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고치다, 길이 되다 9화

거리를 둔다는 건, 그 사람을 포기하는 게 아니었다

by 공인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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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 모든 인연을 지킬 수는 없었다

나는 한때, 모든 인연을 끝까지 지킬 수 있다고 믿었다.
서로 마음만 있으면, 조금만 더 노력하면, 어떤 관계든 유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억지로 붙든 관계는 금이 가고, 결국 서로를 병들게 했다.

나도 지키고 싶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과의 추억과 웃음, 함께 했던 시간들이 나를 버티게 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 관계가 더 이상 건강하지 않다는 신호가 반복해서 왔을 때, 나는 선택해야 했다. 붙들 것인가, 놓을 것인가.

붙들었을 때, 우리는 더 망가졌다.
말은 점점 날카로워졌고, 웃음은 불편한 의무가 되었으며, 마음은 서서히 닫혀갔다. 그러다 결국 관계가 부서진 뒤에야 알았다. 진작 놓아줬다면, 조금 늦게라도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을 거라는 걸.

놓아준다는 건 배신이 아니었다.
그건, 그 사람도 나도 더 이상 다치지 않게 하는 일종의 결단이었다.
그리고 그 결단은, 미련과 후회 속에서도 조용히 서로를 살리는 길이 될 수 있었다.

“붙들었을 땐, 망가졌다.
놓았을 땐, 조금 늦게 서로를 이해하게 됐다.”
그 문장이 내 이별의 기록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해주고 있었다.


2절. 거리를 둔다는 건, 책임을 버리는 게 아니었다

처음 거리를 두었을 때, 나는 오래도록 죄책감에 시달렸다.
마치 내가 관계를 포기한 배신자가 된 것 같았다.
“끝까지 옆에 있어주지 못한 건가? 내가 너무 이기적인 건가?”
그 질문이 마음속에서 며칠이고, 몇 달이고 맴돌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알게 됐다.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책임이지만, 해치지 않기 위해 물러서는 것도 책임이라는 것을. 가까이 서 있는 것이 무조건 좋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가까움이 독이 되어 서로의 상처를 깊게 만들 때가 있었다.

어느 날, 거리를 두었던 사람이 내게 말했다.
“그때 네가 옆에 있었으면, 난 더 힘들었을 거야.”
그 말을 듣고서야 깨달았다. 물러남이 도망이 아니라 배려였다는 것을.

거리를 둔다는 건 그 사람을 버리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 사람이 나 없이 더 건강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는 일이었다.
함께 있지 않음으로써, 그 사람의 숨을 회복시켜 주는 선택이었다.

“때로는 곁에 서는 것이 아니라,
물러나는 것이 진짜 배려였다.”
이 문장이 나를 죄책감에서 조금씩 풀어주었다.


3절. 내가 도인이 되고 싶었던 이유는, 모두를 품고 싶어서였다

어릴 적부터 나는 상처받은 사람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친구가 울면 같이 울어주고, 누군가가 힘들다고 하면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었다. 어쩌면 그게 내가 ‘도인’이 되고 싶었던 첫 이유였는지도 모른다. 모두를 품고, 모두를 이해하고, 결국 모두를 구원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세상을 살면서 깨달았다.
도는 구원이 아니었다. 구원이란 말속에는, 내가 누군가를 ‘살린다’는 오만함이 숨어 있었다. 관계 속에서는 모두가 각자의 길을 걷고 있었고, 내가 그 길을 대신 걸어줄 수는 없었다.

품는 것도 도였다.
그러나 제때 흘려보내는 것 또한 도의 기술이었다. 가까이 있어야만 사랑이고, 붙들어야만 관계라고 믿었던 건 나의 집착이었다. 때로는 거리를 두는 것이 그 사람을 더 잘 품는 방법이 될 수 있었다.

이제 나는 세상을 전부 품으려 하지 않는다.
대신, 세상과 나 사이의 적당한 간격을 알아차리려고 한다.
그 간격 속에서만 숨을 고르고, 서로를 바라보며 오래 걸을 수 있다는 걸 배웠다.

“세상을 품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나 사이의 적당한 간격을 아는 것이 도였다.”
이 깨달음은 나를 한결 가볍게 만들었다.


4절. 말하지 않음이 더 큰 말이 되는 순간도 있다

우리는 이별 앞에서 흔히 ‘마지막 대화’를 꿈꾼다.
서로의 마음을 다 털어놓고, 오해를 풀고,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장면을 상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다.

떠나는 이유를 끝까지 설명하지 않은 관계들이 있다.
그건 비겁함 때문이 아니었다. 말로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사랑했고, 그만큼 오래 고민했지만, 언어로는 그 깊이를 다 담아낼 수 없었다. 그래서 침묵이 더 솔직했다.

시간이 흐르니 알겠다.
그 침묵이 곧 “여기까지가 우리의 길이었다”는, 그리고 “그래도 너를 사랑했다”는 말이었다는 것을. 굳이 상처 위에 단어를 얹어 더 무겁게 만들지 않은 선택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마지막 인사 없이 멀어졌다.
하지만 그건 무심해서가 아니었다.
그만큼 사랑했기에, 그 이별을 말로 정리할 수 없었던 것이다.

침묵은 단절이 아니었다.
그건 그 사람이 내 안에 여전히 살아있음을, 다만 더 이상 곁에 두지 않는다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또 다른 언어였다.


5절. 도란 결국, 누굴 살릴 수 있는 배치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관계는 마음만으로 유지되지 않았다.
아무리 사랑해도,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져도, 잘못된 위치에 서 있으면 서로를 해쳤다. 가까이 있어야 할 때가 있고, 멀리 서야 할 때가 있었다.

나는 예전엔 감정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마음만 있으면 된다”는 말이 참된 것처럼 들렸다.
하지만 살아보니, 감정보다 중요한 건 ‘배치’였다. 서로를 살리는 자리에 서 있는가, 아니면 서로를 갉아먹는 위치에 서 있는가.

가까운 관계일수록 이 배치의 지혜가 절실했다.
좋아하는 마음이 커도, 서로의 숨을 막히게 하는 자리라면 한 발 물러서야 했다. 반대로 거리를 두고 있어도, 서로를 살리는 자리가 있다면 그곳에 머무는 편이 더 깊은 관계를 만든다.

삶은 긴 호흡의 여정이다.
도란 순간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나와 상대가 모두 건강하게 서 있을 수 있는 자리를 선택하는 기술이었다.

“도는 마음이 아니라, 관계의 구조를 다룰 줄 아는 기술이다.”
이 문장을 품고 나니, 거리를 두는 선택이 조금 덜 두려워졌다.


6절. 거리를 두면서도, 나는 여전히 사랑하고 있었다

거리를 두는 순간, 마음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멀어진다고 해서 그 사람을 지워버린 것도 아니었다.
다만,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바뀌었을 뿐이었다.

예전엔 바로 옆에서 묻고, 챙기고, 끊임없이 함께하려 했다.
이제는 멀리서 그 사람이 잘 지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했다.
그가 웃을 수 있는 날이 많아지길, 그가 스스로 서 있을 수 있길, 그 길에서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날 힘이 있길 바랐다.

함께 있지 않아도 연결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가끔 바람이 불어와 그 사람을 떠올리면, 마음 한구석이 여전히 따뜻했다.
그 온기가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여전히 이어져 있었다.

나는 여전히 그 사람을 품고 있었다.
단지, 그 품은 더 이상 ‘가까움’이 아니라 ‘존중’이었다.
가까이 서서 붙잡는 대신, 멀리서 바라보며 지켜주는 품.
그 품이야말로 지금의 나를 가장 닮은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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