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교사의 방학
초등교사에게 방학이란 수영할 때 음파에 ‘파’와 같다. 한 학기 내내 음하고 참다가 파하고 숨을 몰아쉬는 길고도 짧은 방학이다.
이번 겨울방학 가족 여행지는 코타키나발루로 정했다. 바쁜 패키지여행 대신 느긋한 8일 자유여행으로 잡았다. 숨을 제대로 몰아쉴 수 있겠군.
코타키나발루 여행 6일째 아침. 다른 날보다 유난히 해가 내리쬐는 아침이었다. 좋은 숙소로 옮기고 먹는 첫 조식이어서 마음이 들떴다. 5시 반부터 눈이 저절로 떠졌다. 옆방에서 들려오는 무슬림들의 아침 기도 소리에 다시 오지 않는 잠을 청하려 몇 번이고 눈을 감았다 떴다. 드디어 여섯 시 반. 나보다 더 들뜬 동생들이 미리 내려가서 자리를 잡아놓고 있었다.
조식 메뉴는 화려하진 않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이 군데군데 자리하고 있어 만족스러웠다. 채소가 가득 들어간 덜 익은 오믈렛부터 통통한 올리브 샐러드, 그리고 달지 않은 요구르트까지. 든든하게 세 접시를 비운 후에야 볼록 나온 배를 일으켜 엄마와 함께 산책을 나왔다.
이곳의 우기인 2월은 종일 해가 쨍쨍한 날이 많지 않다. 오늘도 산책을 시작할 땐 해 없이 탁한 잿빛 하늘이더니 점차 날이 개었다.
아직 남은 구름 사이사이 인사하는 일광을 환영하며 필름카메라로 눈앞에 펼쳐진 이 순간들을 소중히 담았다. 느긋하게 누워 볕을 쬐는 고양이, 카메라를 들면 포즈를 취하는 살가운 직원, 항구에서 여유롭게 일광욕을 만끽하는 보트. 초록빛 항구의 바닷물은 티 없이 맑아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
멸치와 산호가 투명하게 보이는 에메랄드색 바다에 돌을 던져 물고기를 모으는 엄마를 보니 웃음이 새어 나온다. 뜨거운 햇볕으로부터 나를 덮어주었던 구름이 모두 걷혔다. 따가운 햇살에 다리가 벌겋게 익어갈 때쯤이 되어서야 방으로 들어온 이 산책이 이번 방학의 숨구멍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