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금 찾아온 수험 생활은 오랜 시간 잊고 있었던 감정들을 다시금 느끼게끔 해준다. ‘기다림’이 아마 그것들 중 하나일 것이다. 일상에서도 흔히 겪는 것이 기다림이라지만, 그 과정에서 고통이 덕지덕지 발목에 매달려 내딛는 걸음걸음에 힘겨움을 싣게 하는 것을 보면, 일상의 기다림과 수험 생활의 기다림은 사뭇 그 무게가 다르다.
특히 20대의 끝자락을 향해 달려가는 나의 나잇대는 발목에 매달린 인고의 무게도 벅찬 자에게 조급함의 짐을 어깨에 매달아준다. 이제 더는 실패하면 안 되지만, 그럼에도 무언가는 해야 하는 나잇대라고 스스로의 어깨에 매단 짐은 어째 점점 나아가야 할 길이 아니라 벼랑 끝으로 이끄는 것 같기에, 애써 떨쳐내려고 괜시리 어깨를 들썩여본다.
그럼에도 이런 고통을 목놓아 부르짖기도 민망한 것이, 당장 노량진 독서실에만 도착해도 수많은 학생들이 나보다 더욱 마음을 불태우며 앉아있다. 그럴 때마다 다시금 스스로를 갉아먹는 것이다. 내가 하는 것은 공부가 아니라 소꿉놀이에 유사하다고. 나는 수험생 역할 놀이를 하고 있는 거라고. 그러고 다시금 펜을 붙잡고는, 거지 같은 문제들에 책상을 뒤엎고픈 마음을 몇 번이고 붙잡으며 일주일을 보낸 후, 처음부터 그 과정을 매주 반복하는 것이다.
수많은 유럽 선원들이 후추와 차로 가득한 인도를 찾아 바다에 몸을 맡긴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낭만 넘치는 ‘대항해시대’라는 이름과는 달리 당시 항해술은 그리 발달하지 못했다. 인도로 가겠다며 아프리카 서쪽의 해안선을 따라 내려간 선원들은 수도 없이 파도에 자신들의 목숨을 바쳤다. 살아남은 이들도 끝없이 이어진 대륙의 벽에 절망했다. 하지만 마침내 남아프리카 남쪽 끝자락, 드디어 자신들의 앞을 가로막던 육지가 끝나고 바다가 보이는 지점에 다다르게 된 자들이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적어도 ‘희망봉’이라는 이름은 어렴풋이 그들의 감정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아프리카의 절반도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향하는 곳이 인도가 아닌 아메리카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저 앞에 사람들이 ‘쭉 가다 보면 바다가 탁 트이는 지점’이 있다고 하기에, 인도는 몰라도 그 지점까지는 어떻게든 가려고 해본다. 가면 알게 되겠지. 가면 ‘희망’이 보이겠지. 가면 더 나아갈 의지가 생기겠지. 그러니 오늘 아침에도 의지가 고갈된 이 몸뚱아리를 일으켜, 어떻게든 나아가려 할 것이다. 늘 그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