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라는 사람을 찾는 과정

짧지만 길었던 25년이라는 시간

by 장운

요즘들어서 만나는 사람에게 장점과 단점을 물어보곤 한다.

'나'의 장단점을 듣는 시간이 달갑지 않은 사람이 있을 순 있지만 그것만큼 생각하게 만들고 성장하게 만드는 질문이지 않을까? 또한 그 질문을 함으로써 그 사람이 스스로에 대해서 생각하고 고민하게 된다는 점에서 서로에게 좋은 질문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또하나 질문하는 것은 "너는 뭘 좋아하고? 뭘 잘하니?" 이다.

앞에서 말한 질문과 이 질문에 바로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지금 내 나이 또래에서 드물지 않을까 싶은데 그도그럴게 물어보는 사람들에게서 바로 이 답을 들을 수 없었다.


이렇게 질문을 하는데는 정말 많은일들이 있었는데 어린시절로 돌아가 내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누가 이 글을 읽을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써 조금이나마 힘을 얻고 스스로에 대한 답을 찾고 함께 성장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써보려고 한다.


어린시절부터 많이 가난했었다. 3남매 중 첫째로써 우리집 기둥이라는 말을 들으며 그 말의 무게를 채감할때 쯤 나는 공부도 안하고 놀기만 하는 망나니였다.


어렵게 보낸 학원도 학원비에 힘들어하시는 부모님을 보며 "내가 혼자 할 수 있을거 같아 학원 안다녀도 될거같아"라고 말했고 그렇게 혼자 공부는 커녕 매일 놀기만 했다. 학교에 가면 가방만 두고 바로 강당으로 뛰어가 친구들과 농구를 했다. 그렇게 땀이 삐질삐질 흘리면서 느지막하게 교실로 들어간다. "너 왜 이제 들어와?"라는 말에 화장실 다녀왔다고 말하며 자리에 앉아 점심시간까지 잠을 잤다.


그렇게 점심시간이 되고 제일빨리 밥을 먹으려고 새치기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나쁜 아이였다. 밥을 먹고 바로 강당으로 가 농구를 했다. 진짜 좋아했던 스포츠였고 대회에 나가 상을 타기도 했다. 그러다 다리를 다치고 농구말고 pc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매일 학교 끝나면 남아서 늦게까지 했던 농구가 아닌 밤 늦게까지 하게되는 것은 게임이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보내니 공부는 잘할리 없었다. 나에게 시험기간이란 학교가 빨리 끝나는 날이었고 친구와 누가 더 찍어서 잘나오는지 내기를 하는 날이었다. 너는 3번 나는 2번 그렇게 시험이 끝나면 맞춰보고 누가더 잘봤네 못봤네 하는 재미로 시험기간을 보냈다.


그러면서 생각하는것은 앞으로의 미래였다. 주변에 가족들과 여행을 가고 외식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부러울 때가 있었다. 우리집은 한달에 한번 시켜먹는 두마리치킨이 외식이었고 한달에 한번 가는 시골 할아버지집이 여행이었다. 그렇게 나는 빨리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되었고 친구들과 노는것을 멀리하게 되었다.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진학을 생각해야했고 나는 공고를 가서 빠르게 취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당시 자동차를 굉장히 좋아해서 엔지니어가 되려고 생각했었고 그것을 부모님께 말했지만 부모님은 완강히 반대하셨다. 그렇게 크게 싸우고난 뒤 아버지가 이야기했다 "대학학비 걱정하지 마 아빠가 어떻게든 벌어서 보내줄께 그리고 하고싶은거 있으면 다해 아빠가 다 도와줄께"라고 지금도 이 글을 쓰니 눈물이 그렁거린다. 그렇게 나는 공고에 대한 마음을 접고 인문계로 진학하기위해 공부를 시작했다.


국,영,수는 손도 못대고 만만한 사회, 기술가정, 역사 등 외우기만 하면 되는 과목 위주로 공부랄것도 없이 그냥 시험 전에 둘러보는 정도로 보고 시험을 첬다. 중학교 들어와서 처음으로 잠을 자지 않고 시험을 본것 같다. 그렇게 시험이 끝나고 체점은 하지 않았다. 어짜피 결과는 나오고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험 결과가 나오고 등수를 보게 되었는데 164명중 157등이었던 내 등수가 96등이라는 두자리 숫자로 표시되었다. 신나서 반장에게 말했다 "나 이번에 60등 올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웃긴 이야기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다음날이 되고 아침조례때 담임 선생님이 우리반에서 60등이나 오른 친구가 있다며 나를 칭찬해주셨고 끝나고 교무실 들렸다 가라고 하셨다. 알고보니 반장이 따로 선생님께 말한모양이다. 그렇게 학교가 끝나고 담임선생님을 찾아갔는데 선물을 주셨다. 케이크와 단어장이었는데 그 단어장에는 편지가 적혀있었다. 이 단어장은 지금도 버리지 않았는데 이것을 기점으로 더 공부 열심히했던것 같다.


그렇게 나의 생활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수업시간에 잠을 자지 않았다! 이것은 정말 큰 변화였다. 학교가 끝나고 따로 공부하는 것 까지는 못했지만 수업시간만은 잘 듣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수학과 영어만큼은 어려웠다. 그렇게 하루하루 지나 기말고사가 다가왔고 시험을 봤다. 이번 시험 결과는 47등 1년만에 100명을 이긴거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너무 좋았고 내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잘할 것 같았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입학하고 기초학력평가? 비슷한것을 봤는데 충격적이었다. 처음 보는 모의고사 형식의 문제들 국어는 왜 50문항까지 있으며 수학과 영어는 왜이리 어려운지 국어 점수가 24점이 나오고 나는 한국사람이 맞을까? 라는 생각까지 했다. 뭐 수학과 영어는 기대도 안했고 전체적으로 8-9등급을 받았다.


아니 왜 이렇게 수준차이가 나는것인가?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처음으로 공부에 위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1학년때 담임선생님을 만나 달라지기 시작했다. 국어선생님이셨던 담임선생님은 반 아이들을 한명한명 불러서 국어만큼은 잘하게 만들거라고 방법을 제시해주셨고 나는 꾸준히 따라가기 시작했다. 농구를 좋아했던 터라 점심시간때 농구하는 것은 포기하지 못했지만 꾸준히 따라가기 위해 노력했다. 수학은 중학교 1학년 책을 사서 풀었다. 고등학교 수업을 듣는데 따라갈 수가 없었다. 영어는 단어를 매일 외웠다. 빠지는 날도 있었지만 꾸준히 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2학년이 되고 나는 처음으로 4-5등급이라는 숫자를 보게 되었다. 하지만 2학년때 담임선생님은 나에게 너 이런 성적으로는 대학교 갈수 없다면서 말을하는데 왜 나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말을 하는지 지금까지도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 말을 듣고 화나서 더 공부한것 같다. 이렇게 보면 참 고마운 선생님이신것 같다


그렇께 꾸준히 공부했다. 1학년때는 국어를 2학년때는 수학을 중점적으로 했고 3학년때는 영어를 했다. 잘하지는 못했지만 결국 3학년때 2-3등급이라는 숫자를 보게 되었고 대학교에 진학을 하게 되는데 여기서 또 하나의 난관을 만나게 된다. 꿈이 없었다. 꿈이라고 포장되는 것은 있었지만 정말로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중학교때 좋아했던 자동차가 아니였고 고등학교 들어와서 되고싶었던 경찰이 아니었다. 성적이라는 앞만 보고 달려오니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고민하고 또 고민해도 결정이 나지 않았고 나는 삶의 방향을 잃었다.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을 한번더 선택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자율전공학부에 진학했다.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냥 하루하루 학교를 다니고 여러 수업을 들었지만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누군가의 권유로 책을 읽기 시작했고 그안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사고하는 법을 배운것이다. 나라는 사람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이것을 메타인지라고 이야기 하는 것을 알았다. 괜찮은 시간이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찾아가며 내가 무엇을 잘하는 것인지 인지하게 되었다. 삶이 즐거웠고 용기가 생겼다. 하지않은 것들을 하게 되었고 나는 신문방송학과로 전공을 선택하게 되었다. 광고가 좋았고 기획하는 것이 좋았고 아이디어를 내는 것을 좋아했기에 선택했다. 그리고 이것을 배워가며 내가 잘하는 것을 찾고 그것을 내 직업으로 선택할 것이다. 그러다가 맞이한 것이 코로나였고 다시한번 난관을 맞이했지만 전 글 '아웃스타그램'에서 이야기한것과 같이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웠다.


앞으로도 계속 찾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그리고 또 찾을 것이다 내가 잘하는 것을 그렇기에 물어보고싶다. 당신은 무엇을 좋아하나요? 그리고 당신은 무엇을 잘하나요? 이 글이 누군가에게는 발돋움이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스스로를 알아가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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