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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랫제시 Dec 06. 2022

아빠는 YOLO

아빠의 첫 패키지 여행담

"주영아, 내가 미치겠다. 너희 아빠 때문에 진짜 환장하겠다."

"왜, 무슨 일이야."

"너네 아빠가 태국에서 상황버섯을 600만 원어치를 사 왔어."

"뭐라고? 뭘? 버섯을?"


전화 넘어 엄마의 분노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태국은 아빠의 첫 해외여행지였다. 경기도 한 시골 마을 이장님들끼리 비행기를 탄 패키지여행. 아빠 인생은 지루할 틈이 없다. 딱 오늘 하루를 산다. 요즘 흔히들 이야기하는 'YOLO'의 삶보다 조금 더 색이 깊고 강하다. 욜로를 추구하는 욜로족은 내 집 마련이나 노후 준비보다 지금 당장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취미생활, 자기 계발 등에 더 많이 투자하는 특징이 있다고 했다. 단순히 물욕을 채우는 것을 넘어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는 과정에 있다는 점에서 충동구매와 구별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빠는 욜로족의 성향에 충동구매의 욕구까지 공존한다. 이 정도면 욜로족 두목이라고 봐도 된다.


"아빠, 태국에 가서 라텍스 이런 거 사지 마. 믿을 수도 없고 한국에 좋은 거 더 많아. 제발 부탁이야."

"응, 걱정 말어."

"자, 여기. 여행경비에 보태쓰셔."


아빠의 첫 해외여행인데 맏딸이 300만 원 정도는 멋지게 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흰 봉투 안에는 30만 원이 들어있었다. 둘째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라 살림이 빠듯했다. 이런 맘을 욜로족 두목님이 모를 리 없다. 내 맘을 위로하듯 아빠는 딸이 준 용돈에 흐뭇한 미소를 내비치신다. 어릴 적부터 내가 하는 말이라면 철석같이 믿어 주셨던 그는 지금도 맏딸에 대한 신뢰도가 높다. 라텍스가 한국에 좋은 게 더 많다고 한 딸 이야기가 생각나서 라텍스는 쳐다보지도 않으셨다고 하셨다. 그래서 라텍스를 제외 한 나머지 여행 패키지 상품들을 모조리 휩쓸어 오신 것이다.


엄마와의 전화통화는 상황버섯 600만 원어치에서 끝나지 않았다. 태국에서 왜 'Made in China' 보이차를 파는지 알 수 없으나 10만 원짜리 중국 산 이차를 열 통도 넘게 사셨고, 남대문에 가서 5000원이면 살만한 짝퉁 '샤넬 스카프'를 한 장에 7만 원을 주고 사돈 것까지 챙기셨다. 더 기가 막힌 건 가이드에게 팁을 챙겨주며 스카프 한 장을 더 사 오라고 심부름을 보내신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며느리 스카프를 깜빡한 걸 아셨다나. 살짝만 스쳐도 올이 쭉 나가는 '샤넬 스카프'가 지금은 우리 집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 알 수 없으나, 시어머님은 매년 겨울이 되면 7년이 지난 지금도 목에 두르고 다니신다. 시어머님 복은 타고났다.

.



이런 씀씀이는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어느 재벌 이어도 이런 식으로 돈을 쓸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아빠가 'YOLO'의 삶이 아닌 '자린고비'의 삶을 사셨다면 '서민 갑부' 정도는 가능하지 않았을까.


강한 노동에서 오는 보상심리일까.

아빠는 내가 14살이 되던 해부터 '대하(왕새우) 양식장' 사업을 시작하셨다. 할아버지께 물려받은 염전을 파서 물을 채우고 양식장을 만들어 대하를 키우면 돈이 될 거라고 확신을 하셨다. 소금 농사나 쌀농사는 아무리 해도 돈이 되질 않으니 다른 아이템으로 도전을 하신 것이다. 하지만 어디 생각처럼 일이 그렇게 쉬운가. 봄에 '치어'를 사서 양식장에 뿌리고 하루에 4번 사료를 줘야 했다. 인간보다 더 자주 먹는다. 여름이 되어 장마철이 되면 온 식구들이 긴장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벼락이 쳐도 아빠는 우비를 챙겨 입고 대차게 나가셨다. 모터 달린 작은 배를 타고 유독하고 무섭지만 강한 척 새우밥을 주셨다. 캄캄한 밤 바람따라 일렁이는 배 위에서 우비를 입고 무슨 생각을 하며 새우 밥을 주셨을까. 학생이었던 나는 아빠가 새우밥을 주다가 벼락이라도 맞을까 맘이 초조해 잠을 이루지 못했다. 태풍이라도 부는 날에는 아빠 몸무게가 90킬로가 넘는 게 감사했다. 그렇게 아빠는 봄 여름 가을까지 새우를 키워 9월이 되면 새우를 잡아 파셨다.


하지만 아빠의 도전은 쉽게 성공할 수 없었다. 새우 요 녀석이 그렇게 예민한 절지동물이라는 걸 누가 알았을까? 새우는 비가 쏟아져 수온이 내려가면 죽어버렸고, 가뭄으로 해가 강할 땐 산소부족으로 생을 마감하셨다. 날씨가 좋아도 알 수 없는 바이러스가 돌면 죽기도 했다. 매년 반복되는 실패로 새우 사료값은 고스란히 빚으로 남았다. 까맣게 굳은살로 덮인 아빠의 손등은 마음을 아리게 했고, 또래보다 성숙하게 만들었다. 절망에 몸부림치다가도 아빠는 다시 일어났다. 엄마는 끔찍했겠지만 사실 난 포기하지 않는 아빠가 하늘처럼 높아 보였다. 전업주부였던 엄마는 어쩔 수 없이 식당으로 일을 나가셨고 공장에서도 일을 하셨다. 가족은 모두 함께 그 시간을 감내했다.




아빠의 이런 상당한 집념은 10년 후부터 빛을 발휘했다. 내가 20대 중반이 될 때쯤 아빤 매해 양식 사업에 크게 성공했고, 빚도 아 나가실 수 있었다. 아빤 그렇게 몇 년간 빚을 았다. 그러니 내가 30대가 되던 시점에서야 수익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40대 초반이다.

22년 가을 아빠의 양식장 그리고 손자들

아빠의 '태국 패키지여행'은 모든 빚을 청산 한 뒤 처음 떠난 해외여행이었다. '상황버섯 600만 원 사건'은 두목님의 귀여운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매년 봄부터 가을까지 새우 농사로 모든 에너지를 불태우고 겨울에는 비행기에 오르시는 패턴을 유지하고 계신다. 처음에는 동남아 여행으로 미약하게 시작했으나 해가 지날수록 5대양 6대주로 영역을 넓혀 나가셨다. 그 덕분에 해외 각국의 영양제가 우리 집 주방 한편에 가득하다. 밥풀이 난무한 우리 집 거실에는 영 어울리지 않는 알파카 카펫도 장롱에 보관 중이다. 언젠가는 이 알파카 카펫이 어울리는 저택으로 이사 가는 꿈을 꾼다.



'이런 아빠가 좋다. 아빠 옆에 있으면 재벌집 딸도 부럽지가 않다.'


사진 출처 : 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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