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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씨한 Dec 30. 2022

교사의 위치

너희 아버지가 양식장 하시니?

왜 우리 마을에는 한 [韓]씨가 많지? 친구도 나와 같은 한 씨였고, 옆집 언니도 한 씨였다. 나는 집성촌에서 태어났다. 동성동본의 동족이 집단적으로 거주해 한 마을을 이룬 작은 동네. 우리 집 마당에서 크게 소리 지르면 들릴만한 곳에 작은할아버지 가족이 사셨고, 열 살 아이가 혼자서도 걸어갈만한 거리에 큰아빠 가족이 살고 있었다. 마을입구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400년이 넘은 은행나무가 그 위엄과 자태를 뽐내며 우뚝 서 있다. 가을이면 동네사람들이 봉지 하나를 들고 나와 떨어진 은행을 부지런히 담는다. 동네사람 어느 누구 하나 서로 모르는 이 가 없었다. 이런 마을에 낯선 이 가 등장했다.


"아저씨, 이 책 얼마예요?"

"집에 엄마 계시니? 엄마한테 사달라고 해."

"아저씨, 여기서 꼭 기다리세요. 가시면 안돼요."


작은 구멍가게 하나 없던 이 동네에 책을 잔뜩 실은 책장수 아저씨가 은행나무 앞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우리 집은 바로 은행나무언덕 아래였다. 책은 빤닥거리며 빛이 났고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심장이 두근 거려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순간 결심했다. 저 책을 내 방에 들이기로. 저녁준비를 하던 엄마를 있는 힘껏 불렀다. 평소 엄마에게 떼를 쓰지 않는 맏딸이었으나 그날 하루는 돌변했다. 엄마가 난감을 표정을 지으며 아저씨에게 그냥 가시라고 했다. 아저씨가 정말 그냥 갈까 봐 악을 쓰고 울었다. 아저씨는 하필 전집만 팔았다. 그는 우는 날 보고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셨다. 그때 악쓰는 소리에 할아버지가 나오셨다. 그렇게 할아버지 덕분에 생애 첫 어린이 영어책을 갖게 되었다.



처음 핀 책에는 코끼리 그림이 그려져 있고 Elephant [엘리펀트]라고 친절하게 한국어도 적혀있었다. 이해가 안 갔다. 왜 영어는 여덟 글자인데 한글로는 네글자가 되는 건지. 언젠가 친척언니네 놀러 가면 물어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언니는 귀찮은 듯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너도 중학교에 가면 배울 수 있다고 했다. 조금 서운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영어가 너무 알고 싶었지만 알 수 없었다. 이런 내 마음에 더 불을 지핀 일이 생겼다.


이번엔 책장수 아저씨와는 비교도 안 되는 이방인이 등장했다.


눈은 파랗게 영롱했고, 흰 피부에 주근깨가 귀여웠다. 갈색인 듯 노란색인 듯 밝은 머리색을 가진 남자아이. 그 아이도 열 살이라고 했다. 이름은 커키(Kirki). 한동네에 사시던 작은할아버지의 딸이 외국남자와 결혼을 했다고 들었지만 그녀의 아들이 내 눈앞에 서있으니 여간 신기한 게 아니었다. 독일에서 왔다고 했다.

나는 작은할아버지의 딸을 고모라고 불렀다. 고모가 몇 년에 한 번 한국(친정)을 방문을 하는데 이번엔 아들을 데리고 온 것이다. 그 아이와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다. 커키는 뛰 놀고 싶어 했지만 난 앉아서 그 아이와 이야기가 하고 싶었다. 내가 영어전집을 통해 배운 모든 단어들을 조합해 하고 싶은 말을 쏟아냈다. 커키는 이해를 할 때도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귀찮아하는 게 느껴졌다. 2주 정도 시간이 흐르고 커키는 고모와 함께 독일로 돌아갔다. 다짐했다. 중학교에 가서 영어를 배운 뒤 언젠가 네가 다시 한국에 오면 마음껏 이야기를 나눌 거라고.


중학생이 되고 첫 영어수업을 기다릴 때의 심정을 잊지 못한다. 선생님이 위대해 보였다. 저분은 커키와 자유롭게 이야기를 하실 수 있겠다 생각하니 부럽기까지 했다. 영어수업 시간을 항상 기다렸다.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하면 영어를 잘할 수 있을거라 확신했다. 그런데 어느 날 모든 환상은 수증기처럼 사라졌다. 마음속으로 숭배하던 영어선생님이 우리 교실로 찾아왔다.


"여기 한주영이라고 있나?"

"네?"

"너희 아버지가 대하 양식장 하시니?"

"......"

"너는 이번수업 하지 말고 나랑 같이 양식장에 가자."

"네?"

"내가 담임선생님한테도 허락받았어. 걱정 마."

"안 갈래요."


위대하다고 생각했던 영어선생님과 나의 첫 대화였다. 지금도 그때의 상황을 떠올리면 김영민 작가의 '공부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본 일부분 내용이 스쳐 지나간다.


삶 속에는 서로 화해되지 않는 에너지가 공존한다. 예를 들면 자신의 잘못을 통감한다면서도 형량을 줄여달라는 범죄자. 가부장적 질서가 싫어서 가출했지만 결국 가부장이 되어 버리고 마는 가장. 관리되지 못한 개인의 모순이 무절제하게 사회에 분비될 때, 그것은 대개 민폐일 뿐이다. 이 구절이 나의 상황과 딱 드러 맞는다.


내 머릿속에 잡힌 영어교사란 원어민과 자유롭게 의사소통이 되며 영어를 누구보다 잘하고 자신의 지식을 학생에게 잘 가르치려 애쓰는 사람이다. 이런 영어 교사의 입에서 '양식장'이 웬 말인가? 새우를 좋아하거나 먹고 싶다면 자신의 업무가 끝나고 찾아갔으면 될 일이다. 그는 손을 잡아끌었고 난 민망함과 실망이 뒤섞인 미소인 듯 울음인 듯 한 표정으로 안 간다고 버텼다. 결국 그는 고집을 꺽지 못했고 나는 수업을 들었다. 얼마나 내가 미웠을까. 만약 못 이긴 척 따라갔다면 '욜로족 두목님'은 어떤 얼굴로 그를 대했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아빠는 속에서 불같이 화가 났어도 딸이 다니는 학교의 '교사'라는 직분 때문에 함부로 하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모든 부모들에게 교사는 이렇게 어려운 존재다. 그렇기에 그 위치를 마땅히 지켜야 한다. 한 인간에 대한 신뢰는 이렇게 말 한마디에 무너진다.




이미지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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