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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YO Aug 11. 2023

일본 남자와 연애하기 4

삘이 찌르르


 "들어와."

 "실례합니다-"


 하나도 계획대로 되는게 없었다. 평소라면 계획대로 안돼서 온갖 짜증과 신경질에 못된 마음이 꽉꽉 찼을 테였다. 그런데 그 날은 그냥 심장 쿵쿵거리는 소리가 너무 컸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쿵쿵대는 긴장감이 모든 감각을 감추었다. 빨래 덜마른 냄새 나지 않겠지? 뭔가 쿰쿰하진 않겠지? 집이 너무 더럽진 않겠지? 너무 긴장됐다. 이게 뭐라고. 처음부터 들일 생각은 없었는데, 그래도 들여서 다행인가? 온갖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집 되게 예쁘다. 네 냄새 나."

 "내 냄새가 뭐야?"

 "좋은냄새. 너 되게 좋은 냄새 나."


 괜히 의식하게 됐다. 오늘 뿌린 향수가 얘한테도 좋았나보다. 다행이다. 향수냄새 싫어하는 사람도 있던데.

 그 때의 우리집은 정말 손바닥만한 원룸이었다. 침대랑 냉장고가 하나씩 겨우 들어가고 쓰레기통을 두면 두 명 서 있을 수 있는 정도의 크기였다. 애초에 올 손님이 없었고, 혼자 살기엔 본가의 방보다는 넓었으니 충분한 크기였다. 혼자서는. 그말인 즉슨 우리는 싱글침대 하나에 팔을 딱 붙이고 앉아있어야 했다. 심장이 쿵쿵대는 소리가 다 들릴 것 같았다.


 이거, 그건가? 내가 내 손으로 내 무덤을 판 건가? 혹시 그렇고 그렇게 됐을 때 내가 싫다고 거절한다면? 혹시 무슨 일이 나는 건 아니겠지? 글쎄 그렇기엔 너무 왜소해서 내가 한손으로 제압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이런저런 생각들에 머리가 복잡했다. 하지만 이미 들여 보낸 이상 이미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뭔가 있든 없든 나 역시 이자식을 책임 질 수 밖에 없겠다, 그렇게 생각했다. 이렇게 빼빼 말라서 무슨 짓을 할 수가 있겠어? 뭐가 있대도 (내가) 때리지만 않으면 되겠지. 여차하면 조져버리겠다는 마음으로.


 다행인지 아닌지 우리는 그냥 반쪽씩 비 맞은 몸에 반쪽만 감기가 걸릴까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콜라를 마시고 착실히 이를 닦고 좁은 싱글침대에 꾸역꾸역 몸을 욱여넣었다. 나란히 누워 잠을 청했다. 뭐가 있었다라고 하기엔 자기 전에 그 애가 자기도 모르게 볼을 만지작거리다가 입을 맞췄던 것 뿐이었다.


 "헉 미안. 진짜 미안. 진짜 미안!!"

 "왜 사과해?"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어... 진찌 미안."

 "그렇게 미안 할 일도 아니야. 그만 사과해. 난 좋았어."

 "... 좋았어?"

 "응."


 그 애의 입이 떠억 벌어졌다. 그러더니 어색하게 꾸깃꾸깃 팔을 펴서 내 목 아래로 넣었다. 팔베개가 하고싶었다고 했다. 내 냄새가 좋다고, 그래서 껴안고 자고싶은데 그럼 네가 답답할까봐 팔베개가 하고싶었다고.

 캄캄하게 불이 꺼진 방 안에서 어렴풋이 그 애의 표정이 보였다. 좋아서 어쩔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이렇게 알기 쉬운 사람이 요즘에도 있다고? 싶을 정도로 얼굴에 전부가 드러나는 사람이었다. 눈은 웃고있고 코는 자꾸 움찔움찔거리고 입술은 윗입술이 비죽 나와 아랫입술을 덮었다. 씨익 웃고 있어 살이 없는 뺨에 보조개가 들어갔고, 자꾸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자꾸 (향이) 좋다는 말만 중얼거렸다.


 "너 나 좋아?"

 "응 좋아. 원래도 좋았는데 실제로 보니까 훨씬 훨씬 좋아."

 "너는 진짜 알기 쉽다."

 "너는 알기 어려워."

 "그런 매력이야. 열심히 알아봐."

 "나 또 와도 돼?"

 "다음에 만날 때 또 와."

 "그럼 오늘은 이렇게 자야지. 너무 좋다."

 "팔 아프면 빼? 쥐 나면 안돼."


 그 애는 죽어도 안 빼겠다며, 계속 그러고 자겠다며 연신 헤헤 웃고 있었다. 첫인상의 쎄하고 단단하고 덤덤하던 무서운 얼굴은 어디갔는지. 자꾸 좋은 냄새가 난다는데 좋은 냄새가 나는 건 너였다. 사람 개개인의 특유의 좋은 체취에 우리집 샴푸 냄새가 섞여들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오늘 처음 만난 애랑 싱글침대에 꼭 붙어 누워서 팔베개를 하고 서로가 좋다는 말을 자연스럽게 나눈다.

 나는 누워서 잠이 들 때 까지 시간이 조금 걸릴 편이고, 그 애는 머리를 대자마자 잠드는 어디서든 잠들 수 있는 편이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그 애는(아침부터 두시간 반을 운전하고 왔기에 평소보다 더 빨리) 먼저 잠들었고, 나는 그 애의 자는 얼굴을 처음으로 봤다. 남의 자는 얼굴을 보는 건 생각보다 많은 생각이 드는 행위였다.


 무엇보다 느낌이 왔다. 나 얘랑 정말로 뭔가 있겠다. 근데 그게 단순히 사귀고 연애하고 꺄르륵 하고 그런 정도의 뭔가가 아니다. 뭔가 그 이상의 뭔가를 경험 할 것 같다. 우리의 첫 밤은 아무 일 없이 팔베개만을 끼우고 깊어갔다.


 다음날 아침, 그 이상의 뭔가에 대해 알아버렸다.


 나 얘랑 결혼한다. 진짜로 결혼한다.


 왜냐하면 그 날 밤에 했던 팔베개가 아침에 일어나서도 그 자리에 있었다. 심지어 그 애는 나보다 먼저 일어 나 있었다. 그러니까 어젯밤의 반대로 그 애가 나의 자는 얼굴을 보고 있었던 거다.


 "잘 잤어? 출근해야지."

 "팔베개 잘 해놓고 출근시키지 마."

 "나는 쉬는 날이지."

 "집에 가!"


 그렇다 나는 다음날 출근을 해야했다. 그 애는 나를 만나기 위해 무려 이틀의 휴일을 빼고 교토까지 와 줬던 거다. 평소 출근 시간보다 일찍 일어나서 그 애를 주차장에 데려다 준 후 출근을 했다. 회사 앞까지 얼마나 된다고 그 거리를 또 태워줬다. 그래도 하룻밤 같은 침대에서 잔 사이라고, 조수석에 앉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이제 이 자리는 공식적으로 내 자리가 되는 건가? 서랍에 인공눈물이라도 넣어둬야 하나?


 손을 흔들며 집으로 돌아가는 그 애가 무사히 집에 도착하길 바랐다. 빨리 다음 데이트도 하고싶었다. 우리는 또 언제 만날까? 반드시 만날텐데, 우리는 다시 연락을 이어갈 수 있을까?


 절반정도의 기대감과 남은 절반정도의 불안감. 헤어진 지 5초만에 보고싶어졌다. 제대로 낚였다. 완전히 사랑이 시작 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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