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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초 Mar 03. 2024

나는 독서 지도를 안 하는 교사다


더위가 난폭해지는 여름 쯤이면 학기 초 아침 독서시간의 긴장감은 사라지고 없다. 어느 순간 고개를 들어보니 아이들은 책을 읽지 않았다. 학원 숙제를 꺼내놓거나 친구와 떠들거나, 핸디 선풍기를 얼굴 앞에 대고 멍하니 칠판을 바라보거나, 그나마 책을 들고 있는 아이들도 책 뒤에 숨어 수다 삼매경이다. “얘들아 책 펴야지" 단호한 목소리로 꾸중을 놓듯 말해보아도 그닥 효과가 없다.


나는 교육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면 내 어릴 적을 떠올려본다. 내가 숙제를 왜 안 해갔었는지, 선생님 말을 왜 안 들었는지. 초등학생의 눈으로 같은 상황을 바라본다. 어렴풋한 책에 관한 기억을 되짚어 내려간다. 독서 골든벨에 참가했을 때도 그때만 반짝, 독후감 대회에 나갔을 때도 그때만 잠깐 읽고 말았다. 내 손으로 고르지 않은 책은 읽기 싫은 청개구리 심보를 가졌었나 보다. 아니면 교육론에서 그토록 말하는 ‘외재적 동기'가 잘 들어먹지 않는 아이였나 보다.


내가 어렸을 적 책을 손에 쥐게 된것은 엄마 덕분이다.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텔레비전을 버렸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보니 거실이 휑했다.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저녁 먹고 보던 투니버스와, 일요일 저녁 개그콘서트에게 아쉬운 안녕을 고했다. 그렇게 휑한 거실에 책꽂이가 들어왔다. 그 네모난 칸들을 더 작고 네모난 것들로 채우기 시작했다. 내 상반신만 해서 꺼낼 때 낑낑거려야 했던 백과사전부터, 위인전, 삼국유사 삼국사기, 닳도록 읽어 손때가 껴있던 세계 고전 명작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우리 집엔 책이 천 권 넘게 생겼다. 온 벽은 나무와 종이로 둘러싸여 있었다. 우리 집은 당시 넉넉한 편은 아니었지만 엄마는 도서를 구매하는데 돈을 아끼지 않았다. 내가 지적 호기심을 갖는 분야가 생기면 관련 있는 전집을 새 것으로 떡하니 사오기도 했다. 나에겐 떡하니 생겼지만 엄마가 떡하고 준 건 아니었다. 그 때 돈으로 전집 한 질에 몇 십 만원이었으니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그렇게 학교에서 돌아오면 소파에 앉아 리모컨부터 찾던 일상이 사라졌다.


집에 돌아오면 가방을 풀고 책장에 꽂혀있는 서적들 중 흥미로워 보이는 몇 권 골랐다. 그 책들을 책상에 가져가 그 중에서도 손이 가는 한 권을 펼쳤다. 철저히 흥미를 위주로 한 독서였다. 책장을 넘기는 중간중간 기억하고 싶은 내용이 생기면 3-6 무제 공책에 네모 반듯 눌러 적었다.

 여름방학이면 에어컨이 있는 거실에서 모기장을 쳐놓고 잤다. 그 속에 책을 한아름 들고 들어가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원없이 책을 읽었다. 읽을 때마다 눈물이 절로 흐르던 ‘안네의 일기'도 종이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었다. 키티같은 친구를 만들겠다고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게 이 쯤이었다. 겨울방학 때는 유난히 위인전이 많던 골방에 틀어박히기를 자처했다. ‘슈바이처'를 보며 제 3세계로 가서 어려운 이들을 돕고싶다는 꿈을 꾼 것도 이때 부터였나보다.  뜨끈한 보일러로 방바닥을 지글지글 달궜다. 데워진 이불 속에서 엄마랑 책만 읽었다. 잠이 솔솔 오면 그대로 자기도 하고, 잠에서 깨면 그 모양 그대로 다시 책을 읽고. 자는 엄마 얼굴에 동생과 코딱지를 묻히다 된통 혼이 나고. 우리에겐 그게 놀이이자 취미였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알지 못했다. 화장실 가기도 아까운 시간이라 오줌을 참느라 혼난 적도 있다. 엄마는 이렇게 쉬는 날에 같이 앉아 책을 읽었다. 아빠는 일이 끝나면 우리와 거실에서 백과사전으로 퀴즈 놀이를 했다 나는 그렇게 손에 책을 쥐었다.


사실 교사에게 아침 독서시간이란 수업 전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마지막 단비와도 같은 시간이다. 많은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독서를 시켜놓고 해야할 업무를 처리한다. 나도 그랬다. 그럴 수 밖에 없을 만큼 분주한 아침이다. 학교 메신저에는 쪽지 잘날이 없다. 컴퓨터를 켜면 자동 로그인 되는 그 파란창을 무시할 수 없다. 주황색 숫자를 줄여가며 쌓인 쪽지에 쓰인 퀘스트들을 수행한다. 이를 테면 내pc지키미, 보안 검사같이 간단한 것들부터 각종 명단 수합, 계획서 혹은 보고서 제출, 출결 확인, 학교 일정 체크, 교과 전담 일정 확인, 못다한 수업준비까지 시간이 좀 걸리는 것들 까지. 아예 손을 댈 엄두도 나지 않는 것들은 조용히 스크롤을 내린다.


그래도 아이들이 등교하면 덜커덩대는 흰색 독서대를 가슴 앞에 끌어다 놓는다. 교사 노조에서 보내준 스승의 날 선물이다. 나사가 헐거워져 덜컹거리지만 육각 렌치를 잃어버려 조이지 못한 채 쓰고 있다. 이래 봬도 두꺼운 벽돌책도 너끈히 버텨주는 덕분에 학교에서 사용하는 전투용 독서대로 자리매김했다. 20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지만 내가 종이를 보고 있을 때와 화면을 보고 있을 때의 아이들 태도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난다. 바쁜 일이 있더라도 독서대에 책을 펴놓고 몇 번 봐주는 척이라도 한다. 쉬는 시간 책상으로 모여드는 아이들은 “선생님 사피엔스 다 읽으셨어요?” “무슨 내용이에요?” 라며 내가 읽는 책에 관심을 가지기도 한다. 또 이 중 교사를 동경하는 아이들은 자기도 앞으로 책을 좋아하겠다고 확언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그렇게 손에 책을 쥐었다.

나는 더 이상 책 피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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