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북일상, 두렁마을
단오와 보름이는 우리집 반려견들의 이름이다. 단오는 5월에 입양해서 단오라고 지었고, 보름이는 정월 대보름에 입양해서 보름이라고 지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줄곧 강아지를 키우고 싶었다. 친구집에 가면 귀여운 얼굴로 반겨주는 강아지들이 너무나 귀여웠다. 하지만, 부모님은 강력하게 반대하셨다. 내가 너무 어려서 책임감도 없고, 무엇보다 아파트 안에서 키우면 강아지도, 사람도 무척 힘들기 때문이었다.
귀농한 후, 마당이 생기자 나는 다시금 부모님께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했다. 나는 ‘반려견을 책임질 수 있고, 시골에서 친구가 필요하다.’며 강력하게 어필했다. 부모님은 며칠을 고민하시다가 결국 허락해 주셨다. 마침 작은 이모부께서 ‘개 키우지 않겠냐.’며 연락을 주셨다. 이모부는 ‘다들 못 키우겠다며 서로 떠넘기듯이 해서 주인이 3번 바뀐 개다. 그런데, 세번째 주인도 시골집을 팔고 도시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개까지 데리고 갈 수가 없다.’고 하셨다. 그래서 우리 가족이 데려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대찬성 이었다. 그런데, 부모님은 선뜻 승낙을 못 하셨다. 왜냐하면, 벌써 개가 5~6개월 정도 커서 중개정도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를 조르고 졸라서 개를 보러 갔다. 기계면에 살고 있던 개는 작은 마당에서 짧은 줄에 묶여 줄이 잔뜩 꼬인 채로 있었다. 개는 우리를 보고 짖지도 않고 꼬리를 내리고 겁먹은 채로 얌전히 지켜보았다. 윤기 없고 꼬질꼬질한 털과 어린 나이와 어울리지 않는 슬픔이 가득한 눈동자. 나는 개가 너무 불쌍해서 당장이라도 우리집으로 데려가고 싶었다. 부모님도 나와 같은 마음이셨는지, 개를 보자마자 입양을 결정하셨다.
결정하자마자 개 주인은 곧 바로 개를 트럭에 실어 우리 집으로 데려오셨다. 차 타고 오는 동안 멀미를 했는지, 내가 준 물 한 그릇을 허겁지겁 마셨다. 그리곤, 우리 집 마당을 이곳저곳 탐색하면서 안정을 되찾았다. 개와 개 주인의 이별은 짧았다. 개 주인은 개를 놔두고, ‘우리 띨띨이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남기곤 떠났다. 개는 주인이 간 길을 한참 바라보았다. 자신을 또 버리고 간다고 생각했는지, 그 작은 눈동자에는 슬픔이 가득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안쓰럽던지. 나는 어서 녀석에게 새 이름을 지어 주기로 했다. ‘띨띨이’로 살았던 지난 날은 잊고, 화창한 5 월의 봄날에 왔으니, 항상 따듯하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에 “단오”라는 예쁜 새 이름을 지어주었다.
단오는 며칠동안 의기소침하며 우리의 눈치를 봤다. 만지는 것도 무서워서 벌벌 떨던 녀석. 우리는 단오가 마음을 충분히 열 수 있도록 충분히 시간을 두었다. 사료도 진돗개 전용 사료로 주고, 맛있는 간식도 주고, 장난감도 선물해주며 단오와 우리가족은 점차 친해졌다. 며칠 뒤, 나는 단오에게 간식을 주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단오가 눕더니, 배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나는 정말 감격해서 눈물이 나왔다. 드디어 단오는 마음을 열어주며 우리를 가족으로 받아들여준 것 같았다. 그 후, 점차 단오와 산책도 하고, 터그 놀이도 하고, 스킨십도 많이 해주며 예쁜 추억들을 차곡차곡 쌓았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에 한 유기견이 돌아다녔다. 단오는 그 강아지와 자주 어울리며 함께 놀았다. 단오는 줄곧 혼자 있다가 자기 동족 친구를 사귀니, 무척 좋아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갑자기 그 개가 안 보였다. 단오는 친구가 그리워 몇 날 며칠동안 하울링을 하며 친구를 애타게 찾았다. 하지만, 친구는 돌아오지 않았다. 친구가 사라진 단오는 식음을 전폐하며 슬퍼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무척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단오에게 가족을 만들어주면 어떻겠냐고 부모님께 여쭈었다. 부모님도 슬퍼하는 단오가 안쓰러웠는지, 단 번에 허락해 주셨다.
이번에도 작은 이모부께 부탁을 드렸다. 이모부는 곧바로 수소문을 하셔서 강아지를 찾았다. 그리고 며칠 뒤, 안강에서 강아지를 데려왔다고 연락을 주셨다. 나와 엄마, 동생은 바로 강아지를 보러 갔다. 이번에는 태어난 지 2개월 된 작은 새끼 강아지였다. 강아지는 추운지 덜덜 떨며 온기를 찾았다. 나는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너무나 귀여운 모습에 저절로 혀 짧은 소리가 나왔다. 그렇게 그 강아지는 단오의 가족이 되었다. 정월 대보름날에 왔으니, ‘보름달처럼 환하고 둥글게 살아라’는 뜻으로 “보름”이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다.
처음에 보름이는 단오의 큰 덩치를 보고 무서워 했다. 하지만, 단오가 아빠같이 보름이를 보살펴주자 보름이는 점차 단오에게 마음의 문을 열었다. 며칠 뒤, 단오와 보름이는 같이 집에 들어가 서로 등을 맞대며 잤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무척 흐뭇했다.
단오는 크면 클수록 듬직하고 점잖아졌고, 보름이는 장난을 좋아하는 개구쟁이가 되었다. 보름이는 틈만 나면 단오에게 함께 놀자고 장난을 친다. 그럴 때 마다 단오는 보름이에게 맞춰주며 사이좋게 놀아주며 외로운 마음을 따듯하게 위로받는 것 같다. 그리고 항상 밥 먹을 때도 항상 보름이 먼저 챙기고, 남은 것을 자기가 먹을 정도로 단오는 지극정성으로 보름이를 챙긴다.
단오는 고기파지만, 보름이는 고기도 좋아하지만 야채도 좋아한다. 종종 배가 고프면, 마당에 있는 아로니아 나무에서 열매를 따먹기도 하고, 홍시를 무척 좋아해서 감나무에서 홍시가 떨어지면, 제일 먼저 달려가 홍시를 먹는다. 가끔 단오에게도 하나씩 가져다 주지만, 단오는 거들떠도 안 본다. 나는 그 모습이 무척 웃기고 귀여웠다. 부모님은 그 모습을 보고, "보름이는 눈에 좋은 아로니아도 먹고, 홍시도 먹고, 오래 살겠다!"며 칭찬(?)을 하셨다.
가끔, 외출했다가 걸어서 집에 올 때면 항상 보름이가 마중나온다. 조그마한 꼬리를 프로펠러처럼 붕붕 돌리면서 '언니!! 언니!! 왔어?? 너무너무 보고싶었어!!'라며 마치 치타처럼 달려온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그래서 종종 일부러 외출 후, 걸어서 올 때도 있다.
단오와 보름, 그 둘은 나의 시골생활의 단짝친구이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 제일 먼저 반겨주는 단오와 보름이. 두 눈을 반짝이며 “누나! 잘 잤어? 얼른 놀자!”고 말하는 것 같다. 단오와 보름이가 없었다면, 시골생활이 무척 심심했을지도 모른다.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두 존재 덕분에 나는 오늘도 사랑받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