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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피로스 Nov 22. 2022

오늘의 추천 고전 (1) 에밀 졸라 『인간 짐승』

에밀 졸라 『인간 짐승 : La Вête humaine』  


에밀 졸라의  『인간 짐승』 La Вête humaine​


 제목 그대로 추악한 범죄와 어두운 욕망의 항연이 펼쳐진다.  혼란스러운 19세기 근대사의 한 획을 그은 저널리스트 겸 사상가 에밀 졸라의 대작. 1890년에 출간한 『인간 짐승』은 ‘루공마카르’ 총서 스무 권 중 열일곱 번째 작품이다.


​“​에밀 졸라는 인류 양심의 한 획을 그었다.”​


“에밀 졸라의 작품은 나쁘다.

그는 너무 불행한 인간이다.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


 동시대의 거장 “아나톨 프랑스”가 에밀 졸라에 대해 내린 극단적인 평가다. 그는 에밀 졸라에게 인간으로서 최고의 찬사를 바쳤고, 한편으론 차라리 태어나지 말아야 했을 인간이라며 최악의 비난을 퍼부었다. 아 어두워라, 졸라의 소설. 너무나 리얼해서 충격적인 묘사. 인간 심리 밑바닥에 뱀처럼 똬리를 튼 추악하고 야만적인 본성에 대해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제목의 인간 짐승은 짐승 같은 인간을 가리키는 것인가, 아니면 교육과 계몽으로도 어쩔 수 없는, 저 멀리 인간 본성 밑바닥에 잠들어 있는 원초적이고 짐승 같은 야만성을 의미하는 것인가.



 인간 짐승에서는 뚜렷한 개성을 가지고 입체적으로 묘사된 다양한 종류의 추악한 인간이 그려진다. 소설의 중심은 명망 높은 대법원장 그랑모랭의 피살 사건이다. 그 후의 벌어지는 살인 범죄들은 모두 이 사건에 연관되어 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자크 랑티에의 살인이다. 다른 사건들은 원한, 질투, 탐욕처럼 뚜렷한 동기가 있지만 자크의 살인은 동기가 없다. 그의 범죄는 유전적 결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밀 졸라는 유전을 깊은 구멍으로 묘사한다. 인간의 DNA에 새겨진 치명적 결함. 인간은 숙명처럼 피에 새겨진 이 결함을 극복할 수 있을까. ​자크 랑티에는 사랑하는 세브린을 살해함으로써 끝내 극복하지 못한다. 먼 옛날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 태어난 모든 인간이 죄인이 되어야 했던 것처럼 그 깊고 깊은 구멍을 메우기란 불가능한 도전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나는 인간의 동물적 본성을 도덕성이 완전히 압도할 날이 언젠가 이루어지리라 본다. 까마득한 기원에서부터 인류가 대대로 물려준 결함, 유전자의 구멍이 메워질 날이, 아담의 자손이 멍에를 벗어버릴 날이 올 것이다.


 ​​에밀 졸라의 작품은 뭐랄까.. 읽을 때마다 찬탄과 동시에 쌍욕이 절로 나온달까. 그의 작품은 분명 대작이다. 섬세하고 매끄러운 문장력과 치밀한 심리묘사. 한 폭의 그림처럼 생동감 넘치는 소설 속 장면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소설 전체적으로 감도는 무게는 매우 무겁다. 위태롭게 쌓여 밑돌 하나만 빼어도 엄청난 폭음과 함께 와르르 무너져 내릴 법한 긴장감과 밸런스가 느껴진다. 그래서 졸라의 소설들이 감탄이 나오는 명작이지만 집어 들 때마다 두렵다.




 대법원장 그랑모랭은 어려서 부모를 잃은 소녀 세브린을 친딸처럼 거두어 기르고 성장하자 결혼까지 시켜준 자애로운 사람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대법원장은 호색한 성범죄자였으며 딸처럼 기르던 세브린을 어릴 때부터 추행하고 성폭행해 왔던 것이다. 세브린은 아주 우연히, 실수로 남편인 루보에게 이 사실을 고백했다. 열받은 루보가 세브린을 무지막지하게 폭행하는 장면은 충격적으로 리얼하다. 솔직히 세브린이 무슨 죄인가. 그녀도 가련한 피해자일 뿐인데. 하지만 당시 사회는 여성과 성폭력 피해자에게 관대한 곳이 아니었다. ​아내를 구타하는 남편, 여동생을 때리는 오빠, 애인을 폭행하는 남자.. 여성을 혐오하고, 살해하여 완전 소유하려는 본능을 가진 남자. 서로를 증오하고 불신하는 부부, 남편을 살해하려는 여자, 질투 때문에 무고한 열차 승객들까지 계획적으로 학살한 여성, 본인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고 진실을 다 안다 생각하지만 전혀 엉뚱한 결론을 내린 재판장. 진실을 알고 있지만 사회적 파장을 우려해 조용히 범죄를 덮는 법무부 고위 관리는 그저 세브린과 한번 자보지 못한 것을 아쉬워할 뿐. 세세히 까발려진 민낯과 추악한 욕망에 심기가 불편해진다(뭐 이딴 인간들이 다 있노)  이런 게 인간일지도. 아니면 인간이란 이름의 짐승에 대한 묘사인가. 성폭력과 폭행, 살인 등 온갖 범죄의 항연.


 질투심에 이성을 잃고 날뛰던 루보는 그만 법원장을 살해하고 만다. 그리고 자크 랑티에라는 기관사가 사건을 목격한 걸 알자 겁이 난 루보는 세브린을 시켜 자크를 유혹하게 한다. 자크는 세브린과 사랑에 빠지지만 그에게는 무시무시한 비밀이 있다. 그는 성적으로 끌리는 상대를 살해하려는 욕망을 타고난 가학적 변태성욕자(사이코패스)였던 것이다.  자크의 치밀한 심리 묘사와 갈등이 인상 깊다. 에밀 졸라는 소설을 쓰기 전에 실제 범죄자를 인터뷰라도 한 걸까. 그 치밀한 심리 묘사가 놀랍다.


 ​그랑모랭 살인 사건에서 시작되어 더 많은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 법원장을 살해한 후 루보는 타락하여 도박꾼이 되고 온순했던 세브린은 자크와 사랑에 빠져 새 인생을 살기 위해 남편을 죽일 계획을 했다. 자크는 세브린을 사랑했지만 끝내 타고난 짐승 같은 살인 욕구를 누르지 못하고 세브린을 살해한다. 공포에 질린 두 눈에 왜?라는 의문을 가득 담은 채 세브린은 피 흘리며 죽어간다. 그리고 인간의 피를 마시며 괴물처럼 돌진하는 기차.. 참으로 찝찝한 결말을 맺은 채 소설은 끝이 난다.


 [운전자도 없이, 어둠 속 한가운데로, 마치 살육의 현장에 풀어놓은 눈멀고 귀먹은 한 마리 짐승처럼, 기관차는 이미 피곤에 절고 술에 취한 혼곤한 상태에서 악을 쓰며 노래를 부르는 병사들을 싣고, 그 총알받이들을 싣고, 달리고 또 달렸다.]


​ ​기관사를 잃은 채 괴물처럼 폭주하는 기관차와 술에 취해 혼란한 상태로 악을 쓰며 총알받이로서 전쟁터로 향하는 병사들.. 최고의 살인 범죄는 전쟁이다. 소설은 법원장의 살인으로 시작해 보불전쟁의 대학살을 예고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병사들은 사지로 끌려가고 통제자를 잃은 채 폭주하는 기차는 자기가 짓밟아 조각낸 인간의 피투성이 시신을 뒤로한 채 미친 듯이 질주한다. 한 때 돌풍을 불러일으켰던 SF 영화 터미네이터가 묘사한 암울한 미래 사회의 19세기 버전이랄까. 잔혹하고 경악스럽긴 했지만 패주에서는 희망이라는 게 존재했는데 인간 짐승은 그런 것도 없다. 섬뜩한 마지막 장면과 함께 충격적으로 막을 내린 인간 짐승. 그리고 보니 귀스타브 르 봉의 군중심리가 동시대에 나온 작품이었지. 인간 짐승은 19세기 전근대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과도기 사회가 갖는 혼란성, 정치적으로 군중의 광기가 대두되고 기계가 인간의 자리를 밀어내기 시작한 시대가 비추는 우울한 자화상이며 폭주하는 열차는 다가올 암울한 시대(보불전쟁과 파리 코뮌)로 사정없이 끌려가는 프랑스를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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