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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초 Feb 29. 2024

나는 3년 차 교사입니다

교장선생님의 퇴임식

올해는 교장선생님이 정년퇴임 하시는 해다. 교직에서 정년을 보내기가 여간 쉬운 일이 아닌데. 그 고단함보다도 더 선명한 고고함을 지니셨다. 교장선생님의 남들보다 두 뼘은 큰 키, 올곧은 어깨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부러울 정도다. 또 언제 어디서 마주치든지 환한 미소를 잃지 않으신다. 눈가엔 그간 세월에 지었던 웃음을 증명하려고 선한 눈주름이 선명하게 파이신 모양이다. 몇 마디 나눌 때는 한없이 유연해 보여도, 오랜 대화를 나눌 때면 험난한 교직생활을 견뎌낸 단단함이 느껴진다.


  난 교사가 되기 전부터, 흔히들 교직에서 관리자라 부르는 교장, 교감선생님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내 유튜브 채널이 선배교사나 관리자 입장에서 거슬릴 것이라 생각했다. 학교에서 최대한 눈에 띄지 않는 게 좋다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학교를 옮길 때마다 해야 하는 겸직허가라는 높은 관문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생길 좋지 않은 시선을 각오했다. 유튜브 활동을 한다는 사실을 고백한 날, 교무실 앞에서 호흡을 몇 번이고 골랐다. 떨리는 손을 잘 숨겼길 바라며 겸직허가 신청서를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귀찮은 내색 없이 흔쾌히 받아주시던 교감선생님 덕분에 한시름 마음을 놓았다. 그 소식을 듣고는 마주칠 때마다 격려해 주시는 교장선생님 덕분에 한아름 마음을 얻었다. 올리는 콘텐츠마다 어떻게 보일까 노심초사하던 마음은 교장선생님과 스치는 그 순간마다 한 짐씩 내려놓을 수 있었다. “이번 영상 정말 재밌더라.”,  “아이들이랑 이런 것도 찍어봐.”, “내가 배울 점이 많다.”, “선생님이 나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야.” 지나가듯 해주신 온기 있는 말들로 내 마음의 부담이 서서히 녹고 있었다. 사실 관리자 입장에선 교사가 가만히 있는 게 최선일 것이다. 외부활동을 할 때마다 생기는 성가신 서류, 밖에서 오는 따가운 시선, 그로 인해 교육청에서 걸려오는 민원 전화. 일거리만 쌓아드리는 느낌이라 항상 죄송하다. 교감선생님은 여러 일들로 찾아뵐 때마다 따뜻하게 맞아주신다. 교장선생님은 무슨 일이든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신다. 아마 내가 죄송한 마음을 갖지 않도록 배려해 주시는 듯하다.


주변 교사 친구들을 만나도 내가 만난 어른들은 참어른이시라는 걸 느낀다. 교육대학교를 졸업한 우리는 모두 교사가 되었다. 학교에서 비슷한 일상을 보낸다. 그런 우리가 나눌 수 있는 가장 좋은 공감대는 학교다. 시시콜콜한 나름의 이야기들을 듣다 보면 웃음과 울음이 끊이지 않는다. 한 친구는 관리자의 부탁으로 2년 차에 6학년 부장을 맡았다. 그 학년은 심지어 학급수가 여덟 학급이다. 대개 학급 수가 많을수록 부장의 부담도 그와 비례한다. 보통 교사가 부장업무를 맡기 시작하는 시기는 1정, 1급 정교사 자격증을 딴 이후부터다. 이 자격증은 교직 5년 차 이후부터 받을 수 있다. 부장이 하는 일은 담임 업무와 더불어 교육과정이나 업무 계획을 짠다. 또 부장 회의에 참석해 안건을 제시하고 학년에 보고하는 중간 다리 같은 역할도 한다. 근데 이 친구는 그냥 부장이 아니고 6학년 부장이다. 6 부장은 졸업과 중학교 입학이라는 큰 짐을 추가로 지고 있다. 6학년이라는 이유만으로 부담을 두배로 진다. 말이 졸업 업무지 이 한 단어 안에는 많은 땀이 들어간다. 예를 들어 졸업식은 졸업식 예산 사용 계획과 당일 기획을 짜는 일부터, 졸업식에 사용할 졸업영상, 프레젠테이션, 진행자 대본, 풍선, 학사모, 졸업장 등의 모든 자료의 결정과 제작, 주문을 책임진다. 그런 과중한 업무를 저연차에게 주었다. 이런 부당한 일은 업무 분장에서 있는 일만은 아니다. 교사의 당연한 권리인 초과근무도 신청하지 말라고 압박을 주는 관리자도 있었다. 학기 초나 학기 말에 교사들은 수업이 끝나고 쉬지 않고 일해도 4시 반까지 해야 할 일이 끝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경우에 회사의 경우에 야근이라고 하는 초과근무를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일부 관리자들은 이 초과근무 사용을 지양하라고 쪽지를 보낸다든지, 결재를 올리면 반려한다든지 사용을 거부한다. 직접 주는 돈도 아니고 나라에서 나오는 돈인데 말이다. 우리로썬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내가 인복이 많은 사람임을 다시금 느낀다. ‘야근할 때 꼭 초과근무를 다세요.' ‘특근매식비라는 저녁비도 받아서 밥을 챙겨 드세요.’ 바쁜 학기말에 이렇게 사려 깊은 쪽지를 보내주시는 어른들이 있기 때문이다.


 따뜻한 오후에 교장선생님의 퇴임식이 시작됐다. 친목회에서 준비한 여러 이벤트가 끝나고 퇴임사만이 남아있었다. 교장선생님께서 눈물을 보이실지가 그 시간 나의 소소한 관심사였다. 평소에 말씀을 워낙 좋아하시는 분이라 긴 퇴임사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니었다. 먼저 잔잔하지만 굵게 당신이 걸어왔던 길을 털어놓으셨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한마디를 하고 싶다고 하셨다. “그동안 애썼다.” 담담하게 말할 수 있었던 그 두 어절로 그간 세월이 얼마나 담담치 못 했을지 느껴졌다. 이젠 애쓰셨던 교직을 떠나 마음 편히 한 풀 쉬어가시길. 그리고 그보다 더 건강하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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