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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쿤 나나 Sep 07. 2024

03. 단체손님

90명의 습격!

오늘은 단체손님의 날이다.

단체손님을 맞을 준비를 단단히 하고, 손님을 기다린다.

기독교 신자들로 구성된 60~70대 여자손님이 3대의 대형버스로 1시간 30분씩의 시간 차를 두고 예약이 되어 있다고 한다.


태국은 불교국가인데 교민으로 살고 있는 한국인중 다수가 기독교인이거나 선교사인 경우가 많다.

관광객도 기독교단체에서 꽤나 오는 편이다. 기독교신자가 아닌 나는 좀 신기하다.


저가의 패키지여행은 무조건 마지막날 쇼핑 3회를 한다.

좋든 싫든 어쩔 수 없이 가이드가 데려가는 대로 다녀야 하는 여행이 패키지여행이고 내 자유시간은 보장이 되질 않지만 한편으론 편할 수도 있는 여행이다.


첫 번째 버스가 도착했다

30명의 여성손님이 차례로 내려 매장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연세가 평균 70대의 어머니 손님들이시다.

한국의 우리 엄마 모습이 잠시 떠오른다. 그냥 빨리 잊고 일 모드로 넘어가자.

어떤 분은 웃으시면서 어떤 분은 지겨운 듯한 표정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오시며 때론 다리를 절뚝거리며 들어오시는 분도 있다.

우리의 인사에 같이 인사해 주시는 분도 계시다.


모두 들어오신 후 멘트실에 착석을 하시고 가이드가 멘트사를 소개한다.

가이드가 박수를 유도하니 고맙게도 박수도 쳐주신다.

태국의 특산물 라텍스의 설명을 듣는 시간, 어떤 여행객은 아직도 라텍스냐라고 하신다.

전 세계 고무의 70% 이상이 동남아에서 생산되고 그중 40%는 태국에서 생산된다고 한다.

('EBS극한직업 라텍스' 편에 나오는 내용들, 유튜브에 검색하면 쉽게 볼 수 있다)

고무를 가공하는 기업들이 모여있는 공단도시도 있다. 그중 한국기업들도 있다.

고무는 태국 혹은 말레이시아에 주 수입원일 수밖에 없는 국가산업이다.

한 나라의 특산품이라는 게 유행처럼 확확 바뀌기는 힘들다고 본다.

대신 같은 원료로 더 좋은 제품으로 변신하거나 가공되어 현대인의 마음을 사로잡게끔 바뀌는 것이겠지.

우리나라의 인삼, 홍삼 제품이 새롭게 변신하고 젊은 층에게도 인기가 있는 것처럼...


20분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니 멘트실 문이 열리고 손님들이 나오신다.

체험의 시간이다. 라텍스매트리스와 이불 베개를 전시해 둔 전시장이다

서른 개정도의 침대가 양쪽으로 배치되어 있고 알바(=추와이:돕다)인 나는 손님들이 침대에 누워보시게 유도한다.

라텍스는 베개를 베어보고 매트리스에 누워보고 이불을 덮어봐야지만 구매가 일어나는 상품이다.

또한 패키지여행의 일정상 쇼핑센터에 머무르는 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구매를 하든 안 하든 이 장소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침구류는 대체로 남자보단 여자, 젊은 사람보단 연세가 조금 있는 50대 이상이 구매가 높다.

오늘은 전부 여자손님이시고 70대 전후의 어머님들이시다.

알바들이 라텍스의 장점을 누워계신 손님들께 얘기하며 베개를 머리에도 허리스트레칭용으로도 다용도로 쓸 수 있게 체험해 주고 이불도 보여주고 바쁘게 관심자(=손짜이)를 찾고 다닌다.

몇몇 분이 가격, 세탁여부, 사용기간등 관심을 보이면 적극적으로 응대하고 결재를 이끌어내고 포장을 담당하는 태국직원에게 압축포장을 부탁한다.


결재는 달러, 바트, 원화, 카드, 계좌이체, 외상까지 가능하고 달러와 바트를 혹은 원화를 섞어서 해도 된다.

그런 과정에서 환율을 계산하고 내용을 설명해 드린다. 적어달라는 분도 계시고 돈의 가치를 잘 모르셔서 자신의 돈뭉치를 주며 세어달라는 분도 계시고 카드수수료에 대해 자세히 묻는 분도 계시고 정말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간다.

정해진 시간 내에 많이 파는 게 일단 업무다.

예의를 지키고 여행 후 쇼핑센터에 대한 불만이 나오지 않게 불쾌한 일도 참고 그냥 웃음으로 넘겨야 한다.


버스 3대가 시간차를 두고 오지만 90명의 손님이 같은 단체이기 때문에 물건값은 동일한 할인율로 적용한다.

만약 첫 번째 버스와 두 번째, 세 번째 버스의 물건값이 다르면 손님들끼리 가격공유를 하고 난리가 나고 반품이 나거나 한국여행사에 클레임을 걸 수도 있다.

레임이 걸리면 가이드도 징계가 있고 쇼핑센터에도 불이익이 발생한다.

서로 공생하지만 여행사와 가이드가 때론 갑이기도 하고 손님이 슈퍼갑이기도 하다.


바쁘고 정신없었다는 것은 어찌 됐던 구매가 활발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알바들과 멘트사는 그 구매를 이끌어내기 위해 안사면 안될 수십 가지 이유를 반복해서 얘기하느라 열정이 넘치게 얘기하며 지갑이 열리길 기다린다.


첫 번째 버스에는 박스와 쇼핑백이 실리고 매트리스는 택배예약이 되고 손님들은 한분 한분 버스에 오르시며 떠난다.


5분 후 두 번째 버스가 도착한다.

물 한 모금 먹고 또 정신 차리자.

이제 한 팀이 다녀가셨는데 벌써 배고프고 정신도 혼미하고 기가 빠진다.


많이 팔려도 적게 팔려도 알바비는 시간제로 주기 때문에 똑같다

멘트사는 기본급과 판매성과급을 받고 가이드는 판매금액에 50%를 가져가서 여행사와 나눈다

패키지여행이 저렴하게 책정된대는 모두 이런 여행의 과정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도 한국에서 회사에서 혹은 어떤 단체에서 패키지여행을 가본 적이 있다.

어떤 부분은 편했고 어떤 부분은 제약이 있어서 조금 불편했다. 쇼핑센터도 여럿 다닌 기억이 있다.

글쎄 패키지여행과 자유여행 중 뭐가 좋을까?

인원이 많은 단체나 대가족의 여행이라면 여행사를 통한 패키지여행이 좋을 것 같다.

인솔해 주는 가이드가 있어 일단 편하다.

특히 단체여행은 편해야 하니까...

아무 생각 없이 따라만 다니면 되니까...

인원이 적은 가족이나 친구, 혼자여행은 자유여행이 좋지 않을까 싶다.

여행을 준비하며 몸으로 체득하는 것들도 많고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얻어지는 게 되고 젤 중요한 자유가 있다.


두 번째 버스와 세 번째 버스가 연달아 오고 시끌시끌 난리가 나고 라텍스들이 포장되고 팔려갔다.

그런 과정에서 가격 실랑이는 오고 가고 서로 다른 버스에 말하지 않겠다고 더 깎아달라 하시며 곤란하게 하신다.

알바가 권할 땐 꿈쩍 않으시다가 같이 온 목사님이 권하니까 바로 구입하시는 손님들도 다수 있었다.

그분들에게 절대적일 수 있는 목사님의 힘이 놀랍다


세 번째 버스도 떠나고 하루 일과가 끝이 났다

알바비를 받고 퇴근을 한다. 정말 쉽지 않은 날이었다.

태국에 살면서 가장 많이 쓰고 있는 언어가 한국어이고 오늘은 그 한국어도 원 없이 말했던 날이다.



내일은 또 어떤 분들이 오실까?

아니,

그런 생각 따윈 넣어두자.

나는 알바다. 그냥 일할 때만 열심히^^.

남은 에너지는 내 삶에 쏟아내자. 언제가 될지 몰라도 여기 있을 때의 생활을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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