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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피로스 Nov 24. 2022

오늘의 추천 고전(4) 아리스토파네스 희극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풍자한 고대 그리스 희극 구름



 고대 아테네의 3대 비극작가는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를 꼽을 수 있고 당대에 명성을 떨친 두 명의 희극작가가 있었으니 아리스토파네스와 메난드로스다. 아리스토파네스는 정치와 사회 문제를 풍자한 고희극 작가이며 메난드로스는 현대의 아침 드라마와(막장 드라마) 비슷한 통속 희극인 신희극 작가로 유명하다. 이 아리스토파네스란 인물은 당대 최고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풍자한 <구름>이라는 희극으로 유명했는데 그는 여기에서 소크라테스를 돈만 주면  젊은이들에게 옳은 것과 그른 것을 마음대로 뒤집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소피스트의  원흉으로 풍자하고 있다. 아리스토파네스는 소크라테스를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 아리스토파네스는 소크라테스의 <항연>에도 등장한 사람이다.


​ 사실 철학자와 소피스트의 차이는 절대주의적 세계관을 주장하느냐, 아니면 상대주의적 세계관을 주장하느냐였다. 흔히 궤변론자라는 부정적 이미지로 알려져 있지만 소피스트들은 인간 중심의 상대주의적 가치관과 현실에 대한 실용적인 탐구를 하는 사람들이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

프로타고라스

 

 ​일반인의 눈엔 철학자나 소피스트나 말 많고 아는 것 많고 점잖은 체하는 학자로 비칠지 모른다. (고르기아스와 프로타고라스를 읽은 사람들은 철학자와 소피스트가 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어리둥절했다) 아리스토파네스는 아테네 최초의 민중 선동가이자 최고 권력자였던 클레온은 물론이고 아테네 장군들과 유명 비극작가 에우리피데스까지 당대 유명인사들을 풍자했는데 소크라테스를 궤변론자 소피스트 취급하며 풍자한 것은 그 역시 유명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리스토파네스는 당시 20대 청년이었지만 지독하게 보수적이었고 조금이라도 진보적인 것은 몹시 혐오했다. 어쨌든 그의 풍자 희극은 재미있다. 그리스어가 아닌 한글 번역판이기 때문에 글로만 읽으려 하면 그 참맛을 느끼기 어렵다. ​<구름>은 고대 그리스판 개그콘서트다. 장면 하나하나를 눈앞에 연상해가며 떠올려보자. 황비호가 정치인과 유명인사들을 어떤 식으로 풍자했는지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 갈 것이다.



 아테네 외곽에 잔머리를 잘 굴리는 농부 스트렙시아데스와 아들 페이딥피데스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아들은 승마에 미쳐 말을 사느라 재산을 탕진하고 나날이 빚이 쌓여간다. 아버지는 빚을 생각하며 잠을 못 이루지 못한다. 어떻게 이 곤경을 모면할 수 있을까 궁리하던 아버지는 옆 집에 사는 소크라테스를 떠올렸다.


​​그들은 수업료만 내면 옳든 그르든 말로 소송에 이기는 법을 가르쳐준단다.

쳇, 그 악당들! 알겠어요. 창백한 얼굴에 맨발로 다니는 그 협잡꾼들 말씀이죠? 귀신에 씐 소크라테스와 카이레폰 같은 무리죠.


사람들이 말하기를, 저기 저들에게는 매사에 ​정론과 사론의 두 가지 논리가 있대. 그리고 그중 하나인 사론은 아무리 나빠도 소송에서는 반드시 이긴대.

​네가 만약 그 사론을 배우면 ​지금까지 너 때문에 진 빚을 나는 한 푼도 안 갚아도 되는 거야.


 도저히 빚을 갚기 싫었던 농부는 아들을 억지로 소크라테스의 학교로 보냈다. 한편 하늘을 쳐다보며 입 벌리고 사색에 잠겨 있던 소크라테스에게 도마뱀이 똥을 싸버린다. 심지어 먹을 것이 떨어지자 체육관에 가서 남의 외투를 슬쩍 해 오기도 한다. 스트렙시아데스는 소크라테스의 이런 능력과 열정에 감탄한다.


이 애에게 두 가지 논리를 다 가르쳐주십시오. 그것이 무엇이든 더 나은 것과 더 못한 것을 말입니다. 더 못한 것은 옳지 못한 말로 더 나은 것을 넘어뜨리죠. 둘 다는 안된다면 옳지 못한 것만이라도 꼭 가르쳐주십시오.


​ 빚을 갚지 않기 위해 아들에게 옳지 못한 것을 가르쳐달라고 부탁하는 스트렙시아데스.. 여기서 대강 어떤 결말이 나올지 짐작 간다.


 제목이 구름인 이유 : 극 중에서 소크라테스는 제우스를 부정하고 구름의 여신들을 참된 신으로 숭배하는데 이 구름의 신들은 소크라테스가 심취해 있던 다이몬인 것 같다. 아라스토파네스의 구름은 훗날 소크라테스가 신을 부정하고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죄로 고발당하는 원인을 일부 제공하게 된다. 물론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때문에 소크라테스가 사형당하게 되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당시 관객석엔 40대의 소크라테스도 극을 관람하고 있었고 극이 끝나자 일어나서 주위에 인사를 했다. 아가톤의 항연에서는 아리스토파네스와 주연을 나누며 에로스를 찬양하기도 하는 등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소크라테스가 처형당한 이유는 과두 독재정권에 대한 민주정의 경고였다.


 페이딥피데스는 소크라테스의 사색장에서 아버지의 바람대로 훌륭한 소피스트가 되어 돌아온다. 유식해진 아들 덕분에 빚쟁이들을 말로 따돌려 돈을 한 푼도 안 갚게 되지만, 나중에 아들은 아버지를 때리고는 그것마저 말로써 합리화하려 든다.

​​

페이딥피데스 : 제가 어렸을 때 아버지도 저를 때리지 않았습니까?

​​

스트랩시아데스 : 물론 때렸지. 너를 사랑하고 염려해서 말이야.

페이딥피데스 : 그럼  말씀해 보세요. 제가 염려하여 아버지를 때리는 것도 정당하지 않겠어요? 염려하는 것이 때리는 거라면. 아버지의 몸은 매를 맞아서는 안 되는데 제 몸은 왜 맞아야 되죠? 저도 자유민으로 태어났어요.


심지어 아들은 어머니마저 때리겠다고 위협한다. 그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스트랩시아데스..


- 구름의 여신들이여, 이게 다 그대들 덕분이오.

내가 내 일을 전적으로 그대들에게 일임했으니 말이오


- 천만의 말씀! 모든 책임은 그대에게 있느리라.​

 그대가 제 발로 악행으로 향했으니까.


- 아, 슬프도다! 구름의 여신이여,

그대들의 말씀은 가혹하지만 옳소.

난 빌린 돈을 떼먹으려 하지 말았어야 하니까요.


 화가 난 스트렙시아데스는 소크라테스의 사색장을

찾아가 불을 질러 홀라당 태워버리고 소크라테스를 혼내주는 것으로 극은 막을 내린다. 빌린 돈을 갚지 않으려 잔머리 쓰다가 벌을 받게 된 인과응보 이야기.. 유명한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풍자와 조롱의 대상이라니 신선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은 각 스토리가 짧고 풍자극이라 재미있기 때문에 고전 입문자에게 추천하고픈 작품이다.


 내가 어렸을 때 시장에서 고기를 훔치고 그걸 항문 사이에 끼운 다음 안 훔쳤다고 아폴론 신을 걸고 맹세한 적이 있어요. 그걸 본 한 정치가가 내 손을 잡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여러분, 이 아이는 장차 정치인이 될 것입니다.

 그 사람 통찰력 한번 예리하군. 당신이 도둑질하고 고기를 항문에 숨기고 위증을 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한 거요

 ​아리스토파네스의 작품은 특유의 매력이 있다. 놀라운 사실은 2500년 전 그리스 아테네 인들과 오늘날 현대인의 생각에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곳은 비슷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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