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초 Feb 16. 2024

나는 3년 차 교사입니다

초등교사의 부업

코가 시리게 추운 날, 아직 해도 다 뜨지 않은 푸르스름한 공기의 아침. 무거운 책가방을 맨 수험생들이 교문을 들어서고 있다. 한 해의 결실을 맺고자 하는 굳은 결심이 시린 눈을 하고 있다.


시험 감독관은 수험생들보다 20분 일찍, 오전 7:00까지 감독관 등록을 마쳐야 한다. 감독관 출장을 가는 날이면 5시 반에 일어나서 옷을 두껍게 껴입는다. 얇은 내복 위에 셔츠와 후드티, 패딩까지 겹쳐 입는다. 그래야 10시간 동안 해가 들지 않는 차디 찬 복도에서도 견딜 수 있다.

내가 주로 맡는 일은 복도 감독관이다. 말 그대로 복도에 상주하면서 평가실 입장하기 전 안내를 해주는 역할이다. 나는 그들이 가장 떨릴 때를 마주 한다. 외투를 벗고 얇은 정장 재킷만 걸친 채 손을 호호 불거나 심호흡을 한다. 그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각자의 떨림을 마주한다.


복도에서는 어렴풋이 새어 나오는 답변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 작은 틈새로 누출되는 소리는 억센 의지와 엷은 떨림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가만히 그 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3년 전 이곳에서 떨고 있던 어린 내가 떠오른다. 바짝 마른 입술을 뜯던 초조한 엄지와 검지. 끊임없이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손바닥. 흉곽이 크게 들려 옷의 긴장감이 느껴지던 깊은숨. 입 안에 자꾸 괴는 침을 꿀꺽 삼키던 목젖.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는 구상지를 꾸역꾸역 넣는 바쁜 눈. 3년 전의 감각에 집중하다 보면 내 본분을 망각한다. 시험이 3분 남았음을 알리는 종소리에 도로 내 본분을 되찾는다. 하나 둘 답변을 마친 수험생들이 복도로 터져 나온다. 많은 말을 나눌 순 없지만 나는 눈빛으로 많은 말들을 전했다. 수고했다고, 고생했다고, 최선을 다했다고.


마지막 수험생까지 평가가 끝나면 다시 공기는 푸르스름해지고 있다. 무거운 책가방이 아닌 가벼운 핸드백을 맨 나는 교문 밖을 나선다. 두 해 전에 맺은 결실에 감사함이 이는 마음을 하고 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묘한 울림이 인다. ‘나에게 평범한 일상이 이들에겐 한없이 소중한 꿈이구나. 그리고 나에게도 한 없이 소중한 꿈이었구나.‘ 그들의 떨림이 나의 울림이 되는 날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