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잼 Jan 06. 2023

'나를 안다'는 건 정답 맞히기가 아니라 데이터 쌓기다

생각 혹은 에세이

한 때 '나를 알기'에 심취한 적이 있다.


나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게 모든 문제의 출발점이다. 나를 모르니까 어떤 일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고, 어떤 사람을 만나 어떤 삶을 꿈꿔야 하는지도 애매해지는 거다. 그래서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나름의 답을 생각하곤 했다.



나는 백수로 살고 싶어(확실하다고 생각함) ▶ 3개월만 놀아도 의외로 지겹던데
나는 외향적인 것 같아 ▶ 모르는 사람 만나는 건 즐겁지 않아
그럼 난 내성적인가 봐 ▶ 하지만 혼자 놀기는 심심해
난 운동이 싫어 ▶ 안 하고 산 적은 없잖아? 해내고 난 뒤의 뿌듯함보다 싫은 마음이 정말 더 커?



실제로도 살아온 연식이 무색하게 '나'라는 존재가 모호하기도 했다. 어떤 게 싫고 어떤 게 좋은지, 잘하는 건 뭐고 노력해도 못 하는 건 뭔지. 실제론 노력을 제대로 안 한 건 아닌지? 의외로 견딜만한 불행은 무엇이고, 참을 수 없는 사소함은 무엇인지. 누군가 물어오면 임기응변으로 답을 말하겠지만, 그게 정말일까? 한 번만 되짚어봐도 확신이라고 말하긴 어려웠다.


나는 이런 사람인가 보다! 하고 살다가 예상치 못하게 맞닥뜨린 상황에서 그렇지 않은 내 모습을 발견하길 수 천, 수 만 번. 그러다 보니 자신감이 떨어지고 말았다. '남들은 어떻게 그렇게 확신에 차서 살지? 나는 그냥 줏대 없는 인간인가 보다.' 그렇게 '나를 알기'를 대충 덮고 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답 대신 데이터

인간은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른 마음이 드는 게 당연하다. 너는 물 마시는 걸 좋아하니?라는 질문은 어떤가. '목마를 땐 좋고 많이 마셨을 땐 싫겠지'가 당연한 대답이다. 내가 나를 알기에 실패한 원인은 이렇게 '상대적인 나'를 '절대적으로 정의' 내리려 한 것이었다. 우주만큼 복잡한 인간이 한 마디로 정리될 리가. 이제 나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비가 싫어'라고 말하는 대신,

나는 출근할 때 비 오는 게 싫어. 근데 장화 신으면 꽤 괜찮아. 집에 있을 땐 오히려 좋고.


'나는 게을러' 대신,

나는 마감이 없을 땐 게으른데, 마감은 무조건 지켜. 일부러 스케줄을 많이 만들어두면 꽤 부지런한 사람이 되지.


*주의, 사회적인 대화에선 눈치 없이 지 말만 길게 하는 인간으로 비칠 수 있음



이런 방식에선 새로운 내 모습을 관대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변했네, 가 아니라 또 다른 상황에선 이렇구나- 하면 되니까. 이럴 땐 이렇고 저럴 땐 저렇다는 게 무슨 답이냐 싶을 수 있지만, '이럴 때'와 '저럴 때'의 경우의 수가 많아지면 유의미한 정보가 될 수 있다. 데이터가 가득 쌓이면 원하는 나의 모습도 이끌어낼 줄 알게 되겠지. 생각만으론 어렵고 실제 현실에 부닥쳐봐야 한다는 큰 단점이 있지만.


오늘도 현재 진행형 물음과 하루치의 결론으로 살아간다. 내일이면 바뀔지도 모르는 한 줄 데이터. 하지만 혹시 모른다. 오늘도, 내일도, 일주일 후에도, 1년 후에도, 다양한 상황에서도 확신이 드는 내 삶의 어떤 철학이 나타날지? 그런 영원한 게 하나쯤 있기를.

작가의 이전글 스몰 토크 잘하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