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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스란 Jan 08. 2024

아들이 고등학교에 들어간다는데 내가 설렐 일인가

3년 동안 뭘 해낼 수 있을까?

12월 18일. 다른 학교보다 조금은 일찍 합격자 발표가 있었다.

혹시 특목고, 자사고냐고 물으시는 분들이 많았다. 아니다.

우리가 희망한 특수지라고 하는 곳의 일반고는 다른 학교보다 일찍 발표가 난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아들이 다니는, 한 학년에 6반 밖에 안 되는 작은 학교에서 영재고, 과학고, 국제고, 외고, 예고까지 참 다양한 곳에 합격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특수지라는 곳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테니 오해할 만도 한 것이다.


3주 전에 기가 막혔다가 답답했다가 아찔했다가 결국 다행스럽게 일반고 원서를 쓰게 된 터라 그저 감사할 뿐이다. 원서 쓰는 걸로도 글감을 주는 우리 아들 덕에 생생한 글이 한 편 써졌으나 서랍장에 고이 모셔 두었다.


12일이면 졸업을 하고 15일이면 예비소집을 한다.

아들이 고등학교를 들어간다고 하니 나의 고등학교 입학기와 겹쳐졌다.

벌써 30년이나 흘렀는데 누구에게나 그렇듯 진하게 남아 있는 기억이다.




요즘 우리 집은 아들 한 명에 두 부모가 달라붙어 조금은 희한하고 우습기도 하지만 나름 즐거운 때를 보내고 있다.

시작은 아들을 일반고로 보낼 수 있었던 마지막 호소의 말 때문이었다.

"엄마가 너를 제대로 뒷바라지할 기회를 한 번은 줘야지."

매년 방학마다 그래왔긴 했지만 또다시 공부를 함께 하게 된 것이다.

아들의 제안이 재미있고 제법 괜찮았다.

"내일부터 하루에 10분 공부할게요. 매일 5분씩 늘려서요."

고등학교 입학하는 날을 D-Day로 잡았을 때 96일 남았던 날이었다.

고교 입학 100일도 안 남은 시기지만 시작해 보겠단 아들의 말이 참 반가웠다.

10분이면 어떻겠는가? 공부를 하겠다는데.

이전의 글을 읽은 분은 알겠지만 우리 아들은 중학 내내 학교도 잘 다녔고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다.

다만 공부에 흥미가 없을 뿐이다.

아들의 성적을 전해 듣고 의아해하는 내 친한 친구들에게 한 말을 빌어 말하자면,

우리 아들은 내 아들인 거 빼고, 교사 아들인 거 빼고 보면 지극히 정상 범주에 있는 착한 아들이다.

그렇게 10분에서 5분씩 늘어난 공부가 지금은 170분이 되었다.

더딘 것 같지만 역시 꾸준함의 힘은 대단했다. 4시간까지만 늘리겠다고 했는데 그 정도도 좋다.

그렇다고 매일은 아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쉬어야 하지 않겠냐는 아들의 말에 충분히 납득이 되었기에 하루는 푹 쉰다. 부모가 모두 봐줄 수 없었던 약속 많던 연말에도 하루 쉬었다.

대신 계획된 시간 외에는 졸업을 앞둔 중3의 놀이와 쉼에는 간섭을 하지 않는다.




중학교 내내 학원을 전혀 안 다녔고 당장 계획도 없다.

내 앞에서 하는 공부가 전부인 정말 원초적인 상태다 보니 퇴근하고 저녁 먹고 옆에 앉아 시간을 보낸다.

아들이 170분을 공부한다는 것은 나 또한 그 시간 동안 책상에 앉아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고등학생 내내 그렇겠냐만 적어도 방학 때까진 이러지 싶다.

양해를 구해서 왔다 갔다 하면서 소소하게 집안일을 하긴 하지만 폰을 본다거나 TV를 보는 일은 없다.

이렇게 지내는 우리를 보며 지나쳤던 남편이 가끔 둘이 투닥거리며 가르치는 게 답답해 보였는지 한 두 번 훈수를 둔 것을 계기로 공부 시간 일부를 위임했다.

그전까지 엄마한테만 배우고 아빠를 믿지 못하겠단 아들이 대학 때 수학 과외를 했던 경력이 있다고 하자 제안을 받아들였다.

직장맘인 내가 저녁 시간을 아들과 함께 보내면 집안일이나 내가 해야 할 일은 그대로 멈춰있게 되는 것이 문제였기 때문이다. 큰 소리 날 것 없이 원만한 합의가 이뤄졌다.

남편은 중3 1학기 복습, 나는 2학기 복습, 그 밖의 교과는 내가 안내하고 도와주기로 했다.




아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만의 계획이 서야 했다.

주된 것은 아이를 가르치며 봐주는 것이지만 어쨌건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생기다 보니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한테도 전에 넌지시 영어 울렁증이 있는 엄마가 너 3년 공부할 동안 기초부터라도 하면 졸업할 때쯤엔 어느 정도는 하지 않을까? 그때 영국에 가서 손흥민 경기든 챔스든 직관하자고 했다.

드문드문 책을 읽어도 몇 권일 거며, 무얼 꼼지락 거리며 만들어도 뭐가 되긴 할 것이다.

옆에서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 글을 바로 쓸 순 없겠지만 중간중간 나에게 새로운 글감을 줄 아들이란 걸 알기에 글도 꾸준히 쓰게 될 것이다.

아들이 고등학생이 되어도 20여 년 동안 해왔던 일은 계속할 것이다.

하지만 아들이 고등학교 3년을 보내는 사이 난 또 다른 3년을 맞을 것이다.

아들이 성장하는 것만큼 나 또한 성장하여 지금의 우리가 예상할 수 없는 지점에 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3년이란 시간은 엄청 빨리 흐를 것이다. 하지만 1,000일이 넘는 긴 시간이기도 하다.

1,000개의 학을 고이 접듯 작은 것을 하나하나 쌓아 올리는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함께 하는 이 시간은 앞으로의 인생에서 소중하고 감사한 시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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