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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뭐야 Jul 18. 2023

<골짜기>

요 며칠 무슨 광기가 들린 사람마 글을 썼다. 간만에 명시적인 목표가 생겨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확실히 알 듯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글을 애써 고뇌하며 쓰는 것과, 눈에 보이는 명확한 목표물에 관해 쓰는 것은 느낌이 다르다. 하지만 그 여파로, 분노의 글을 4개 쓴 후에는 정말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물론 글을 쓸 여력이 없을 정도로 할 일이 많았던 것도 있지만, 그 와중에도 새벽에 꾸역꾸역 컴퓨터 앞에 앉아서 워드를 켜고 키보드를 두들겨대던 사람이 머릿속 글쓰기 영역이 시동을 걸릴 생각을 하지를 않았다. 감정의 연료가 바닥나서였던 것 같다.


무엇이든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이다. 등산의 뒤에는 하산이 있다. 상승장의 뒤에는 하락장이 있다. 잘 풀리는 일이 끝나면 안 풀리는 일이 있다. 그리고 한없이 들뜬, 활활 불타는 감정이 다 꺼지고 남은 자리에는, 공허한 우울감이 있었다. 그래서 항상 조심하려 했던 것 같다. 무엇이든 너무 오르지 말자고. 그것이 산이 되었건, 주식이 되었건, 삶이 되었건, 감정이 되었건. (산은 요새 좀 올라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어딘가,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어딘가에는, 내려와야 할 지점이 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간만에 철칙을 어겼고, 간만에 어김없는 후회를 반복했다. 수면 아래 차갑게 내려앉은 감정은 글 쓸 의욕을 닻으로 끌고 갔고, 생각의 빈자리는 시험 과목들이 채웠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공부만 했던 것 같다. 그러다 헌법 책을 131번 정도 찢어버리고 싶어졌을 무렵에, 드디어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만에 처음 워드를 켜서 설렘에 가득 찬 상태로 글을 끄적일 때의 그 감정을 느꼈다. 역시 초심을 되찾는 데에는 바닥을 찍고 오는 것만큼 좋은 게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 그게 바닥을 찍고 싶다는 소리는 아니지만 말이다.


노량진에서 버틸 수 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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