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스타그램

'나'를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

by 장운

어느때와 같이 사업계획서를 쓰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2022년 5월 광주광역시 문화기획자 전문 양성교육 호랭이스쿨 2기 모집공고를 보았고 고민도 하지 않고 신청을 하게 되었다.


문화기획자가 되기 위한 방법부터 실무까지 전문적으로 알려주는 교육이다. 그리고 10월 드디어 개인 프로젝트를 하는 시기가 왔다. 배웠던것을 활용해서 기획의 시작부터 기획서 작성, 실행까지 스스로 해내는 것이다.


두근거리면서 하고싶은것을 다해봐야겠다는 생각에 들떠있었다. 지원금은 100만원 많으면 많고 적으면 적다할 수 있는 금액이지만 내가 하고싶은것을 하기에는 충분한 금액이었다.


최근 사회적경제 아카데미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만난 형들과 청소년 우울증에 대해 고민을 했었고 그에 따른 해결방안으로 사업아이템을 구상하고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고민했던 결과물로 우리는 우수상을 타기도 했었다.


그것의 연장선인지 몰라도 청소년 더 나아가 청년 우울증 문제는 계속 고민하게 만드는 문제들 중 하나였고 나역시도 우울증 비슷한 시기를 보냈기에 너무나도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그래서 멘토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청년 우울증이라는 문제를 알리는 개인프로젝트를 하겠다고 당당히 말했다.


그때당시 멘토님은 너무 어려운 주제를 선정해서 잘 풀어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셨다고 한다. 하지만 내 고집은 꺽이지 않았고 기획서를 하나하나 써가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심각했다. 청년 우울증 문제는 절대 가볍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청년층을 가리키는 MZ세대 사이에서 요즘 '마음챙김'이라는 건강관리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고 하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2030세대 우울증 환자는 31만 7천여 명으로 5년 사이 두 배나 늘었다고 한다. 우울증으로 이어지는 스트레스의 원인도 다양했는데 학업부터 취업 그리고 인간관계까지 코로나19사태로 집에만 있거나 비대면 수업으로 인해 마음에 관한 문제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글을 쓰고있는 스스로도 우울증 비슷한 경험을 했다. 코로나 시기가 길어질수록 집에만 있고 밖을 나가지 않으니 스스로에 대한 사색에 빠지고 "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나는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좋아할까?" 라는 답없는 질문만 계속 던지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때는 얼마안된 2020년 5월 어버이날은 다가오고 수중에 돈은 한푼도 없던 시절 그리고 알바나 일자리는 구해지지 않는 절망적인 시기였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택배 상하차 공고 연락했고 바로 답장이 왔다. 오늘 밤 10시 전남대학교사거리에서 모여 출발한다고 시간맞춰 나오라는 연락이었다. 운동복을 입고 운동다녀온다고 말을 하고 집을 나섰다. 날씨는 춥지않았지만 왠지모르게 마음은 계속 떨렸다.


약속된 시간에 맞춰 나가고 대기해있던 봉고차에 탑승하니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얼핏 주변에서 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코로나시기로 일자리가 없어진 애아빠도 있었다. 그렇게 목적지에 도착하고 안전교육을 받고 안전모 안전화를 신고 목장갑을 받고 일터로 들어갔다. 시작한다는 소리와 함께 끊임없이 밀려오는 택배차량과 박스들 그것을 계속 날랐다. 한시간 두시간 처음에는 할만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너무 힘들어져갔다. 그렇게 시간은 새벽 4시가되고 처음으로 휴식시간을 가진다. 자판기 커피 한잔을 마시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만 힘든게 아니라 모두가 다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렇게 찰나의 휴식시간이 끝이나고 다시 일터로 돌아갔다. 집에서 뒹굴거릴때는 잘가던 시간이 어찌나 안가던지 계속 시계를 처다보지만 5분, 10분 충격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죽은듯이 택배를 나르면서 이제 얼마 안남았다는 어떤 아져씨의 우령찬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마지막까지 힘내보자! 그렇게 첫 택배일이 끝이났다. 그렇게 받은 10만원 봉투에 꾸깃꾸깃 집으로 돌아갔다. 운동다녀왔다고 말을하고 씻고 잠을잤다. 오랜만에 푹잔것같다. 그렇게 어버이날이 되고 나는 말없이 돈봉투를 건내며 어버이날 선물이라고 말했다. 저번에 운동간다고 말했던날 택배일 하고 왔다고 선물은 내 힘으로 사고싶어서 일하고 왔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툭툭 장난을 치며 오늘도 택배다녀오라고 말하지만 나중에 대견하다고 칭찬해주셨고 어머니는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봉투에 아들이 처음으로 벌어다 준 돈이라고 적고 안쓰고 계신다.


그렇게 힘을 얻었던 것인지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집앞에 카페를 나가기도 하고 새벽에 버스를 타보기도 하고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고 듣게되었다. 그리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사서읽은것이 아니라 카페에 배치되어있는 책을 한권 한권 읽어갔다. 그리고 다이어리를 적기 시작했다. 내일할일을 기록하는 다이어리가 아닌 오늘 한일을 적어가는 일기같은 다이어리였다. 그렇게 한칸 한칸 채워가니 뿌듯하고 뭐든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고 알바를 구했다. 몇달을 안구해지던 알바였고 몇번을 면접을 봐도 안구해졌던 알바였는데 한달동안 고민하던 mc 구인 알바에 연락을 하고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INFP 라는 내향형의 사람이었고 짜장면집에서 단무지 더달라는 말도 못할정도로 소심했던 사람이었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mc에 도전했고 2년이 지난 지금까지 하고있는걸 보면 나름 잘 맞는것같다. 그 이후로도 하고싶은것이 있으면 무조건 해야만 했었고 도전했다. 그래서 지금은 기획서부터 사업계획서 그리고 사회보는 것과 음향장비 다루는 것 축제기획부터 전시기획까지 기회가 되면 했다. 그리고 요즘에는 그림그리기와 사진찍는 것에 마음이 가기 시작해서 돈을 모아 학원을 가고 카메라를 사고 하루하루 보내고 있다.


이렇게 몇년안되지만 정말 많은 일들을 격었고 힘든 나날을 보낸 이야기를 적어보았다. 그리고 한명한명 만나 이야기를 해보면 나와 같은 경험을 해본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과 내가 극복하고 이겨냈던 방법을 나누고 싶고 그리고 이겨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싶었던 것이 첫번째 기획이었다.


그렇게 고민을 하던 중 광주 동구에 위치한 청년센터에서 '청년다시 봄 - 안무서운 회사' 라는 강연 프로그램을 하는 것을 알게되었고 그것을 통해 은둔형 외톨이라는 개념을 알게되었다.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그곳에서 안무서운 회사 대표 유승규씨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한국은 일본을 따라가는 추세이며 일본에서 가장 문제가 되고있는 히키코모리들의 사태를 우리도 따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많은 히키코모리 즉 은둔형 외톨이가 존재하고 있으며 이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은둔형 외톨이들이 다시 사회로 나갈 수 있게 도와주는 쉐어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에 대한 정부의 정책이나 움직임은 아직 미비하다고 이야기를 하였는데 확실히 청년 문제에 대해서는 터지고 나서 움직이는 것이 보이긴 한다. 이것은 나의 생각이고 아닐수도 있지만 '숨진청년 이모씨 원룸엔 이력서 150장만 수북'과 같은 기사를 보면 청년 우울증으로 인한 청년 고독사와 같은 문제와 같이 청년 고독사 문제는 현재까지도 있지만 이렇다할 방도를 제시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나는 이 청년 우울증 더 나아가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문제를 알리는 프로젝트를 기획하기 시작했다. 이야기가 담긴 사진을 전시하고 토크와 공연으로 이루어진 당일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이름은 글의 제목과 같이 "나를 찾는 사람들 - 아웃스타그램"으로 지었다. 인스타그램은 우리들이 많이 사용하는 소셜네트워킹 어플리케이션으로 사진과 글을 올리고 서로 소통을 한다. 지금은 "나 이렇게 잘 살아"의 자랑하는 공간으로 또는 보정과 편집으로 내가아닌 또 하나의 나로 소통을 하는 공간이 되어지고 있다. 그로인해 몇몇은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사회적 박탈감을 느낀다고 설문에 응답한 경우가 있을 정도로 온라인에 가려 내가 아닌 삶 더나아가 좋은 모습만 보여줘야 하는 공간으로 변질되어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아웃스타그램 즉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에서 사진과 함께 남들에게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전하면서 진짜 나를 찾아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사진을 받기 시작했다. 나를 표현하는 사진과 그 사진에 담긴 이야기를 하나하나 받아보니 마음이 뭉클하고 기획에 대한 무게감이 깊어져갔다.



자몽 1.jpeg


이 사진은 프로젝트에 참여한 한분의 사진이다. 사진만 보면 밤하늘의 갬성적인 사진이 되고 누군가는 #여행 #밤하늘 #운치있는하루 라며 자랑할만한 사진이다. 하지만 그 안에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진이 주는 느낌은 완전히 달라진다.


"정말 오랜만에 나갔던 밖이었습니다. 밖에 나가고싶었지만 나가기가 너무 어려워서 새벽에 용기를 내서 나갔습니다. 새벽 바람을 맞으며 숨을 쉬는데 눈물이 날만큼 기분이 좋았어요. 그리고 밖에 나가서 나도 다른사람처럼 활동하고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다음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더라구요. 그때를 생각하면 제가 너무 안쓰럽습니다."


이것이 아웃스타그램의 취지와 기획의도이다. 이런 사진이 20장이 넘고 각 사진마다 이야기가 담겨있다.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워서 걷지 못하고 자전거로 빠르게 지나가야만했던 거리, 마포대교위에 적힌 글 "나는 또 다른 죽음을 앞섰다", 은둔을 시작하며 충동적으로 자른 머리카락, 더러워진 방 등 생각지도 못했던 문장들과 사진들을 통해 그들의 심정을 한번더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이겨내가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은둔형 외톨이는 계속해서 늘어나는 중이지만 그들도 계속 노력을 한다. 가장 많이 보는 어플도 알바어플이라고 말할정도로 이겨내기 위한 노력을 한다. 하지만 혼자만의 힘으로 이겨내기에는 한계가 있고 이런 상황에 처한 청년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도 적어보인다.


그래서 알리기 위해 프로젝트를 준비했고 2022년 11월 18일 금요일 오픈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오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한번의 활동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다음에는 또 다른 청년 문제로 아웃스타그램을 열어보려고 한다. 이것이 남들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지는 것이 아닌 정말 도움이 필요하고 어두운 부분을 세상에 알리는 시작이 되어지면 좋겠다.


또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공연자를 섭외하면서 있었던 일이다. 광주에서 활동하는 커버곡 공연자를 찾는중에 유튜브를 통해서 3분을 찾았고 제일 프로젝트 취지와 맞는 목소리를 가진 분에게 연락을 남겼다. 마침 광주에 사시는 분이었고 취지가 마음에 들어 함께하기로 했다. 처음 만나서 프로젝트를 설명해주고 공연 곡을 서로 이야기 하며 골랐는데 이 공연자분도 1년이라는 기간동안 집밖에 나오지 않았고 힘든 시기를 보내왔다고 했다. 그러다가 조금씩 극복해나가고 있을때 섭외 연락이 왔다고 했다. 참 신기한 경험이었고 공연곡을 선정할때도 공연자가 힘든시간을 보낼때 힘을 얻었던 노래를 부르기로 했다.


그렇게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정말 사진전과 토크, 공연을 보러오신 분들도 그리고 공연을 해주신 공연자분도 만족하는 기획이었다. 멘토님도 이야기해주시길 정말 어려운 주제를 잘풀어갔다고 칭찬해주셨다. 이렇게 글을 써보는 것도 처음이나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알고 공감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에 적어본다. 맞춤법과 필력이 부족한 부분은 너그러히 이해해주시길 바라며 문제가되는 부분이 있거나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글을 마치며 "나를 찾는 사람들 - 아웃스타그램"의 첫번째 프로젝트는 끝이 났습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