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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물없는 건물주 Dec 27. 2022

제법 MZ 같은 저, 신입이 이래도 되나요? - 칼퇴편

#탈출 일지 3화

"90년대생이 온다. MZ세대의 반란. 요즘 애들의 직장 생활기."


나는 가만히 있었는데 세상이 나를 엠-즤 세대, 요즘 애들로 만들어 버렸다. 90년대생이 직장에 들어와 직장 문화가 갑자기 하늘이 뒤집어지듯 바뀌었다는 기사가 줄을 이루지만 정작 내가 들어온 회사는 엠즤가 뭔데?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야? 하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회사에 적응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 제법 엠즤라고 생각한 내가 "젊은 꼰대"임을 발견하는 것이다.


직장에 취업한 다른 동기, 친구들의 말을 들어보면 "요즘 신입"은 환상 속에나 존재하는 것 같으면서 또 의외로 가까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겪은 '신입이 이래도 되나요?'에 대한 경험을 얘기해보려 한다. 이 얘기들은 오롯이 내가 엠즤인가 꼰대인가 고민을 하는 신입들을 위한 것임을 확인하고 가자.


'신입이 칼퇴해도 되는가?'


신입의 특권이자 가장 눈치가 많이 보이는 지점이 바로 일이 없다는 것이다. 하루 종일 회사 홈페이지를 들락날락 거리고 자리 배치도를 뚫어져라 바라봐도 시간은 고작 15분 남짓 흐를 뿐이다. 우리 팀은 물론이고 다른 팀을 둘러보면 다들 한가득 인상을 쓰고 일을 하기 바쁘다. 하지만 나는 일이 없다. 두리번거리며 나한테 일 좀 달라 제스처를 취하지만 그 마저도 신경 쓸 겨를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나마 사수가 몇 가지 간단한 일을 던져 주면 최선을 다 해 어떻게든 해 보아도 하루가 채 흘러가진 않는다.


그렇게 오전 오후를 보내다 보면 어느새 6시가 다 되어 간다. 사람들은 퇴근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회사에서 사는 것일까? 운이 좋게도 초반은 사수가 퇴근해도 좋다는 말을 한다. 6시 10분이다. 다른 사람이 일을 하고 있든 말든 퇴근을 하니 일단 기분은 좋다. 시간은 애석하게도 빠르게 흘러 한 달이 지나고 나면 사수에게 내 퇴근은 잊히고 만다. 그럼 이제 본격적인 눈치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한 달 밖에 안 된 신입이 일이 많아봤자 얼마나 많단 말인가? 야근이 가당키나 한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빙빙 돌 때의 시간은 이미 6시 20분이다. 20분이나 지체되다니! 당장이라도 일어나 짐을 싸고 싶지만 이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들곤 할 것이다. 언론에서 얘기하는 엠-즤 세대나, 요즘 애들은 상사고 나발이고 6시 땡 하면 일어난다지만, 나는 어디서 컸길래 이렇게나 소심한 건지, 전혀 그럴 수가 없다.


그래 30분, 30분에 일어나자. 다짐을 하지만 일어날 수 있을 리가 없다. 아무도 나에게 퇴근하지 말라고 얘기 한 적 없지만, 또 다르게 생각하면 퇴근하라고 얘기한 적도 없다. 30분이 넘어도 일어나는 사람 하나 없고 정적 속에 타자 소리만 들리는 이 사무실의 분위기가 나를 짓누른다. 하지만 어떡한가? 일이 없는데! 이미 주어진 일은 이미 몇 시간 전에 끝냈는데!

시간이 40분을 가리키자 지나가던 상사가 "왜 아직도 안 갔어?" 따위의 말을 던지면, 그제야 불편하지만 편해진 마음을 진정시키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마치 모두가 YES를 외칠 때 혼자 NO를 외치는 사람 마냥 군중 속의 고독을 느끼며 조용히 자리를 정리하고 팀을 벗어나자마자 누구보다 빠르게 회사를 떠난다.


왜 나는 일을 다 했는데 눈치를 봐야 하는가? 옆 팀 동기는 6시 땡 하자마자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집에 가버리는데, 나는 누구의 눈치를 이렇게나 본단 말인가? 하는 무음의 분노를 터트리기를 어언 두 달. 이제 서서히 일이 쌓여 간다. 다시 말해 퇴근 시간이 되어도 일이 안 끝나는 상황이 종종 생겨 나는 것이다. 어느샌가 6시가 넘어가도 자연스레 일을 하고 있는 나를 보면 마치 전생의 기억 처럼 할 일 없이 30, 40분을 앉아 있던 때가 생각이 난다.


눈치! 눈치는 중요하다. 그리고 퇴근도 중요하다. 그러니 신입들에게 얘기하고 싶다. 그때를 즐기라고. 5시 59분에 가라는 얘기가 아니다. 일이 없고, 그나마 주어진 일을 다 끝냈다면 미련 없이 퇴근 하자. 어차피 그게 가능한 날은 길지 않다. 회사가 당신을 탐색하는 기간이 끝나면 그 이후는 퇴근하고 싶어도 울면서 남은 일을 마무리하는 날이 종종 생길 것이다. 불행하게도 나는 정시 퇴근 할 수 있는 날을 손에 꼽는다. 이 바닥 한 탕 벌고 뜨고 말지.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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