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장 100m 달리기에서 운동화가 벗겨졌다
봄의 시작과 함께 시작되는 초등학교의 가장 큰 행사 ‘운동회’.
내 어릴적 운동회는 심리적 압박이 심한 날로, 차라리 어디라도 아파서 결석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동적인 것보다 정적인 것을 좋아하는 내성적 성격인 나는 운동장에서 돗자리깔고 남들 앞에서 입을 크게 벌려 김밥을 먹는 것도, 이성짝과 손잡고 하는 율동도, 숨을 참고 냅다 뛰어 옆 친구를 제껴야 하는 경쟁도 그닥 달갑지 않은 것들이었다. 물론, 땅에 양 손을 짚고 화약 딱총소리를 기다릴 때의 긴장감도 두번다시 느끼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 기분나쁜 긴장감은 지금 생각해도 싫다. 누구랑 뛰게 될지는 몰라도 꼴지를 할 지도 모르고, 그 꼴지하는 모습을 엄마와 선생님들, 다른 부모들 앞에 보여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크게 느껴졌다. 누구는 아이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축제일이라고 했지만, 나에겐 스트레스를 이만저만 받는 날이 아니었다.
그런데, 초등학교를 보낸 학부모의 입장이 되고, 사진을 취미로 하다보니, 학부모가 된 나에겐 축제일이 되었다. 아이들의 표정, 동작 하나하나, 부모들의 안타깝거나 즐거워하는 모습, 삶의 활기가 넘치는 곳이다. 희노애락으로 가득찬 운동회는 삶을 느끼는 사진 소재가 무궁무궁하다. 관찰자 입장이 되니, 그렇게 즐거운 날이 없다.
아무튼, 운동회의 꽃은 당연 계주경기라고 할 수 있다. 청백팀으로 나누어 경기별 점수를 주고 경기를 하게 되는 운동회에서 뒤지고 있는 팀이 역전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 4-6명이 짝을 이루는 경기에서 계주 순서별 앞서거니 뒤서거니하는 게임의 긴장감은 응원소리를 파란 하늘 위로 울려퍼지게 하기에 충분하다. 달리는 선수들은 나의 몫을 다해 팀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하기위해 고개가 뒤로 젖혀질 만큼 전력을 다한다. 태어나서 처음하는 경쟁, 스스로 최선을 다하는 경험을 공개된 무대에서 하는 것이 운동회라고 생각한다.
운동회의 시작을 알리는 교장선생님의 개회선언과 함께 주운동장에서 다른 학년의 발표 종목이 시작되면, 운동장을 둘러싸고 100m달리기가 시작된다. 저학년부터 고학년까지 모두가 참여하는 종목이고, 순위에 드는 성적을 거둘 경우 손목에 보라색 도장을 찍는 영광을 피부로 느끼고, 부상으로 노트, 연필 등 학용품세트를 들고 자랑스럽게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 그 도장이 지워지지 않게 하려고, 먼지 묻은 손을 닦을 땐 물이 튈까 노심초사하기도 한다. 그만큼 달리는 아이들은 긴장과 욕심이 가득하여 뛰게된다. 그 긴장과 욕심때문인지 마음이 몸보다 앞서게 되고 가끔은 운동화가 벗겨지거나, 넘어지는 돌발사태가 일어나게 된다.
그날도, 그런 장면이 내 카메라에 포착이 되었다. 앞서 달리던 아이의 신발이 그만 벗겨지고 만것이다. 1등으로 앞서가던 아이는 그 당황감에 한두순위가 순간 밀렸으나, 그냥 벗겨진 채로 달리기를 하였고, 아쉽게 2등에 머물렀다. 신발이 벗겨지는 순간 얼마나 많은 생각이 오갔을까. 이젠 틀렸구나 좌절하기도 하고 엄마의 응원목소리와 얼굴도 순간 떠 올랐을 것이다. 신발이 벗겨지는 순간, 그만할까 라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신발이 벗겨지는 순간은 어른이 되어서도 가끔 일어난다. 직장에서, 하는 일에서, 가정에서, 가족관계의 문제에서도, 100m 달리기를 하는 선수의 역할은 늘 있기 마련이다. 인생의 삶, 그 역할극에서 신발이 벗겨지는 순간, 우리는 승부를 포기하고 달리는 것을 멈출 수도 있고 무시하고 최선을 다해 결승점까지 승부를 걸어 볼수도 있다. 설령 최선을 다한만큼 결과가 영 맘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늘 그렇듯, 결과는 상관없을 것이다. 긴 시간이 흐른 뒤 되돌아 보면, 그 최선을 다한 과정이 기억에 담기지 결과는 그리 중요한게 아닌게 된다. 어차피, 인생은 장거리 달리기이고, 하루하루 단거리 달리기를 매일 하는 삶이고, 신발이 벗겨지면 다시 신발끈을 동여맬 두 손이 있지 않은가.
그날 아이에게 해주었던 말을 오늘은 내 자신에게 해주고 싶다.
“그래 잘 해왔어…맨발이면 어때? 끝까지 최선을 다한 네가 더 자랑스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