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 그대로 | 01
오늘 우중런을 뛰었다.
내가 객기 부리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본 것 중에 트랙에 사람들이 제일 많았다.
오늘이 딱 10번째 러닝이었는데, 가장 빨리, 기분 좋게 완주했다.
신발이랑 발은 물이 가득 차 무거워져 스펀지 짜는 소리가 뿍뿍 나는데 발걸음이 제일 가벼웠던 이유가 뭘까.
비를 피해 안으로 들어가도 괜찮은 날 바람막이에 달린 후드 달랑 뒤집어쓰고 달린 내가 좋다. 그와 동시에, 함께 트랙에서 나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지치지 않고 뛰던 러너들이 많았음에 자극을 받는다. 내 템포를 지켜야 이기는 게임이 러닝이니 유별나지 않고 뒤처지더라도 나를 쉽게 좋아할 수 있다.
다들 왜 러닝에 빠지는지 알겠다.
힘들어도 멈추지 않고 호흡과 자세에 집중하며 내 다리 템포에 몸을 맡기면 어느새 목표거리에 도달해 있다. 내가 좋아진다. 사실 오늘 6시까지인 인턴 지원서를 아슬아슬하게 못 낼 뻔 했다. 하마터면 자책으로 마무리 됐을 하루인데, 세상 개운한 마음으로 여기에 다시 찾아온 걸 보면 러닝은 앞으로도 내가 날 미워하지 못하도록 도와줄 거라는 기대가 생긴다. 꼭 매일 하지 않아도 되니까 최소 일주일에 두 번은 나가서 뛰자. 근사한 하루가 아니더라도 수고했다고 나를 토닥여줄 명분을 만들어주니까. 아, 내가 러닝만큼은 꾸준히 좋아할 수 있다면 좋겠다.
많이 부끄럽지만 초고를 그대로, 첨삭 없이 자주 올려볼까 합니다. 올해 5월 패기롭게 매거진을 시작하고, 글 세 개를 올린 후에 좀처럼 발행 버튼을 누르지 못했습니다. 기웃대다 적은 글들이 서랍에 먼지처럼 잔뜩 쌓였습니다. 못난 글이라도 부담 없이 마구 적어내어 서랍 안에 모셔둔 아이들도 뒤따라 바깥공기 좀 마실 수 있도록 해보겠습니다.
에디터 지와이
11월 27일, 2024
p.s. 우중런에는 어떤 신발 신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