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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e Nov 25. 2022

메주 만들기

기북일상, 두렁마을

귀농 전, 나에게 된장은 그저 마트에서 쉽게 살 수 있는 식료품일 뿐, 된장이 어떻게 만들어 지는지, 어떤 콩으로 만들어 지는지 몰랐다. 제일 좋아하는 요리가 '된장찌개'인데도 말이다. 귀농 후, 집 앞 텃밭에서 콩을 키웠다. 그 콩은 일명 '메주콩'이라고 불리는 '백태'였다. 하지만, 농사에 무지한 나는 그걸 알 턱이 없었다. 그저, 콩에서 이렇게 큰 식물이 자랄 수 있는 것이 신기했고, 가을이 무르익었을 땐, 노란 콩이 고개를 내미는 것이 무척 귀여웠다. 타작을 할 땐, 체로 콩과 먼지를 골라내는 작업이 무척 고되긴 했으나, 도리깨로 콩을 시원하게 내리치는 소리가 좋았다.


엄마는 콩타작을 마치고, 커다란 대야에 콩을 담고 물을 받아 불렸다. 하루 밤새 불린 콩은 커다란 가마솥에서 꼬박 반나절을 삶았다. 콩을 삶는 동안 가마솥 앞에서 따뜻하게 모닥불을 쬐며 고구마를 구워먹었다. 덕분에 콩을 기다리는 시간이 그리 지루하지 않았다. 가마솥에서 하얀 김이 올라오자, 고소한 콩냄새가 솔솔 올라왔다. 저절로 침이 고이는 냄새였다. 나는 그새를 못 참고 콩을 주걱에 조금 덜어 맛을 보았다. 정말 상상하는 맛 그대로였다. 말랑말랑한 콩에서 어찌 이런 고소한 풍미가 날 수 있는지! 이제껏 먹었던 콩 중에서 최고였다. 

푹 삶은 콩은 가마솥에서 꺼내, 포대자루 안의 비닐에 옮겨 담았다. 그리고 비닐과 포대자루를 단단히 잠그고, 그 위에 올라가 잘근잘근 콩을 밟았다. 하지만, 엄마는 가마솥을 씻어야 한다며, 나에게 콩 밟기 미션을 넘겼다. 나는 갓 가마솥에서 꺼내온 콩들이 무척 뜨거울 것 같아 조심조심 가장자리만 밟았다. 그런데, 포대자루에 덮여 있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그리 뜨겁지 않았다. 꼭 어릴 적 할머니 댁의 따끈한 구들장을 밟는 느낌이었다. 콩을 밟다보니, 재미가 생겨서 신나게 밟았다. 따끈한 콩 위를 걸으니, 발도 마음도 따듯해졌다.


하지만 나의 욕심이 과했는지, 그만 포대자루 안의 비닐이 터져버렸다. 그 모습을 본 엄마는 내게 또 잔소리 폭탄을 퍼부었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터져버린 비닐을 꺼내 뒷정리를 했다. 그래도 열심히 밟은 덕분인지 콩은 잘 으깨져 있었다. 엄마는 네모난 통에 비닐을 감싸고 으깨진 콩을 넣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비닐을 감싼 뒤, 콩이 모양을 잘 잡을 수 있도록 꾹꾹 눌러주었다. 한참을 누르다 보니, 얼추 다 된 것 같았다. 비닐을 조심스럽게 벗기자, 그 안에는 아직 따끈한 황토빛의 메주가 있었다. 우리집 텃밭에 있던 콩이 이렇게 메주가 된다니! 

엄마는 만들어진 메주를 볏짚 위에 모으며 말했다. "이 메주가 나중에는 니가 좋아하는 된장이 될 거야." 나는 무척 신기했다. 메주가 된장의 재료인 것은 알고 있었으나, 메주가 어떻게 만들어 지는지, 어떤 콩으로 만들어 지는지 전혀 몰랐다. 나는 이 순간을 기록하고 싶은 마음에 갓 만든 메주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귀농 후, 나는 매일이 배움의 연속이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도, 이곳에서는 매번 새롭게 다가온다. 시골은 오래된 삶들이 가득해 저마다의 노하우가 있다. 메주만 해도 우리집은 그냥 네모난 통에 했지만, 옆집 할머니네는 메주틀이 있고, 또 다른 할머니네는 메주를 훨씬 쉽게 빼낼 수 있도록 메주틀을 개조하신 집도 있다. 이처럼 하나의 식재료로 집집마다 다양한 색깔과 역사가 있다. 오늘도 나는 시골이 재미없고 지루한 곳이라는 편견을 깨며, 시골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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