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가 되면 꽤나 어른일 줄 알았다. 불혹의 나이답게 중심을 잡고 흔들리지 않으며 평정심을 유지하고 살겠지 생각했다. 40대에 워킹맘과 동시에 초딩맘이 되면서 내 감정은 롤러코스터를 타기 시작했다. 롤러코스터 위에 있는 난 내가 봐도 참 별로다. 불혹이 혹시 불같이 화를 내서 혹이 생긴다는 뜻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40대가 되면서 몸 구석구석 혹이 달리는 신기한 경험을 하는 중이다.
10년 전 결혼할 당시 그놈의 회사는 사내결혼이 금지되어 있었다. 3교대 근무에 주말이며 연말이며 회사에서 지낼 수밖에 없는 호텔 근무자들은 알게 모르게 사내커플이 꽤 많았다. 그들의 결말은 헤어지냐 아니면 남자든 여자든 사직서를 내고 회사를 떠나느냐의 기로에 서게 된다. 진부하게도 인사과에 들어가 사직서를 작성하는 대부분은 여자였다. 나 또한 그랬다. 모두들 남아있을 사랑을 위해 조용히 사직서를 썼다. 일하는 게 꽤 재미있던 나는 몇 년 더 결혼을 미룰까도 했지만 서른다섯 살이 넘어 결혼한 사촌 언니의 모습이 떠올라 그럴 수 없었다. 순백의 웨딩드레스와 신부가 서로 '넌 내주인이 아니야'라고 밀어내는 그 느낌. 누군가가 웨딩드레스를 입은 날 보고 그런 생각을 할까 두려웠다. 30대 초는 내가정한 결혼시기의 마지노선이었다.
"본인만 알고 계세요. 환자분은 쌍자궁이에요."
"네? 그게 뭔가요?"
"선천적으로 자궁을 2개 가지고 태어나는 경우로 자궁기형에 해당된다고 보시면 돼요."
"......(충격)"
"그래서 오늘 자궁암검사를 두 번 했고요(왼쪽/오른쪽), 다른 사람들 보다 자궁암 걸릴 확률도 두 배니까 조심하세요."
"......(날벼락)"
우리 엄마는 내게 뭐라도 하나 더 주고 싶으셨던 걸까. 손가락이나 발가락이 아닌 걸 감사하게 생각해야 하나. 우선 내 몸속 안에 있으니 다행인 건가. 기형이란 단어가 머릿속에 맴돈다. 본인만 알고 있으라고 한 걸 보니 당당한 일은 아닌 것이다. 치아교정 할 때부터 난 직감했다. 돈이 많이 들어갈 몸뚱이란 걸. 그다음 타자는 '라섹수술'이었는데 예상 못한 줄거리다.
얼굴이 시뻘게져 검사비를 계산했다. 남들보다 두배로 냈다. 옆에서 함께 있던 간호사가 날 신기하게 보는 것 같았다. 핸드폰에 '쌍자궁'이라고 치니 가장 먼저 연관되는 단어가 보인다. 바로 조산. 20대 중반 지금의 남편을 만나기도 전의 일이었다. 나는 그때부터 미래의 내 '아가'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엄마의 자궁이 좁아서 '조산'을 하면 어쩌지? 의사가 하라는 대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속앓이를 하며 울고 또 울었다.
결혼 전 예비 신랑에게 이 이야기를 해야 했다. 남편은 자세히 묻지도 않았다. 잘은 모르지만 아무 상관이 없다고 했다. 나는 결혼도 임신도 하기 전 '조산'을 걱정하는 웃긴 예비신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