 다음 주에 당일접수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대신 2~3시간 기다려야 할 거라고 했다.


조퇴를 한 후 병원에서 2~3시간 보낼 생각으로 운전을 했다.

병원으로 가는 길 중 막다른 도로가 있었는데 좌회전 하기 직전 내 앞에서 빨간 불로 바뀌어 한참 서 있게 되었다.

사고 위험이 있어 가독성 좋게 굵고 크게 쓰인 표지판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빨려갈 듯 네 글자만 또렷이 보였다.

'직진금지'


순간 누군가 내가 가고자 하는 길에 서서 절대 안 된다고 할까 봐 위축되고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이 길의 끝인 병원에서 나의 일을, 일상을 막아서면 어쩌지?

고개를 저으며 외면하고 있던 차에 좌회전 신호가 켜져 출발했다.

오늘따라 가지치기 작업으로 봄에 싹둑 잘린 커다란 가로수의 머리가 우스꽝스럽게 보였다.


병원에 도착해 접수를 한 후 내분비내과로 향했다. 로비보다 한 층  사람들이 그리 많이 다니지 않는 쪽에 있었다. 근처의 다른 진료과 교수님은 오후 진료가 없었나 보다. 간호사 자리와 환자대기석이 텅 비어 있었다.  오래 기다릴 걸 각오하고 구석진 자리에 앉아 이어폰을 꽂고 노이즈 캔슬링 상태로 얼마 전에 산 책을 펴고 몇 장을 읽었다.

중간중간 환자이름이 크게 호명되는 소리와 귀가 잘 안 들리는 노부모를 모시고 온 자녀들의 크게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쭉 둘러보니 환자들의 평균 연령이 꽤 높았다. 나보다 어린 여자가 한 명 있었는데 20대로 보여 어쩌다 여기 왔을까 싶었다. 궁금증에 쭉 둘러보니 내분비센터라는 글자 옆에 당뇨센터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그래서 평균연령이 높았던 거였다.




2시간을 넘게 기다린 후야 진료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지난번에 찍은 초음파사진도 보여주며 아주 자세하고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주셨다.

결론은 일주일 후에 혈액검사 고 그다음 주 결과를 봐야 자세한 걸 알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히도 이비인후과와 마찬가지로 급성이거나 심각한 건 아닌 걸로 보인다고 했다.

'아닌 걸로 보인다'는 '그럴 수도 있긴 하다'와 같은 말이지만 환자입장에서는 감사한 표현이었다. 적어도 2주간은 괜찮을 거라는 희망을 갖고 지낼 수 있 때문이다.




아프다는 게 이렇게 귀찮은 일이다.

추석 전부터 동네 병원에서 5일 치 약을 받으며 3주를 다녔다.

목 안 쪽은 괜찮아졌는데 바깥쪽은 여전했다.

"이 정도 약을 먹으면 통증이 없어져야 하데, 의뢰서 써드릴 테니 큰 병원으로 가보세요."

그렇게 처음 간 날 진료 후 다음 주 혈액검사하고 그다음 주에 초음파 찍고 그 결과 보러 그다음 주에 오라고 했다. 그것만 해도 4주다. 결과보고 한 주 후에 병원에 온 건데 다음 주 혈액검사받고 그다음 주에 오라니..

병원을 다니다가 병을 얻을 거 같다.

그래도 큰 병원이 직장에서 30분 내에 있다는 걸 감사하게 여겨야한다. 5주째 조퇴를 하게 되는 상황인데 앞으로도 두 번 더 하고 그 이후는 또 모를 일이다. 병가로 다는 것도 최근 복잡해져서 연가로 달다 보니 모르는 사람이 보면 어디 다니는 줄 알 거 같다. 물론 그런 걸 크게 신경 쓸 나이도 경력도 아니지만 그렇다는 것이다.


더 심각한 일로 병원을 다니는 분께는 투정으로 밖에 안 보일 테지만 한 해가 끝나가는 시점이라 약간의 두려움이 있다.

2019년 11월에도 감기인 줄 알고 병원 다니다가 의뢰서 받아 큰 병원에서 진료받은 날 폐렴이라며 바로 입원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한 해 온 힘과 맘을 다해온 내게 세상이 '직진금지'라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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